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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담론? 김대중이 '자유' 강조한 이유

김대중과 빌리 브란트,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하다

등록 2024.01.19 14:04수정 2024.01.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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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10월 25일 김대중이 개최한 빌리 브란트의 환영행사에서 만난 두 사람.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의 가치 실현을 위해 헌신한 세계적인 지도자인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했다.
1989년 10월 25일 김대중이 개최한 빌리 브란트의 환영행사에서 만난 두 사람.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의 가치 실현을 위해 헌신한 세계적인 지도자인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1989년 10월 독일의 양심이자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방한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을 때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 자료를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1989년 10월 25일 김대중이 주최한 빌리 브란트 환영리셉션을 촬영한 것이며 김대중의 인사말과 빌리 브란트의 답사로 구성되어 있다.

두 인물은 1970년대 중반부터 알고 지냈으나 직접 만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984년 김대중은 2차 미국 망명을 마치고 귀국 하기 전에 유럽을 방문해서 빌리 브란트 등 유럽의 지도자들을 만나려고 했으나 전두환 정권이 비자를 내주지 않아서 유럽행을 포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두 인물은 1991년에 독일에서 다시 만났는데 이때는 동영상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이번에 공개한 이 자료가 두 인물에 관한 유일한 동영상 기록이다.
  
김대중과 빌리 브란트의 역사적 인연의 시작과 전개
  
김대중은 아시아지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민주, 인권, 평화 지도자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저명한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교류했다. 소련, 중국과 수교하기 전인 1980년대까지는 미국, 일본, 유럽의 여러 지도자들과 교류했으며 빌리 브란트는 그 중의 한명이었다. 빌리 브란트는 유럽에서 김대중이 가장 가깝게 지낸 인물이고 김대중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김대중에게 있어 빌리 브란트는 미국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비슷한 존재였다.

빌리 브란트는 청년 시절에 히틀러의 나찌즘에 반대하여 망명투쟁을 전개하면서 수 많은 고난을 겪었다. 1969년 총리가 된 이후인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했을 때 유태인 희생자 추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 일은 매우 유명하다. 또한 동방정책을 통해 독일 통일의 길을 열었으며 미소 냉전의 와중에도 유럽지역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빌리 브란트는 유럽을 넘어서 제3세계 등 국제적인 이슈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그는 동백림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서독의 외무장관으로서 이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그리고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납치사건을 통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김대중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마도 망명투쟁을 하는 김대중의 모습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빌리 브란트는 1974년 총리를 그만두었지만 1987년까지 사민당을 이끌었다. 그리고 1976년부터 1992년까지 중도좌파 정당들의 국제적 연합체인 국제사회주의연맹의 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국제사회에 큰 영향력을 갖는 정치가였다. 빌리 브란트는 한국의 독재 정권이 김대중의 인권을 탄압하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했으며 1980년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에는 국제적인 구명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197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빌리 브란트는 사민당 국회의원 73명의 서명을 받아서 1987년 김대중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김대중이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추천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으며 그 이후 지속적으로 추천을 받은 김대중은 2000년에 이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여기서 보듯 두 인물은 서로 존경했으며 깊은 신뢰 관계를 갖고 있었다.

김대중, 빌리 브란트에 대해서 말하다 

1989년 김대중의 빌리 브란트 환영사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김대중이 유신 정권으로부터 고초를 겪던 1970년대 중후반부터 김대중을 지원했고,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에는 구명운동에 큰 도움을 주었다. 두 인물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의 가치 실현을 위해 헌신한 세계적인 지도자였고 서로를 존경했다. 두 사람은 빌리 브란트가 1989년 10월 24일 방한했을 때 처음 만났다. 이 영상은 10월 25일 김대중이 개최한 환영리셉션 행사를 촬영한 것이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1989년 10월 25일 환영리셉션에서 김대중은 인사말을 통해 빌리 브란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한 지도자를 이 자리에 모시게 됐습니다. 이 분의 생애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젊어서 이 분은 히틀러의 파시즘, 나치즘에 반대해서 그래서 조국을 탈출해가지고 형식적으로는 자기 조국과 싸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심이 무엇이고 나라를 올바르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대표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베를린 시장으로서, 이 동독에서 높은 장벽을 쌓고 냉전이 휘몰아칠 때, 공산당의 압력 앞에서 자유 서베를린을 지켜냄으로써 전 세계의 자유인에게 희망과 그리고 용기를 불러일으켜주는 진정한 용기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사민당의 총재가 되자 그 당시까지 계급 정당을 표방하던 사민당을 국민 정당으로 일대 전환시켜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집권의 길을 연, 그러한 아주 혜안을 가진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민당과 대연정을 해가지고 이렇게 해서 나라 힘을 전부 합쳐가지고 앞으로 있을 동방 정책에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그 나라의 중대한 위기에는 서로, 이 보수 정당과 혁신 정당이 협력해서 국가의 문제를 해결을 한 정치의 참 예술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이 분의 그 유명한 동방 정책. 이 정책을 통해서 이 분은 전후의 냉전 체제 속에서 처음으로 동방과 화해의 길을 열고 오늘날 세계가 이 냉전을 종식하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 그 최초의 돌파구를 이 분이 동방 정책을 통해서 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분은 전후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그 업적을 남긴 분이라고 이 하나 가지고만도 우리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분은 북과 남, 즉 남쪽의 제3세계의 고난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몸소 '남과 북'이라는 책도 쓰고 이 남쪽에 대한 북방 선진 국가들의 기여를 강력히 주장해서 여기에 세계 여론을 움직이고 정책을 움직인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분은 국제사회주의연맹의 의장으로서 10년 이상 여기에 시무하고 계시면서 세계를 자유와 정의 속에 하나로 묶어가는 세계의 지도자로서 지금 활약을 하고 계십니다. 이상으로써 여러분은 왜 제가 이 분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씀한 이유를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한국을 위해서도 이 분은 참으로 바꿀 수 없는 은인입니다. 이 유신 독재 이후 이 빌리 브란트 의장께서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 주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우리 인권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정치 지도자는 빌리 브란트, 돌아가신 스웨덴의 팔메 수상, 오스트리아의 브루노 크라이스키, 일본에 도이 타카코, 우쓰노미야 도쿠마 이런 분들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해서는 1973년 제가 동경에서 납치되어 온 이래 계속해서 걱정을 하시고 또 도와주셨고, 특히 80년에 사형 언도 받을 때는 저의 구명을 위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준 제게로서는 참으로 감사한 분입니다."


빌리 브란트, 자유에 대해서 말하다
 

1989년 빌리 브란트의 답사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김대중이 유신 정권으로부터 고초를 겪던 1970년대 중후반부터 김대중을 지원했고,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에는 구명운동에 큰 도움을 주었다. 두 인물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의 가치 실현을 위해 헌신한 세계적인 지도자였고 서로를 존경했다. 두 사람은 빌리 브란트가 1989년 10월 24일 방한했을 때 처음 만났다. 이 영상은 10월 25일 김대중이 개최한 환영리셉션 행사를 촬영한 것이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빌리 브란트는 김대중의 환영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답사를 했다.

"김대중 총재님 그리고 여기에 와 계시는 많은 친구 여러분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이야말로 가장 감동깊은 날입니다. 그리고 화요일에 제가 사는 곳으로 귀국할 때 저는 이 사회를 재건하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등에 대해 강한 감동과 오랜기간 동안 남게 될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앞날에 크나큰 희망과 영광스러운 장래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분단된 국가가 훨씬 더 가까워지고 통합의 방향으로 진지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마저 듭니다.

지금 유럽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더 많은 통합, 더 높은 수준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나의 조국 독일은 독재와 끔찍한 전쟁의 결과로 겪었던 분열을 극복할 것입니다. 제가 정치적인 가치를 선택해야 한다면, 첫 번째도 자유, 두 번째도 자유, 세 번째도 자유이며 다른 것은 그 다음 순서가 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를 박탈당해 박해받고 처벌받는 곳에서 자유를 되찾는 데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경제 분야에서의 더 많은 성공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발전과 안정은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인권과 자유를 포함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반 위에서 공동체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할 때 가능합니다. 김대중 총재님을 비롯해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한국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김대중과 빌리 브란트가 말하고 실천한 자유와 민주주의
  
 1989년 10월 25일 김대중이 개최한 빌리 브란트의 환영행사에서 만난 두 사람.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의 가치 실현을 위해 헌신한 세계적인 지도자인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했다.
1989년 10월 25일 김대중이 개최한 빌리 브란트의 환영행사에서 만난 두 사람.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의 가치 실현을 위해 헌신한 세계적인 지도자인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이날 빌리 브란트의 연설은 짧지만 메시지에 담겨 있는 의미는 매우 깊고 강력했다. 이 연설에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 상관관계에 있어 '자유있는 민주주의', '민주주의 기반에 선 자유'를 강조했다. 이는 우익독재, 좌익독재 모두를 반대하면서 투쟁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인 그의 삶과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이것은 김대중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 현대사를 보면 '자유'는 대체로 보수의 담론, '민주주의'는 진보의 담론으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는데 김대중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강조했으며 이를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 그래서 그는 빌리 브란트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각각 아시아와 유럽을 대표하는 민주, 인권, 평화 지도자였으며 생전에도 우정을 나누고 여러 교류를 했다. 국내외적으로 큰 정치인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역사적인 두 인물의 만남과 연설이 담겨 있는 이 영상은 많은 교훈과 깊은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공개한 동영상 자료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유튜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 주소: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M3KYQ3ld15FFbFFGzkE8mdxjm0Tb3zk0
덧붙이는 글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과 중국>(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3)의 공저자, <김대중 1차망명과 반유신민주화운동>(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3)의 공저자이며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김대중 #빌리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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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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