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직 피노 그리지오 ‘스킨’오렌지 와인은 화이트 와인 양조용 청포도로 만들지만 레드 와인을 만들 때처럼 껍질과 씨를 함께 발효시킨다.
임승수
오! 내가 좋아하는 가성비 최강 품종 피노 그리지오다. 근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비싸? 4만 원이나 하네? 피노 그리지오는 저가형 화이트 와인이라 대체로 1만 원대다. 궁금해서 상품 정보를 자세히 살펴보니, 아하! '오렌지 와인'이구나.
오렌지 와인은 화이트 와인 양조용 청포도로 만들지만 레드 와인을 만들 때처럼 껍질과 씨를 함께 발효시킨다. 그래서 특유의 오렌지색을 띠게 되고 타닌 함량도 높아 화이트 와인보다 한층 무겁고 풍부함 바디감을 가진다. 제조 공정도 복잡하고 생산량도 적은데 최근 인기가 상승해 같은 품종의 화이트 와인보다 가격이 높은 편이다.
로제 와인과 비슷한 것 아니냐고? 로제 와인은 오렌지 와인과 달리 레드 와인 양조용 적포도를 사용한다. 다만 껍질과의 접촉 시간을 레드 와인 양조 때보다 짧게 가져가다 보니 빨간색이 아닌 옅은 분홍색이 감돌게 된다.
원래 유행에 둔감한 편이라 오렌지 와인 경험이 많지는 않았는데 일단 피노 그리지오 품종이라 호기심이 동했다. 하지만 결제에 이르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관문이 아직도 여럿 남아 있다. 가격은 적절할까? 전 세계 거래 평균가를 알려주는 와인서쳐 앱으로 확인하니 대략 4만 8천 원(세금 제외)이라고 나온다. 비타트라 일본에서는 세금과 배송료를 합산해 4만 원 정도니 훌륭한 가격이다. 통과!
이제 후기를 살펴봐야지. 네이버에서 'primosic pinot grigio'로 검색하는데, 이런! 체험담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와인 정보가 담긴 블로그를 딱 하나 발견했는데, 웃프게도 비타트라 일본 관리자의 블로그였다. 내용을 살펴보니 프리모직이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역에서 손꼽히는 생산자라고 나와 있긴 했다. 하지만 나(작가)도 다른 사람한테 내 책을 소개할 때 희대의 명저라고 하지 않는가. 음, 어쩌지? 그래. 척척박사(챗지피티)에게 물어보자.
"이탈리아의 primosic이라는 와인 생산자는 평판이 어때? 유명한 편이야?"
"이탈리아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Friuli-Venezia Giulia)의 콜리오(Collio)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유명한 와인 생산자입니다."
"이 와이너리의 피노 그리지오 오렌지 와인을 구매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매우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특히 오렌지 와인은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과는 다른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배송비와 세금을 모두 포함해 40,000원 정도에 구매하려고 하는데 좋은 가격이야?"
"40,000원이면 약 $30.77에 해당합니다. 평균 가격은 $34 정도이니 비교적 좋은 가격으로 보입니다. 특히 배송비와 세금이 포함된 가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유명한 생산자가 만들었고, 내가 좋아하는 피노 그리지오고, 색다른 오렌지 와인이고, 심지어 좋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데, (예상되는 아내의 바가지를 제외하고는) 내가 구매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뭐 어차피 아내와 마실 텐데, 이해해 주겠지. 흐흐.
결제하고 6일이 지나니 와인이 도착했다. 아내가 알아채기 전에 택배 상자를 얼른 방으로 들여다 놓았다. 상자를 개봉하니 사제복처럼 검은 라벨에 주둥이 부위에 선명한 오렌지색 포일을 두른 와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놈 참 쌔끈하구먼. 무슨 음식이랑 곁들여야 좋으려나.
피노 그리지오 화이트 와인이라면 어울리는 음식을 열 가지 이상 술술 읊을 수 있겠다만, 오렌지 와인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구나. 프리모직 홈페이지에 추천 음식이 있을까 싶어 방문했는데, 빙고! 영어로 적힌 내용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음식 페어링: 생선 및 해산물 수프, 토마토가 들어가면 더 좋음. 아시아 요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운 요리나 새콤달콤한 요리. 피망 소스를 곁들인 구운 문어나 클래식한 파스타 아마트리치아나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배달로 시켜 먹기 좋은 건 역시 파스타 아니겠어. 그나저나 파스타 아마트리치아나? 이게 뭐지? 아나스타샤도 아니고 아수라 백작도 아니고. 아무튼 이름이 참으로 어렵구먼. 검색해 보니 이탈리아 아마트리체 지역에서 유래한 음식이며, 관찰레(햄의 일종)가 들어가는 매콤한 맛의 토마토 스파게티라고 한다.
이 요리를 배달해 주는 음식점을 찾아 주문한 후 와인을 꺼내어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포도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오렌지 와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색이 또르르 차오른다.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는데, 필터링을 하지 않는 와인에서 종종 확인되는 (음용에 아무런 문제 없는) 미세한 부유물이 보인다.
레드와 화이트의 장점만 뽑아 놓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