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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한 아들이 진짜 행복했던 순간, 어른과는 달랐다

[아들 손잡고 세계여행] 여행 끝날 때쯤에야 깨달은 교훈... 둘 다 배우는 시간이었구나

등록 2024.05.18 15:34수정 2024.05.1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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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 지난 기사 '로마에서 받은 공무원 퇴직문서...9살 아들은 소원을 빌었다'(링크)에서 이어집니다.

아들과 세계여행을 계획한 뒤 처음엔 이런 고민을 했었다.


'나라 몇 곳을 선택해서 여유 있게 여행할까? 아니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많은 걸 보여줄까?'

오래 고민하다 '쉽지 않은 기회니 최대한 많은 곳을 보여주자'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한 도시를 자세하게 파헤치는 여행은, 아들이 나중에 커서 혼자 하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나폴리의 SSC 나폴리 축구장 김민재 선수가 뛰던 축구팀으로, 1980년대에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뛴 팀으로 유명하다
나폴리의 SSC 나폴리 축구장김민재 선수가 뛰던 축구팀으로, 1980년대에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뛴 팀으로 유명하다오영식
 
그래서 지금껏 짧은 기간 아주 많은 도시를 여행했는데, 가는 나라마다 왜 이리 보여주고 싶은 곳이 많은지. 항상 여행지 목록에서 어떤 곳을 선택하거나 제외할 때는 아쉬움이 아주 많이 남곤 했다.

나폴리에서 피자를 먹고 나서 그림 같은 경치를 볼 수 있는 쏘렌토와 아말피 해변을 둘러보니, 폼페이란 도시가 눈에 걸렸다. 폼페이의 화산유적을 보여주고 싶어서 가려다가, 아들 표정을 보니 왜인지 시무룩해 보여 대신 유적지 바로 옆에 있는 놀이공원으로 갔다.

화산보다도 놀이기구에 더 관심있는 아들 
  
쏘렌토 해변 이탈리아 남부 쏘렌토에서 아말피까지는 그림같은 경치가 이어진다
쏘렌토 해변이탈리아 남부 쏘렌토에서 아말피까지는 그림같은 경치가 이어진다오영식
 
놀이공원 뒤로는 과거 2천 년 전에 폼페이를 삼켜버린 베수비오 화산(Vesuvio Mt.)이 보였다. 아들에게는 아쉬운 대로 놀이기구를 타며 폼페이에 관해 설명해 줬다.

"태풍아, 저 뒤에 높은 산이 베수비오 화산이야. 저 화산이 2천 년 전에 폭발해서 지금 여기가 다 파묻혀서 사람들이 전부 죽었다네?"
"정말? 무섭네. 그런데 어떻게 지금은 여기 놀이공원이 있어?"



아들은 무서워하면서도 관심은 온통 놀이기구에 가 있었다.
 
폼페이의 놀이공원 놀이공원 뒤로 2천 년 전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폼페이의 놀이공원놀이공원 뒤로 2천 년 전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오영식
   
그리고 베네치아에서는 물 위에 세워진 건물을 보고 있는 아들에게 설명했다.

"여기가 몇백 년 전에 바다 위에 도시를 건설한 거야."
"우아~ 신기하다. 근데 아빠 여기도 이탈리아지? 그럼 피자 맛있겠다."
 

사랑의 도시라 불리는 낭만적인 도시 베네치아에서도 아들의 관심은 온통 피자와 젤라토에 가 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들은 베네치아의 대운하와 수상 주택, 성당보다 젤라토를 좋아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아들은 베네치아의 대운하와 수상 주택, 성당보다 젤라토를 좋아했다오영식
 
오스트리아 빈에 와서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키스'란 작품과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 설명해 주었지만, 아들은 지루해했다. 오히려 지나가는 2층 버스와 마차를 보며 환호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내 욕심대로 아들을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Museum)으로 데려갈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싶어서 빈 시내에 있는 놀이공원 프라터(Wiener Prater)로 갔다.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 알록달록한 지붕이 아름다운 가톨릭 성당으로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알록달록한 지붕이 아름다운 가톨릭 성당으로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다오영식
 
아들은 미술관과 공연을 보러 가는 줄 알고 있다가, 저 멀리 대관람차가 보이자, 입이 귀에 걸린 채 행복해하며 나에게 와락 안겼다. 그렇게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나를 끌어당기며 실컷 놀이기구를 탔다. 그러던 아들이 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아빠, 이따 나가기 전에 우리 저거 타 볼까?"
"관람차? 너 고소공포증 있다며? 안 무섭겠어?"
"무서울 거 같긴 한데. 아빠가 고마워서. 나도 용기 내보려고."


평소 아들은 아무리 타자고 설득해도 무섭다며 안 타던 관람차를 먼저 타자고 말했다. 그만큼 아들의 마음은 너그러워져 있었고, 아빠가 타고 싶어 한다는 걸 아는지 배려하고 있었다.
 
빈의 놀이공원 '프라터' 뒤로 보이는 대관람차는 1897년에 만들어졌다
빈의 놀이공원 '프라터'뒤로 보이는 대관람차는 1897년에 만들어졌다오영식
   
야경이 아름다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다.

숙소에 가기 전 먼저 아들과 세체니 온천(Széchenyi Baths and Pool)으로 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아들과 따뜻한 온천에서 실컷 놀려고 했는데 하지 못한 게 아쉬웠던 나는 부다페스트에서만큼은 제일 먼저 온천에 가기로 생각했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은 세체니 온천은 이탈리아의 고급 스파시설과 달리 예약 시간도 사용 시간도 필요 없고 우리나라처럼 입장료만 내면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온천이라기보다는 큰 풀장처럼 규모도 크고 잘 되어 있어 아들과 마음껏 물놀이하며 놀았다.

한국에서 챙겨간 구명조끼를 입고 온천 속에서 물놀이하는 아들의 표정을 보니, 정말이지 행복해 보였다.

장기간 먼 거리를 여행할 때면 대개 어른들은 많이 들어간 여행 경비를 생각해서라도 이왕 간 김에 평소 보기 힘든 모차르트, 구스타프 클림트 같은 위인들의 작품을 감상하길 원한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야 그나마 덜 아쉬워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들은 겨우 온천 물 안에서 노는 것인데도 마치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내 생각이 틀렸다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온천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1913년에 지어진 온천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온천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1913년에 지어진 온천오영식
 
그동안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아들은 어른들이 좋아하는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에펠탑과 구엘 공원, 콜로세움 앞에서도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때만 웃었지, 사실 평소에는 젤라토나 피자를 먹을 때 더 행복해했다.

불혹을 넘은 나는 '누가 몰라? 이미 그 정도는 다 알고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매일 잊고 있었던 중요한 한 가지가 가슴에 와 박혔다. 마치 아들이 내 가슴에 대고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아빠,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남들보다 좋은 집에 사는 것도, 남들보다 좋은 옷을 입는 것도,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단지 저를 사랑해 주는 부모님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그렇다고 항상 아들을 놀게 할 수만은 없겠지만, 적절한 시기에 충분한 교육은 하되, 스트레스받을 만큼 경쟁으로 내모는 과잉교육은 하지 말자! 대신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잘 만들어 주자고 다짐했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1등하고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게 그리 중요한가? 나는 그보다 내 아이가 학교에 있을 때 행복하고,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걸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게 더욱 중요하다.

여행하며 아들과 많은 걸 보고 배워가자고 생각했지만, 이미 계획단계부터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3만km 넘게 운전하며 여행하는 동안 아빠인 나는 아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 이리저리 살피고 바쁘게 움직였지만, 아들은 항상 나를 바라보면서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그저 아이만 배우는 게 아니라, 아이를 보면서 나 또한 배우는 시간이었구나. 그걸 여행을 마무리하는 종반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나,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 <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유라시아횡단 #세계여행 #아빠와아들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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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강연 합니다. 지금까지 6대륙 50개국(아들과 함께 42개국), 앞으로 100개국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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