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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없어 서울 이송'...한강의 소설은 현실이었다

[수산봉수 제주살이] '살기 좋다'는 제주의 뻥 뚫린 의료 공백

등록 2024.02.28 15:24수정 2024.02.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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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바다 건너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미디어와 인문학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이 기사는 한미리스쿨이 지난해 말 개설한 1기 심화언론인양성과정 학생들이 주제 선정과 취재 과정에서 지도를 받아 제출한 현장기사 쓰기 과제를 데스크 본 것이다. 기사를 쓴 문지수·천종현·임소현은 지난해 9월 MBC저널리즘스쿨을 수료한 뒤 기숙학교인 한미리스쿨 심화과정에 입소했다.[편집자말]
'서울 가서 봉합수술'… 꾸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공방에 불이 켜져 있는데 대답이 없는 게 이상해서 들어와 보니 내가 기절해 있었대. 피가 너무 나니까 일단 지혈을 하고. 나를 트럭 짐칸에 싣고 제주병원까지 달렸대. 내 손가락 마디 두 개는 목장갑째로 할머니가 들고. 섬엔 봉합수술을 하는 의사가 없어서 가장 빨리 서울 가는 비행기를...'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의 한 대목이다. 제주도 중산간지대 외딴집에 목공방을 차려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인 인선은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렸다. 응급상황에서 봉합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까지 가는 장면은 좀 무리한 설정으로 여겼는데, 취재 결과 그것은 제주의 의료 현실이었다.

응급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인데 제주에서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지난 10일 설날, 대동맥 박리 증상을 호소한 50대 환자는 제주시내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못 하자 응급헬기에 실려 전문 치료가 가능한 이대서울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 10일 한 제주도민이 대동맥 박리 증상으로 제주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으나 치료할 수 없어 소방 헬기에 실려 서울로 이송됐다.
지난 10일 한 제주도민이 대동맥 박리 증상으로 제주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으나 치료할 수 없어 소방 헬기에 실려 서울로 이송됐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응급헬기 이송되는 데 7시간… 손가락 봉합 실패

봉합수술 같은 응급환자는 시간이 수술 성패의 관건인데 제주의 응급의료체계는 상당히 미흡하다. 특히 제주도는 동서로 긴 섬인데 좀 큰 병원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에만 집중돼 있어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서귀포시 성산읍과 대정읍은 제주도의 동쪽과 서쪽 끝에 있어 서귀포시내나 제주시내 병원에 가려면 승용차로 1시간은 달려야 한다. 2019년에는 성산읍 난산리 나무 분쇄 작업장에서 손목과 손가락이 절단된 60대 환자가 헬기로 대구까지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그는 제주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봉합수술을 못 하고 헬기로 대구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아야 했다. 헬기는 강원도 원주에서 산악구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제주로 불러들여 대구로 환자를 후송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사고 후 7시간이 지나 근육 괴사가 진행된 상태여서 손목은 붙였지만 손가락 3개는 살리지 못했다.


서귀포시 살아도 아프면 제주시 간다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얼굴이 심하게 찢어졌어요. 급한 김에 주무과도 아닌 정형외과에서 봉합수술을 했죠. 성형외과에서 흉터제거 수술을 해야 하는데 아직 처치를 못했어요."


지난해 6월 30일, 서귀포시에 사는 엄효미씨는 어린이집 선생님 연락을 받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세 살도 안 된 아들은 볼이 찢어져 깊게 패여 있었다. 서귀포의료원으로 달려가니 응급실 의사는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서귀포의료원 응급실에서 엄효미 씨가 아이 손을 잡고 있다.
서귀포의료원 응급실에서 엄효미 씨가 아이 손을 잡고 있다. 엄효미
 
"1시간 안에 봉합수술을 해야 돼요. 근데 성형외과가 아니면 꼼꼼하게 치료해 드리기 힘듭니다." 

효미씨는 놀란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여러 성형외과에 전화를 했다. 서귀포시내 병원은 물론이고, 지인들을 동원해 병원을 알아봤지만 아이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1시간 넘게 가야 하는 제주대병원도 "당일 봉합 수술은 안 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서귀포의료원 정형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맡겼다. 아이가 다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도 흉터 제거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알아보는 중이다. 육지에서 제주로 올 때까지만 해도 효미씨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상상도 못 했다.

"'서귀포에 살아도 다 제주대병원으로 간다'는 사실을 대개 다 아는데 저는 육지에서 와서 몰랐어요. 아이를 위해 육지로 다시 가야 하는데, 자영업을 철수하기도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머무는 형편이에요."

간단한 치료와 건강검진도 이곳에서는 쉽지 않다. 의료정보포털 메디서비스에 따르면 서귀포시 전체 병원 285곳 중 치과(65곳)와 한의원(59곳)이 절반에 가깝다. 병상수에 따라 특수의료장비를 허용해 서귀포에 자기공명영상장치(MRI)가 있는 병원은 서귀포의료원 한 곳이다. 제주도 동서쪽에 사는 주민들은 멀리 오가기 귀찮아서라도 건강검진 받는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제주도 건강검진율은 71%로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가장 낮은데, 서귀포시는 68%로 더 낮다.

성산읍엔 내과·외과 등 주요 과목 의원 전무

대도시를 벗어나면 의료 공백은 더 심각해진다. 서귀포시 성산읍 인구는 1만5천인데, 치과와 한의원을 제외한 일반 의원은 여섯 곳이 전부다. 진료과목으로 '내과' '외과' '신경외과' 등이 다 적혀 있지만, 해당 과목의 전문의 자격을 갖춘 의사는 없다.

이렇다 보니 전문적인 검사나 치료를 받기는 힘들다. 진료과목으로 '안과'가 적혀 있는 의원 네 곳에 물어보니 "눈이 충혈되거나 염증이 있을 때 약 처방 정도만 할 수 있다"며 "안과 전문의가 있는 시내로 가야 검사나 수술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성산보건지소는 번듯한 외관과 달리 임무가 한정돼 있어 응급처치 업무도 하지 않는다.
성산보건지소는 번듯한 외관과 달리 임무가 한정돼 있어 응급처치 업무도 하지 않는다. 문지수

보건소는 민간 의료기관에 비해 고르게 분포했지만, '진료'보다 '건강증진과 재활'에 비중을 둬 응급진료나 치료는 기대하기 어렵다. 성산보건지소 직원은 "어르신 당뇨약 같은 장기처방을 주로 한다"며 "여기 선생님들은 공보의인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보의, 곧 공중보건의사는 대개 갓 의사 면허를 딴 이들을 대상으로 병역의무 대신 보건의료 취약지역에 3년간 일하도록 하는 제도여서 전문적인 진료는 할 수 없다.

심장질환자는 일출봉 탐방도 자제해야

성산일출봉을 방문한 관광객 이동준씨(30)는 "응급실이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는 걸 아느냐"고 묻자 놀라며 답했다.

"1시간요? 믿어지지 않는데요? 그래도 사람 많은 관광지인데 병원이 그렇게 멀어요?"
 
 성산일출봉 등산로는 계단으로 돼있지만 눈비가 올 때는 미끄러지는 낙상 사고 등이 자주 일어난다.
성산일출봉 등산로는 계단으로 돼있지만 눈비가 올 때는 미끄러지는 낙상 사고 등이 자주 일어난다. 이봉수
 
성산읍의 부실한 의료 인프라는 관광객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성산일출봉은 제주에서도 관광객이 아주 많이 찾는 곳인데, 응급실이 있는 서귀포의료원이나 제주시 한마음병원과 45km쯤 떨어져 있다. 2014년에는 성산일출봉 정상에 오른 60대 중국인 관광객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쓰러져 제주시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성산일출봉 등산로는 입구에서 정상까지 약 20~30분 걸려 멀지 않고 폭이 넓어 어린이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해 보이지만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다치는 일이 벌어진다. 입구에서 어묵 등을 파는 한 상인은 "특히 눈이나 비 오는 날에 구급차를 많이 본다"며 "구급차가 한꺼번에 세 대나 오는 걸 봤다"고 말했다.
 
 성산일출봉 등산로 입구에는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 고지혈증 등 지병이 있거나 전날 과음한 경우 탐방을 자제해달라는 주의사항 안내판이 서있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한다.
성산일출봉 등산로 입구에는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 고지혈증 등 지병이 있거나 전날 과음한 경우 탐방을 자제해달라는 주의사항 안내판이 서있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한다. 이봉수

성산일출봉 관리사무소와 성산119센터에 따르면, 긴급할 때는 헬기를 요청하지만 대개 응급차로 이송하게 되는데 제주시내 병원까지 한 시간 정도는 걸린다. 

중증외상의 골든타임은 보통 1시간 안팎이다. 심혈관 질환은 5분 이내 심폐소생술을 포함해 최대 2시간, 뇌혈관질환은 3시간 이내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공공보건의료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시간 이내로 권역응급의료센터 접근이 불가능한 제주 인구 비율은 15% 정도로 전국 평균 9%보다 훨씬 높다. 30분 이내 응급실에 가지 못하는 인구 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는 응급환자를 치료할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 발생 건수가 매년 증가세라고 밝혔다.

제주는 동서로 긴데... 통계의 함정

제주도는 의료 인프라 자체가 부족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종합병원은 제주시 도심에 5개가 몰려있는 반면, 서귀포시에는 서귀포의료원 단 하나뿐이다. 2022년 제주도 공공보건의료시행계획 자료를 보면 제주시의 응급 병상은 서귀포의 14.2배 수준이다.
 
 동서로 길게 뻗은 제주도의 보건의료기관 분포도를 보면 종합병원은 제주시와 서귀포시 도심에 각각 5개, 1개가 있을 뿐 동부와 서부에는 하나도 없다.
동서로 길게 뻗은 제주도의 보건의료기관 분포도를 보면 종합병원은 제주시와 서귀포시 도심에 각각 5개, 1개가 있을 뿐 동부와 서부에는 하나도 없다. 제주도
 
제주는 동서로 긴 지형이라 동서쪽 주민이 종합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먼 거리를 오가야 한다. 제주도 제8기 지역보건의료계획서는 의료 인프라가 제주시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지만, 행정구역별로 조사한 탓에 동서쪽 의료 인프라에 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제주대병원도 상급종합병원 도전 실패

제주도 전체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의료소외지역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 치료와 정밀 검사, 이식 수술 등 난도 높은 의료행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1·2차 의료기관과 구분된다. 이 때문에 암이나 희소 질환 등을 앓는 제주도민은 10분 남짓한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온종일 차나 비행기를 타고 가서 병원에서 대기하는 지루한 여정을 감수해야 한다.

현 정부 보건의료정책 목표는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 완성이다. 지역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지방 국립대를 중심으로 필수 의료 강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제주도 내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제주대병원은 '제5기(24~26년)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서 고배를 마셨다.

제주대병원의 상급종합병원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도민의 원정진료 비율이 감소할 것이라는 기대도 꺾였다. 2021년 기준 제주도 전체 환자 9만7800명 중 16.5%인 1만6109명이 원정진료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른 의료비 유출액은 전체 도민 의료비용 4250억 원의 25.4%인 1080억 원에 이른다.

궁여지책으로 세운 민관협력의원도 개원 못 해

제주의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는 공공 부문뿐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2021년 서귀포시는 전국 최초로 민관이 협력해 지역에 병원을 세우는 사업을 추진했다. 의료취약지에 거주하는 주민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의료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서귀포시 365민관협력의원은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설립됐으나 의사를 못 구해 개관하지 못하고 있다.
서귀포시 365민관협력의원은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설립됐으나 의사를 못 구해 개관하지 못하고 있다. 서귀포시
 
'서귀포시 365민관협력의원'은 의원 대상자 공모에서 낙찰 실패를 거듭하다 4차 입찰에서 간신히 낙찰자를 선정했다. 그러나 지난 23일 이마저도 무산됐다. 서귀포시와 계약한 의사가 개원 직전 계약 포기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서귀포시는 원점으로 돌아가 의사를 구하는 절차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

의사 수 늘린다고 제주 올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제주도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2명으로, 서울 4.82명에 견주면 절반 수준이다. 이마저 한의사를 포함한 수치여서 필수 의료 과목 의사만 따로 추산하면 격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의료진 이탈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제주대병원은 난임 시술 지정 의료기관에서 해제됐다. 정부에서 지원금 6억5000만 원을 받아 어렵게 세운 난임센터지만, 의료진이 없어 문을 닫았다. 같은 해 5월 한라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의사 2명이 수도권으로 옮겨가 신생아 중환자실 운영을 중단했다. 정신의학과 담당의를 구하지 못한 서귀포의료원은 올해로 3년째 무기한 휴진 중이다.

절대적인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2.4명)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3.7명)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반면 병원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7개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OECD 평균(3.7개)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늘어나는 입학정원은 지역 의대 중심으로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인재전형도 60% 이상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역 의대를 졸업했다고, 이들이 의료취약지역에서 근무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지역인재전형도 마찬가지다. 지역 출신 학생을 뽑아도, 이들이 그 지역에 남아서 필수의료 분과에 종사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첨부파일 의료공백.docx
#제주의료공백 #의대정원확대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심화언론인양성과정 #키아오라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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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주 키아오라리조트 공동대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 원장, MBC저널리즘스쿨 교수(초대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조선일보 기자, 한겨레 경제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대원장(2008~2019), 한겨레/경향 시민편집인/칼럼니스트, KBS 미디어포커스/저널리즘토크쇼J 자문위원, 연합뉴스수용자권익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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