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실 문에 붙은 포스트잇'오늘 뭐 먹지?'에 대한 답은 여기서만 고를 수 있다
최은영
'오늘 뭐 먹지?'는 주관식이라 너무 광범위하다. 냉동실 앞의 이 포스트잇은 선택 폭을 확 줄인다. 고민 없이 여기 있는 것 중에서 먹으면 된다. 아니, 먹어야 '한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해야 했던 고민이 이 쪽지 하나로 말끔하게 해결됐다.
사람의 뇌는 하루에 생각할 수 있는 용량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고 한다. 뭐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뇌 용량을 그만큼 쓴다. 냉동실 쪽지는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임무 완수를 할 수 있으니 그만큼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옷 고민하기 싫어서 똑같은 검은색 목폴라를 몇 벌씩 갖추었다는 것처럼 내겐 저 냉동실 쪽지가 검은색 목폴라다. 냉동실 앞에 작은 화이트 보드판을 붙여놓고 지우개로 지워가며 재료를 써놓는 게 더 예뻐보였다. 그런데 우리집엔 사은품으로 받아온 포스트잇이 넘쳐난다. 보드판 결제를 취소했다.
보기만 해도 내 고민을 해결해 줄 거 같은 냉장고 수납 용기들도 많다. 보다보면 홀린듯 결체창까지 들어간다. 그러다 눈 질끈 감고 폰을 닫아버린다. 지금까지 돈 안 쓰고 불편없이 살았는데 이제와서 사는 건 돈이 아깝다.
너무할 정도로 튼튼하게 나오는 포장비닐을 한 번 쓰고 버리는 건 더 아깝다. 호박, 대파, 양파 등을 소분했던 비닐은 헹궈서 열 번을 써도 멀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