돌봄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규범은?

등록 2024.01.17 09:22수정 2024.01.1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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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노동자의 고용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재가요양서비스와 같이 시간제로 운영되는 서비스의 경우 대부분 하루 일과를 다 채우지 못하는 조각난 노동이고, 개별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여러 조각을 맞춰보지만, 조각과 조각을 잇기 위해 필요한 이동시간은 오롯이 돌봄노동자의 부담이다. 

이른 아침 돌봄 서비스 이용자의 전화 한 통으로도 돌봄노동자의 노동시간은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고, 노동시간이 사라지면 고용관계는 무의미하다. 돌봄노동자의 고용은 하염없이 불안하다. 돌봄노동자의 고용불안 위기 극복 방안을 노동과 고용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좀 더 근본적으로 돌봄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응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최소 규범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최소 규범은 우선 돌봄의 사회화에 대한 필요성일 것이다. 1인 가구와 비친족 가구의 가파른 증가, 그리고 선진 복지국가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지속적으로 45%에 이르는 맞벌이 가구의 비율은 전통적인 가족내 돌봄욕구의 충족이 이미 작동하기 어려운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가족내 돌봄욕구 충족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이 우리 사회만 경험하고 있는 문제는 아니며, 그 자체로 문제적인 것도 아니다. 

프랑스 등 서유럽국가들이나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도 우리보다 앞서서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1인 가구비율과 맞벌이 가구 비율을 경험해온 바 있다. 우리보다 앞서서 이와 같은 인구사회학적 구조변화를 경험한 이들 국가들은 돌봄의 탈가족화, 돌봄의 사회화를 통해 이와 같은 문제에 대응해 왔고, 결과적으로 돌봄의 공백을 최소화해 왔다. 돌봄의 탈가족화와 사회화는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어떻게 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돌봄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다음으로 고려할 최소 규범으로 돌봄의 양과 질에 더해 범위, 혹은 종류의 측면에서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돌봄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돌봄 욕구의 충족을 목표로 정책과 제도를 통해 돌봄의 사회화를 구현한다고 했을 때 앞서 언급한 양과 종류 산출목표, 즉 output에 대응하는 수단이며, 질은 결과 목표, 즉 outcome에 대응하는 수단이라할 수 있다. 

돌봄과 같은 사회서비스 관련 제도의 최종적인 정책목표가 돌봄 욕구의 충족을 통한 돌봄 대상자의 존엄한 삶의 질 보장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질이 동반되지 않는 양과 종류의 확보는 정책목표의 달성에 매우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돌봄 서비스에 관한 한 양의 부족(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공공사회지출 비율)도 문제이지만 그에 더해 그나마 쏟아붓고 있는 자원을 통해 구현되는 돌봄 서비스의 질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제도화 30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정부의 수가 체계와 표준화된 서비스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해진 수입구조 안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돌봄 제공기관은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서비스 제공의 의무를 수행하려는, 즉 '최소한으로 적정화된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동기를 부여받는다는 점을 확인해왔다. 이는 결국 대인서비스의 특성을 갖는 사회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비용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돌봄과 같은 사회서비스의 질이 사실상 돌봄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의 질인 것을 고려했을 때 열악한 돌봄노동의 현장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없이 돌봄을 비롯한 사회서비스의 질 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공공 직접서비스 제공 기관을 제도화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이론적 배경을 반영한 역사적 대응 방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집단적 반발과 정치적 공방에 따라 타협적으로 제도화된 한계가 있었다. 제도화 이후에도 새롭게 들어선 정부나 지자체장의 정책 접근방향에 따라 사회서비스원 제도가 오히려 후퇴하거나 형해화되는 길을 걷고 있어 우려스럽다. 


새로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가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예산을 삭감함으로써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경영위기를 스스로 초래하고, 이와 같은 자해행위로 인해 발생한 경영위기를 빌미로 다시 경영혁신 방안의 하나로 공공직접서비스의 제공을 중단하는 일련의 움직임을 사실상 양질의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규정하는 이유이다.

돌봄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규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끝내 모든 돌봄 노동이 이 규범 안에서 수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수준을 개선할 수있는 제도적 시도들이 지속되어야 한다. 사회서비스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으나 관련법이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으며, 특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나마도 형해화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둘째, 주요 돌봄서비스 영역별로 공공 제공시설과 공공 제공자의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하는 방안이 법제화되어야 한다. 노인, 아동, 장애인 등 주요한 서비스 이용자 영역별 공공 공급비율을 전국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별 지자체별로도 최소한의 공공서비스제공비율을 충족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김진석씨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서울여자대학교 교수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2월호 '한울림'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돌봄노동 #노동 #사회서비스원 #돌봄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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