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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공유주방'에서 차린 모두를 위한 식탁

발달장애인부터 1인가구 등... '공유경제'를 실현하는 제주소통협력센터

등록 2024.07.01 10:07수정 2024.09.2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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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는 우리 몸 안에 심장과 호흡 소리를 듣고 몸 상태를 진단하는 도구다. 이처럼 기획 연재 <청진기>는 청년의 시각으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조명하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다. 이를 위해 당신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개개인의 삶마다 사회에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곧, 당신이 필요하다.[기자말]

'제주소통협력센터'는 제주도가 올해 '지역사회혁신 생태계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사단법인 '행복나눔제주공동체'가 수탁 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시민', '소통', '연결'을 주제로 공간 기반 공유지를 조성하는 게 목표다. 센터에는 지역 문제를 논의하는 '질문도서관'과 어린이 친화 공간 '소소소', 공유회의실과 사무실 등이 있다.

센터 5층에는 공유주방이 있다. 이곳은 '모두의 식탁'이라 불리며, 음식을 매개로 주민들 간 교류를 활성화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이다. 대여 1회당 3시간, 최대 16명까지 수용한다. 센터 활동지원팀 고하음 매니저는 "모두의 식탁에서는 지역 자원을 연계한 요리 워크숍이나 이야기와 먹거리를 나누는 소셜다이닝 프로그램, 소외계층 반찬 나눔 등 행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제주소통협력센터 공유주방 ‘모두의 식탁’ 전경이다. 센터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사회적 협력’을 목적으로 지역 문제 해결에 힘쓴다.
제주소통협력센터 공유주방 ‘모두의 식탁’ 전경이다. 센터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사회적 협력’을 목적으로 지역 문제 해결에 힘쓴다.김명근
공유주방에서 발달장애인의 평범한 일상을 꿈꾸다

지난 6월 30일발달장애 가족 지원사업을 하는 '행복하게 협동조합'이 주방을 이용했다. 조합은 매주 발달장애 아동과 가족이 함께 요리하며 사회자립 능력을 기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는 데 극도의 공포를 느껴요. 그러나 피할 수만은 없어요. 계속 나가서 경험하고 몸으로 익혀야 해요."

이 사업은 3년째 이어져, 아이들에게도 주방은 익숙한 공간이 됐다. 한 아이는 식자재와 조리도구를 꺼내 능숙하게 양파껍질을 벗겼다. 한 학부모는 "매주 참여하니까 아이가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집에서 요리도 한다"고 말했다. 김덕화 조합 이사장은 "칼을 써보고, 거품기로 섞는 등 모든 활동이 아이들 신경 발달에 도움이 된다"라 전했다.

부모들은 "안전하게 아이의 사회성을 기를 공간이 필요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이곳은 부모들에게도 아이를 더 이해하고, 스스로 잘 할때까지 기다리는 게 가능한 공간"이라며 "사회성을 길러야 할 시기에 적합한 활동이 됐다"고 덧붙였다.


 발달장애 아동이 엄마와 만든 음식이다. <행복하게 협동조합>에서는 매주 토요일 발달장애 가족이 함께 요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발달장애 아동이 엄마와 만든 음식이다. <행복하게 협동조합>에서는 매주 토요일 발달장애 가족이 함께 요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제주소통협력센터
자기돌봄은 맛있는 한 끼를 함께 하는 것

이곳에서 운영되는 또 다른 프로그램 '우연한 식탁'은 참여자들이 지역 식자재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1인 가구와 유학생, 파견근무자 등 먹거리 기본권을 챙기지 못하는 주민을 위해 기획됐다.


"이 당근은 제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농부가 키운 거예요. 대부분 주황색 당근만 알고 계시죠? 원래 자색이었는데 네덜란드에서 품종을 개량했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코시랩(COSI lab) 신정원 대표는 친환경 당근과 키위, 감자 등 각 재료의 특징을 설명했다. 그가 요리 시범을 보이면 2인 1조로 팀을 꾸린 참가자들이 따라 했다. 그러나 완성한 요리를 먹을 땐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자주 쓰지 않는 낯선 단어를 활용할 것', '먹는 것과 관련한 주제로 이야기할 것'.

침묵은 잠시뿐이었다. 누군가 통닭 요리에 얽힌 추억을 말하더니, 반대편에서 제주로 이주하며 바뀐 식습관, 특별한 날 꼭 먹는 음식 등 각자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냈다. 한 참가자는 "요즘 부쩍 불안을 느끼는데 나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대화하면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의 2부 진행을 맡은 사회학자 윤여일 교수는 "음식은 살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감정을 일으키고 그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며, "특정 음식은 특별한 과거로 그 사람을 돌려보내 그때 추억과 감정을 불러낸다"고 전했다.

 ‘우연한 식탁’ 참여자들이 일상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
‘우연한 식탁’ 참여자들이 일상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제주소통협력센터

커먼즈 문화와 공유경제

"우리는 협력 공간을 통해 '커먼즈 문화'를 구현해요. 공유회의실, 사무실, 어린이 돌봄 등 다양한 공간을 조성해 민간 주도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그런 활동 속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하려고 하지요."

'커먼즈'란 자원을 장기간 돌보기 위한 사회 체계를 말한다. 시장과 국가 의존도를 최소로 낮추는 동시에 시민들 간 자원 공유를 활성화해 시민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에 커먼즈는 공유경제와 통하는 데가 많다. 특히 자원 낭비를 줄임으로써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려는 목적과 일치한다.

제주소통협력센터의 가장 큰 의미는 지역사회 문제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그 중심 역할까지 맡는 데 있다. 정치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우리는 '기쁨 없는 경제'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잊고 사는 것들이 정작 중요하다. 신뢰와 우정, 정서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시민경제'가 행복을 생산한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경제의 근간이었던 '소유'와 달리, 참여자 서로가 자원, 시간, 재능 등을 나누며 '어울림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경제위기로부터 성장한 공유경제

고 매니저는 "모두의 식탁은 국내 최초 공유주방 스타트업 'WeCook'을 모티브 삼았다"고 밝혔다. 위쿡 김기웅 대표는 사업 초창기 도시락 가게를 차렸다가 늘어나는 임대료와 식자재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그러다가 설비를 갖춘 주방을 예비 창업자에게 제공하는 공유사업에 눈 돌렸다. 이용자가 필요한 시간만큼 사용하기 때문에 투자금을 아끼고, 사업 확장 전에 충분한 시간 검증할 수 있어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다.

불황 시기 공유사업으로 전환한 김기웅 대표 판단은 우연일까? 사실 공유경제는 경제위기 때마다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있다. 2007년 4월, 미국 부동산담보 대출업 2위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급작스레 파산하면서 자국 경제가 흔들렸다. 이후 월가마저 구제 금융에 손 놓자 세계 경제는 혼란에 빠졌다. 당시 미국 취업 인구가 76만 명 감소해 실업률이 7%에 달했으며, 유럽도 7.5%를 기록했다.

개인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주택을 임대하거나 유휴 물품을 판매했고, 기업들은 사무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유휴 자원을 활용해 부가 수익을 내는 경험을 했다. 통계적으로도 2007년부터 2013년까지 공유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8년 에어비앤비와 크라우디펀딩기업 킥스타터가 등장했고, 2010년에는 소셜 다이닝 플랫폼 그럽위드어스 등이 시장에 자리했다. <공유경제> 저자 마화텅은 "결과적으로 미국 금융 위기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불황은 공유경제 출발점이자 급성장의 사회적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공유경제 시장 규모를 보여주는 그래프. 조산구의 <공유경제2.0>에서는 “공유 경제 스타트업 창업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50퍼센트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공유경제 시장 규모를 보여주는 그래프. 조산구의 <공유경제2.0>에서는 “공유 경제 스타트업 창업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50퍼센트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PwC 자료 기반 KT경제경영연구소 재구성
이용률 저조, 지역맞춤형 사업으로 해결해야

다만, '모두의 식탁'은 행사가 있는 날 빼고는 평소 이용이 적다. 고 매니저는 "커먼즈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과 상업 공유주방에서 사람들 간 인식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모두의 식탁과 위쿡이 대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모두의 식탁은 1회 대여마다 결제비를 받기 때문에 장기대여를 원하는 예비 창업자들이 이용하기엔 경제적으로 부담된다.

그러함에도 지역 문제 해결에 목적을 둔 기관으로써 자영업 비중이 전국 세 번째(26.3%)로 높은 제주에 맞춤형 사업을 지원하도록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기업가 조산구는 <공유경제2.0>에서 "(공유주방이) 음식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션과 마케팅 같은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며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액셀러레이션은 스타트업 육성 초기 단계 프로그램으로 창업 지식 공유나 투자유치 기회 등 간접적 지원을 일컫는다.

지난 1분기 국내 먹거리 물가 상승률이 7%에 달하면서 주요 선진국 평균 상승률을 2년 만에 추월했다. 더구나 국민이 느끼는 금융 시장에 대한 불안감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과연 소통협력센터 등 사회에서 벌어지는 공유경제가 다가오는 금융 위기에 또다시 활로를 열지 지켜볼 일이다.
#공유경제 #공유주방 #소통협력센터 #제주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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