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탁구동호회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는데 번듯한 구장도 갖췄다.
한결
스무 명에서 시작한 작은 동호회였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회원 75명이 있다. 구장은 지하에서 시작했지만, 최근 회원들이 모은 출자금으로 번듯한 운동 공간을 임대했다. 그래서 한림탁구장은 동호회 회원 개개인이 주주고, 관리자가 되는 구조다.
동호회 회원들에게 탁구는 스포츠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특히 탁구를 지역 스포츠로 발전시킨 데 자부심이 크다.
"예전에 우리 동네엔 운동이라는 게 거의 축구, 배드민턴밖에 없었어. 우리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탁구를 들여오고, 사시사철 운동할 공간을 만들었다는 데 뿌듯함이 있어."
중세 길드에서 시작한 조합식 공유경제
한림탁구동호회는 2년에 한 번 투표로 임원을 선출하고, 연초에 총회를 열어 구장 운영 방안을 논의한다. 이런 조합식 운영은 회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일깨워 줬다. 한림탁구동호회 홍성의 코치는 "여기는 회원비를 공동으로 모아 운영하는 조직이라서 주인이나 관장이 따로 없다"며 "이곳의 주인은 우리 개개인이기 때문에 조직 운영부터 구장 관리, 행사 기획까지 함께 한다"고 말했다.
조합식 공유경제는 서양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찾을 수 있다. 중세 시대 평민들은 집에 빵을 굽는 화덕은 물론 부엌조차 없었다고 한다. 영주들이 개인 화덕 사용을 금지했다. 결국 마을마다 공동 화덕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 문화가 직업별 모임인 '길드(Guild)'로 발전했다. 이후 직업인끼리 정보와 이익을 나누는 조직으로 변화했는데, 대표적으로 미국의 오렌지 생산자들이 모여 만든 '썬키스트'와 축구 팬이 합심해 결성한 'FC바르셀로나', 프랑스의 대형 은행 '크레디아그리콜'도 그렇게 출발했다.
한국공유경제협회 류지웅 사무국장은 "화덕이나 길드에서 볼 수 있던 공동체 정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물세 살짜리 청년 끼아라 루빅이 친구들과 함께 벌인 뜻깊은 운동에서 두드러졌다"라고 전했다. 루빅은 이탈리아 트렌토 시가 폭격에 휩싸였을 때 '서로 간 사랑과 대화를 통한 일치'를 추구하자는 목적에서 '포콜라레 영성 운동'을 창설했다. 류 국장은 이탈리아어로 '벽난로'를 뜻하는 포콜라레(Focolare) 운동이 공유경제의 시초라고 봤다.
'초심자의 날'엔 부담없이 배운다
홍 코치는 탁구를 '가능성의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탁구는 누군가 '고시 공부보다 어렵다'고 얘기할 정도로 하면 할수록 어려워져요.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성장합니다. 등산엔 정상이 있지만 탁구는 정상이 없지요."
한명희 총무도 탁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한 번 발 들이면 뺄 수 없는 게 탁구예요. 진입장벽은 낮은데 점점 벽이 높아지는 듯합니다. 벽을 넘어야 성장하니까 목표 의식이 생겨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지요."
한림탁구동호회는 올해부터 화요일마다 '초심자의 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탁구에 입문한 회원을 위해 상급자들이 자세와 기술을 가르친다. 홍 코치는 "초심자가 들어왔을 때 정착을 돕는 게 기존 회원의 몫"이라며, "집에 손님이 오면 대접하듯 초심자가 탁구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영화 회원은 초심자의 날이 '회원 간 교류'를 돕는다고 말했다.
"탁구장에 처음 온 사람들은 같이 치자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어요. '초심자의 날'을 통해 상급자들과 한 번 치고 나면 안면이 트여 이후 편하게 말할 수 있지요."
고경범 회원은 "처음 구장에 오면 공 줍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진다"며 "누가 같이 쳐준다는 한마디 말에도 굉장히 설레는데 이젠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어서 좋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