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근처 수주도서관 까페
임경화
주말 아침은 내게 유일하게 느긋할 수 있는 날이다. 주중에 쌓인 피로로 늦잠이라도 자려고 맘을 먹으면 여지없이 잠없는 남편 때문에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오늘 아침도 남편 성화에 못이겨 동네 논둑으로 끌려가듯 산책에 나섰다.
왜 이리 다를까? 나는 깨어 있을 때 열심히 살고 7시간 잠을 원하는데 남편은 서너시간만 자도 충분하다며 나의 꿀잠을 방해하곤 한다.
나는 많이 생각하고 결정하고 한번 결정하면 쉬 바뀌지 않는데, 남편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집돌이다. 세시간 넘는 곳은 엄두도 내지 않아 아이들과 여행을 더 많이 다녔다. 남편은 예민하다 보니 좀 말랐고 나는 동글동글 하다.
이렇게 다른데 우리가 30년을 함께 살아냈다.
그동안 결혼생활을 힘들게 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가족과의 문제가 컸다. 홀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많이 아프고 힘든시절을 견뎠지만 그것도 옛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동갑내기 부부이다보니 우린 말을 친구처럼 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한번 싸우면 좀 어렵다.
우리라고 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없었을까? 돌이켜보니 그래도 고비마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데는,0ㅣ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늘 받아들인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우린 싸우면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남편의 피난처는 낚시터이다. 본인 말에 따르면 조용한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산과 강을 바라보면서 맘을 정리하고 오는 듯하다. 나는 도서관이 있는 공원에 서너시간 앉아있다 오는 걸로 맘이 노곤노곤해 진다. 요즘은 싸우는 게 힘들고 피곤해서 못 싸운다.
이렇게 내 고집만 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마음을 양보하다 보니 결혼초에 그렇게 위대해 보였던 30년차 부부가 되어 있었다. 인생의 반을 함께한 것이다. 요즘 연인들이 사귄 지 100일기념 300일 기념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오랜시간 함께 한다는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적령기 아들딸의 데이트 경험담을 듣다보면 너무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엄마아빠처럼 친구랑 결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얘기도 종종 듣기도 한다.
짜증부리듯 나왔지만 아침 공기가 싸하게 시원하다. 너른 들판을 보며 걸으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남편이 나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다가 내가 뾰족하게 새순을 돋우는 봄나물 구경에 빠지면 뜯어다가 반찬하자고 농담도 건넨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년에는 선교사 친구가 있는 곳으로 해외여행도 가자고 한다. 아메리카노는 한약같다고 믹스만 고집하던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카페에 들렀다.
"나는 아아, 당신은 라떼?"
내가 주문을 하려는데
"아니, 아메리카노 2잔~"
요즘 들어 부쩍 우리 두사람 닮았다는 얘길 듣게 되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그동안은 30년을 함께 한 공이 내가 더 많이 참고 희생한 데에 있다고 살짝 오만한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남편이 나와 사느라 고생이 많았다. 작년 친정엄마 장례식에서 남편은 나보다 더 많이 울어서 남편이 아들이고 내가 며느리인줄 착각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고맙다. 너무 다르지만 묘하게 닮아가는 우리. 평생에 남은 기적들이 쓰나미처럼 내 삶 가운데 몰려 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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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노래를 좋아하는 곧60의 아줌마.
부천에서 행복한만찬이라는 도시락가게를 운영중이다.남은 인생의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살았다고 소문날지를 고민하는 중이며 이왕이면 많은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행복한 미소를 글과 밥상으로 보여주고 싶어 쓰는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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