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식에 참석한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모습.
서부원
정각 8시가 되어서야 전체 리허설을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럴 거였으면 8시까지 오라고 했어야 옳았다. 아이들은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여야 했다. 그렇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 없었던 건, 우리만 그랬던 게 아니어서다.
말이 좋아 리허설이지, 그냥 줄지어 입장한 뒤 나란히 꽃을 들고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다가가 꽃을 건네면 끝이었다. 복잡한 동선이나 따로 외워야 할 동작도 없었다. 굳이 리허설을 할 필요도 없이, 대기 장소와 함께 이전과 이후의 행사 꼭지만 알려주면 될 일이었다.
더욱 황당한 건, 고작 이걸 위해 평일이었던 전날(16일 금요일) 오후 시간까지 리허설을 위해 아이들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행사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했는데도 막무가내로 국가 행사이니만큼 협조해달라고 요구했다. 국가보훈부와 시교육청이 협의된 사항이라고 명토 박았다.
아이들의 수업 결손 문제를 당사자나 학교가 아닌, 시교육청과 협의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더니, 전가의 보도처럼 국가 주관 행사라는 말만 되뇌었다. 해당 아이들은 모두 학생회 임원으로 교내 5.18 추모 행사도 주관해야 한다며 통사정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의 수업권이 국가보훈부와 시교육청의 '위세'에 눌려 침해당한 셈이 됐다.
수업 결손도 그렇지만, 리허설을 한답시고 전날에도 오후 내내 땡볕 아래에서 시간을 죽여야 했을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더욱이 그들 중 둘은 오후 5시 금남로에서 치러진 5.18 전야제 행사에도 맡은 역할이 있어 발만 동동 굴렀다. 아이들 입에서조차 추모는커녕 '보여주기 행사'일 뿐이라는 조롱이 쏟아져나왔다.
리허설이 대강 마무리된 9시 즈음, 경호원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 차림의 훤칠한 이들이 순식간에 기념식장을 뒤덮었다. 대부분 선글라스를 끼었고, 팔에 '근접'이라고 적힌 완장을 두른 이들도 여럿이었다. 발걸음은 분주했고, 움직이는 동안 누군가와 끊임없는 통화를 했다.
이윽고 낯익은 정치인들이 줄줄이 정문을 지나 기념식장으로 들어왔다. 소복을 입은 5.18 유족들과 노란 점퍼 차림의 세월호 참사 유족, 보라색 조끼를 입은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입장했을 때는 미동도 없던 이들이 여야 정치인들의 등장에 부나방처럼 몰려들었다. '보도' 완장을 찬 기자들과 스마트폰 거치대를 쥔 유튜버들이 뒤엉켜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국가 행사에 동원했다면 끼니는 챙겨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