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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간 모닝페이지를 써봤더니

밀도 있는 삶을 꿈꾸며

등록 2024.02.22 09:52수정 2024.02.2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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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에겐 루틴이 하나 있다. 바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모닝페이지를 쓰는 것 이다. '모닝페이지'란 일어나자마자 아무 생각없이 자신의 무의식을 글로 풀어헤쳐 놓는 것을 말한다. 일기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일기가 주로 자기 전, 밤에 쓰는 것이라면 모닝페이지는 하루의 시작에 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 달여간 모닝페이지를 지속해 본 결과, 모닝페이지는 일기보다 더 큰 장점이 있었다.


일기는 보통 내 마음이 답답하거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혹은 뭔가 특별한 일을 겪고 난 후, 어수선한 감정을 쏟아내는 해방구였다. 쓰고 나면 분명 시원하고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지며 정리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딱히 큰 변화를 이끌어 내진 못했다. 하지만 모닝페이지는 내 하루와 내 일상을 좀 더 쫀득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나의 하루, 내 일상에 좀 더 밀도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모닝페이지는 일어나자마자 나의 무의식을 글로 풀어놓기만 하면 된다.
모닝페이지는 일어나자마자 나의 무의식을 글로 풀어놓기만 하면 된다. elements.envato
 
요즘 내 머릿속에선 밀도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녔다. 뽑아도 뽑아도 그 자리에 다시 돋아나는 새치처럼 밀도라는 단어가 자꾸 날 물고 늘어졌다. 밀도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면적이나 공간 속에 포함된 물질이나 대상의 빽빽한 정도"를 말한다.

내가 자꾸 밀도에 대해 생각한 건, 아마 내 삶과 일상이 헐겁고 뭔가 많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을 것이다. 나는 내 하루가 좀 더 보람되고 의미있기를 바랐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하루를 보내 버리다가는 솜사탕처럼 내 삶도 금방 녹아버릴 것 같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이런 생각으로 잠을 설치다가, 회복에 집중해야 할 때, 무슨 짓인가 자책하기도 했다.

삶이 유한하다는 건 진리지만, 일상 속에서 그 사실을 실감 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끔 책이나 주변 사람을 통해 자극 받는 날은 하루 이틀 반짝하긴 했어도 금방 다시 별다를 것 없는 일상으로 녹아 들었다.

생각과 계획은 많으나 행동으로 이어지기가 힘들었다. 나는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을 가늠해본 적도 없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냥그냥 살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 삶의 밀도에 대해 생각하는 건, 삶이 유한하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밀도 있는 삶이란 어떤 걸까? 하루 하루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뒤를 돌아봤을 때 마음이 차분하고 내 하루가 흡족하며 가끔은 벅찬 마음이 솟아오르며 충만해지는 상태. 그 충만한 마음은 여러 요소요소에 의해 생기지만, 대개는 평온한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이를 충실히 소화하는 가운데,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잊지 않고 해냈을 때 주로 일어난다.


가령 오늘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을 붙들어 매 하나의 글로 완성했다던가, 별 기대없이 펼친 책이나 영화에서 꽁꽁 숨겨져 있던 인생의 감동과 지혜랄 만한 것을 발견했을 때, 혹은 맞벌이 하는 이웃의 아이를 대신 픽업해주고 "아 나도 이제 도움만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게 됐구나"라고 느낄 때. 이런 때 나는 내가 어제의 나보다는 개미 눈물 만큼이라도 성장한 것 같다는 생각에 기쁘다.

앞서 말했다시피 모닝페이지는 일어나자마자 나의 무의식을 글로 풀어놓기만 하면 된다. 거기엔 어떤 검열도 없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기만 하면 되니 일기보다도 쉬웠다.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 나가다 보면, 하루의 시작이 상쾌했다. 내 하루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삐져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모닝페이지는 주로 그 당시 내 기분과 상태로 시작한다. 계속 쓰다 보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른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맞아야 겠다는 다짐도 한다.


오늘 내 모닝페이지를 요약해 보면 대강 이렇다.

"간밤엔 온몸이 간지럽고 식은땀이 나서 두 번이나 깨 옷을 갈아입고 수선을 떨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간지럼도 참을 만하고 노트북을 켜 모닝페이지를 쓸 여유가 생겼음에 안도했다. 밖에는 귀여운 딸아이들이 아직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고, 조금 있으면 잠에서 깬 막내가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와 엄마 품에 쏙 안길 거라는 예감에 가슴이 따뜻하다.

밖은 부슬부슬 비가 내려 아직 어두컴컴 하지만, 남편은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해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이 좋다. 이렇게 아무일 없이 무탈한 일상이 흘러가기에, 나는 한량처럼 오늘 하루가 훅 지나가버리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겠다거나, 밀도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한가한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써 본 사람은 느낄 수 있다. 그냥 생각만 하면 그게 무엇이든 언제고 공중으로 흩어져버린다. 하지만 생각을 글로 적어두면 내 마음이 선명해지고 내 희망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간다. 내 하루가 좀 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행복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삶이라 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일이 이뤄져야만 행복하고 기쁜 게 아니라 무탈함이 곧 행복이란 뜻일 것이다. 내가 지금껏 아무일 없이 무탈하게만 살아왔다면 이 말이 소극적이고 안일한 자들의 뜬구름 잡는 발언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긴 투병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지금의 나는 절절히 공감한다. 그리고 무탈한 나의 일상 앞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특별할 건 없지만 아무일 없이 흘러가는 일상, 그 속에서 발견하는 나만의 소중한 시간들이 내 하루를 밀도 있게 만듦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밀도 있는 하루를 만들려고 애쓰는 나의 의지가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사사로운 욕심으로 마음이 불안한 적도 많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의욕은 많으나 몸이 안 따라 줄 때도 많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될 것을 왜 그리 조급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의 이런 욕심과 조급함이 내 병을 불러온 건 아닐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난 술담배를 즐기지도 않았고 인스턴트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꾸준히 운동을 하진 않았으나 평생 적정 몸무게를 유지했다.

다만 이런저런 욕심과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룬 적은 많다. 뭔가 하고 싶다는, 뭔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 있지 막상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관성처럼 또 다시 이런 마음으로 잠이 달아나려 할 때 나는 깜짝 놀라 심호흡을 한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덤일 수도 있다. 바보같이 전과 같은 마음 상태로 허비하지 말자. 그러면 내 마음은 조금씩 평온을 찾아가며 홀가분해진다.

명상과 같았던 오늘의 모닝페이지도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전에 몸을 움직여야 할 때다. 오늘 아침은 멸치와 계란을 넣어 주먹밥을 만들 예정이다. 명절을 쇠고 나니 불뚝해진 냉장고 과일 칸에서 사과와 체리도 꺼내 예쁜 접시에 담아야겠다. 맛있게 먹을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지금은 다시 오지 않을 '미라클 모닝'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 혹은 비슷한 내용이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모닝페이지 #일상 #루틴 #투병 #소중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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