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북섬<루미너리스>와 함께한 뉴잘랜드 여행길에서
김규영
열두 명의 남자들이 준비한 은밀한 회합에 변호사 출신의 월터 무디가 우연히 발을 들여놓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2주 전, 금광 마을 호키티카에서 사망 사건 하나, 실종 사건 하나, 자살미수 사건 하나가 동시에 일어났다.
열두 남자는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의 전말을 꿰어맞추기 위해 모였지만 그들의 퍼즐 조각은 외곽에 불과하다. 독자 역시 혼란에 빠지지만, 2권 재판 장면에 접어들면 과거의 장면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몰입감은 최고조로 향한다.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금을 찾아 혈안이 된 이민자들과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마오리족 청년 테 라우 타우웨어의 행보에 있다. 타우웨어는 '녹암 채집자'이며 영어 통역을 부업으로 한다.
백인 이민자들은 마오리족의 부적 정도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녹암은 마오리어로 포우나무(pounamu)라고 부르며 지금도 그린스톤 또는 마운틴 제이드(옥)이라는 이름으로 인기가 높은 세공품이다. 그러나 진짜 '녹암'은 뉴질랜드 남섬에서만 채취되는 것으로 기념품가게에 전시된 대부분의 제품은 수입재료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포우나무는 절대로 팔지 않으니까. 앞으로도 절대로 팔지 않을 것이다. 마나를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처럼, 보물에 가격을 매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신과 거래를 할 수도 없는 거고. 금은 보물이 아니다. 타우웨어는 이것을 잘 알았다. 금은 온갖 자재들과 같아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금은 과거로부터 앞으로 앞으로 흘러갈 뿐이다." (1권 155쪽)
금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타우웨어가 다른 사람들과 엮이게 된 것은 사건의 중심이 된 오두막이 포우나무를 많이 채취할 수 있는 아라후라 골짜기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오두막에 살고 있던 웰스는 마오리족의 문화를 진심으로 대했기에 두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타우웨어는 웰스의 죽음을 처리하는 백인들의 영혼없는 관습에 분노한다. 장례의 방식도 적절해 보이지 않았고 오두막과 땅을 포함한 웰스의 재산이 바로 매물로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타우웨어는 (...) 땅이 (...) 이윤 때문에 팔릴 때마다 굉장히 화가 났다. 타우웨어가 아는 한 클린치는 아라후라를 사기 전에 거기서 시간을 보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는 구매하고 나서도 이제 법적으로 그의 소유가 된 땅에 단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면 대체 뭐하러 산단 말인가? 클린치는 거기에 머물 생각이 있었을까? 토지를 경작할 생각은 있을까? 나무를 베어 재목을 만들 생각은? 강에 둑을 쌓을 생각은? 갱도를 파고서 금을 캘 생각은 있나?
지금까지 그가 한 일이라고는 팔기 좋게 크로스비 웰스의 오두막을 비운 것 말고는 없었다. 그나마 그것도 대리인을 시켰고. 그것은 기술도, 애정도, 몇 시간의 끈기 있는 근면도 필요치 않은 공허한 재산이었다. 그런 재산은 폐물에서 태어나 폐물밖에 나놓지 않는, 쓸모없는 폐물이 될 뿐이었다. 타우웨어는 땅이 그저 모양만 다른 화폐인 것처럼 취급하는 사람을 존중할 마음이 없었다. 땅은 주조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거기 살며 아껴주어야 하는 것이다. (2권 17쪽)
마오리족 청년의 분노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금에 혈안이 되어 금광 채굴권을 사고 하염없이 금을 캐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땅을 화폐 취급'할 수는 없다. 부동산 관련 정책으로 선거와 정치판은 물론 전국적으로 들썩거리며 휘둘리는 우리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마오리족 외에도 중국인, 노르웨이인, 영국인, 호주인, 등 별자리만큼 다양한 출신과 직업을 가진 인물들의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혼란스럽지만 정교하게 돌아가는 <루미너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