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포스터 및 종이기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포스터. 1923~1927년 사이에 사용된 어린이날 종이기. 1928년 이후에 사용된 어린이날 포스터. 1928년 이후 사용된 종이기. (출처: 방정환전집, 2019)
임은희
옛날에는 어린이란 단어가 없었대요. 그래서 우리를 어린놈, 어린년, 애새끼, 자식이란 단어로 불렀는데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긴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란 단어를 만드셨대요. 어린이 잡지도 만들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동화, 동요, 동시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주셨대요.
옛날 어린이들은 산드룡의 유리구두(신데렐라)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서 엉엉 울었다는데 우리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산드룡하고는 다르게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무서워하는 건 계모가 아니라 학원숙제인걸요?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들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
-신유년(1921) 말에, 일본 동경 백산(일본 하쿠산) 밑에서 소파
<사랑의 선물>(방정환, 1922)
<방정환 전집>(한국방정환재단, 2019)
엄마아빠는 우리가 맨날 놀기만 한다고 하시는데 사실은 맨날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어요. 책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열 줄이나 쓴답니다. 영어 단어도 일주일에 일곱 개나 외우고, 곱셈과 나눗셈도 배운답니다. 이제는 엄마아빠가 불러주지 않는 동요도 배우고요,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 골고루 먹고 바른 자세로 앉아 척추를 보호하는 법도 배워요. 친구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싸웠을 때 예쁘게 화해하고 다시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도 배운답니다. 그러니까 맨날 논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맨날 노는 것처럼 보여도 제발 조금만 더 쉴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요.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갖고 싶은 것을 물어보시는데 '하고 싶은 것'을 물어봐주실 수 있나요? 갖고 싶은 것은 물건이지만 하고 싶은 것은 엄마아빠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예요.
어떤 친구는 혼자 조용히 산책하고 싶어 하고요, 또 다른 친구는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언니오빠들처럼 시내거리를 돌아다니고 싶어 해요. 운동장에서 시간제한 없이 마음대로 놀고 싶어 하는 친구도 있어요. 가족과 공원에서 배드민턴 치며 놀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혼자서 갖고 놀아야 하는 비싼 장난감도 좋지만요. 많은 친구들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을 원해요. 우리는 지쳐있고 외롭거든요.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봐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친구를 이기는 법은 쉽게 가르쳐주고 학원에서 혼자 공부하며 연습도 충분히 해요. 하지만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실천할 시간은 부족하답니다. 열심히 배운 사랑과 우정을 연습할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쁜 걸까요.
우리는 서로를 돕고 싶어요.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엄마아빠랑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아름답게 자라고 싶어요. 우리를 믿고 사랑해 주세요. 우리는 잘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