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과 벌집(자료사진).
픽사베이
문득 지난여름, 예기치 않은 위험 앞에서 119를 눌렀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도 여전히 산을 깎아 만든 아파트 1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다양한 곤충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웬만한 곤충의 출연에 그리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윙윙하는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 듯하다.
때아닌 개미들이 뜬금없이 집안으로 줄지어 들어오는 것부터 뭔가 이상한 날이었다. 왜지? 나는 원인을 파악하려고 잠시 방충망을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원인을 채 알기도 전에 나는 허벅지에 뾰족한 것에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
어디선가 들리는 윙윙윙 소리.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내 눈에는, 문득 엄지손가락 길이만 한 거대한 말벌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온 동네가 떠나가라 비명을 냅다 질렀다. 방충망을 닫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서 거실 안으로 도망쳤다.
말벌에게 쏘인 부분은 점점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평소 갑각류(새우, 게, 가재 등) 알레르기를 앓고 있었기에 말벌의 맹독에도 반응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온 마음을 휘저었다. 몸이 어찌 될까 두려워 병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보다도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베란다를 휘젓고 다니는 말벌 한 마리가 집에 있던 아이들을 공격하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방학을 맞아 집에 있던 세 아이가 놀라서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놀란 엄마를 보며 불안해 했고, 각자의 기기로 대처법을 검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엄마, 벌 쏘이면 119에 전화하래."
딸아이가 일러주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그런 내용을 본 것도 같았다. 불이 난 것도 아니고 고작 말벌 한 마리에 대한 공포이지만, 도움이 간절했던 나는 주저 없이 119를 눌렀다.
'집 안에 말벌 한 마리가 들어왔어요, 말벌에 쏘였는데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원이 5명이나 출동... 그런데 수박만 한 벌집이 있었다
집 안 말벌 한 마리 때문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찾아오신 대원은 총 다섯 분이었다. 문을 열면서 민망함은 물론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다. 무더운 날, 다른 사건도 많을 텐데 고작 말벌 한 마리로 바쁜 사람들을 부른 건 아닌지 한심한 시민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은 휴지 몇 장으로 가뿐히 말벌 한 마리를 퇴치하더니 쏘인 곳을 살펴주었다.
"좀 붓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으실 것 같고요. 얼음찜질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증상이 악화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꼭 가까운 병원에 가셔서 진료를 받아보셔야 해요."
호흡이 불편하지는 않은지를 묻고, 붓기의 정도를 살피던 대원이 자분자분 건네준 설명에 이미 통증이 가라앉은 것만 같았다. 말벌에 쏘여서 아픈 게 아니라 걱정이 나를 아프게 했나 싶을 정도로 나는 괜찮았다.
나아가 말벌 한 마리에도 기꺼이 출동해주신 성의가 너무 고마웠다. 연이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도, 웬만하면 혼자 해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흥분을 가라앉힌 말벌을 휴지 몇 장으로 거뜬히 퇴치하는 소방대원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나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결심은 채 5분도 가지 않았다. 대원들을 배웅하고 베란다 문을 닫으러 나갔던 나의 눈에 퇴치된 말벌 근원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단단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공처럼 둥근 형태. 어른 주먹 10개 정도를 합쳐 놓은 듯, 작은 수박만한 어마어마한 크기. 밝은 갈색.
방충망 바깥쪽 처마 밑 주변, 거기 몇 마리의 말벌이 날아다니는 걸 보지 못했다면 나는 그게 벌집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껏 말벌과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고 있었다니!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기겁한 나는 돌아가는 대원들을 다시 불렀다.
벌집을 본 대원들 역시 긴장한 티를 역력히 드러냈다.
"아, 이 녀석들 아주 사나운 종이고요! 위험하니까 문을 닫고 기다려 주세요. 저희도 장비를 좀 챙겨와서 제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벌 쏘이면 생명 위급할 수도... 증상 심하면 꼭 병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