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유족회 소재성 회장이 제19회 한국전쟁기 공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유족대표 인사를 하고 있다.
임재근
1950년 7월 9일 최대 700명이 살해당한 공주형무소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규명 보고서를 통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희생자 위령제 봉행 및 위령비 건립 등을 권고했고, 공주유족회도 지속해서 시에 위령비 건립을 요청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 2021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공주시협의회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화해·상생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왕촌살구쟁이 집단희생지 앞에 위령비를 건립하겠다며 공주시에 보조사업비를 신청해 위령비 건립 추진에 나섰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이 이미지 훼손과 주변 땅값 하락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서 위령비 건립에 난항이 생겼다.
한국전쟁 직후였던 1950년 7월 9일 공주형무소의 재소자와 예비검속되어 공주형무소에 수감된 보도연맹원 등 최소 400, 최대 700여 명이 공주CIC분견대, 공주파견헌병대, 공주경찰에 의해 상왕동 산 29-19번지 일대(일명 왕촌 살구쟁이)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당시 영국의 시사화보잡지 <픽처 포스트>(Picture Post) 기자들이 학살 직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들의 취재 결과는 1950년 7월 29일 자 <픽처 포스트>에 생생하게 담겼는데, 사진 속 트럭에는 짧은 머리카락의 재소자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대부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한 재소자는 팔이 꺾였는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공주 왕촌살구쟁이 학살사건 현장에서는 두 차례 유해 발굴을 통해 지난 2009년 317구, 2014년 80구 등 모두 397구의 유해를 수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