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빈은 소주를 즐겨 마셨다. 쉬는 날이면 식당에서 느긋하게 혼술 하고 오기도 했다.
조계환
"한국인들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어요"
루디빈은 한국드라마를 많이 봐서인지 모르는 한국 노래가 거의 없었다. 한번은 저녁 먹고 농장에서 편안하게 노래 부르는 시간을 가졌는데, 대부분의 드라마, 영화 음악을 알고 있어서 놀라웠다. 루디빈이 보기에 한국인은 음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데 재능이 뛰어난 것 같다고.
처음 한국 영화를 보던 시절만 해도 일부 한국문화 팬들이 더디게 만들어내는 자막에 의존해야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한 마니아 계층만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 일반적인 대중이 즐기는 문화가 되었고, 프랑스어 자막은 개봉과 거의 동시에 접할 수 있다.
한국 드라마에 매료되었다고 해서 한국의 현실도 드라마 같을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물론 영화와 현실이 다르다는 것쯤은 한국 여행을 오기 전부터 루디빈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루디빈은 브뤼셀 인근의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상담하는 심리학자로 6년간 일해 왔다. '냉혹한 현실의 이야기'는 루디빈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행길에 나섰다. 심리학자로서 보는 한국의 첫 모습은 어땠을까?
"서울에 처음 도착하고 며칠 동안은 좀 슬펐어요.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누구도 서로 말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서로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젊은이든 노인이든 모두가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고 외롭고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었어요. 거리 모습도 비슷했고요. 음식점에서도 모든 속도가 너무 빨라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어려웠어요."
루디빈은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아주 높은 수준에 속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 학문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큰 원인인 듯하다고. 특히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벨기에도 한국처럼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이지만, 상대적으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전기나 배관 같은 분야의 인력 부족으로 육체노동 전문직의 가치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추세다.
또한 서울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광고가 미용이나 체중 감량 다이어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놀라웠다고 한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특히 여성에게 심하게 가해지는 사회 분위기를 느꼈다. 유럽에서도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분명 존재하지만 좀 더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누구도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