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하이닉스 capex 추이
삼성증권
결과는 실망스럽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메모리부분 capex(자본적 지출, 대체로 설비투자)는 오히려 5조 원가량 감소했다. K칩스법 없이 지난 5년간 꾸준히 증가해 2배가 된 추세와는 대비된다. 비메모리 부문은 전년도에 비해 약간 늘긴 했지만, 지난 5년 추세에서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메모리 부문의 capex 감소를 메우기는 태부족이었다. 심지어 삼성증권은 2024년에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비메모리 부문 모두 capex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SK하이닉스는 더 심하다. 2022년에 비해 설비투자가 반토막이 났다. 20조 원에 육박하던 숫자가 8조 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 5년을 통틀어 최악이다. 전년도보다 더 많은 설비투자를 하면 거기에 또 일정 비율을 공제해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까지 적용되었음에도 이러하다. 3조 원에 달하는 세금을 깎아준 것 치고는 썩 가성비가 나왔다고는 보기 어려운 실적들이다.
여러 변수를 통제하는 엄밀한 연구가 수행될 필요가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K칩스법은 반도체 기업의 설비투자의 방향을 바꾼 변수로는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텔, TSMC, 마이크론 등의 다른 반도체 기업들의 capex 실적과 비교해도, 부진한 반도체 경기사이클의 영향이 두드러져 보일 뿐 세금과 보조금 변수를 읽어내기는 어렵다.
산업 전체로 봐도 설비투자는 K칩스법 통과 이후 하향세를 그렸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제공하는 지표 모두 그렇다. K칩스법으로 세액공제 대상으로 추가된 수소산업이나 미래형 이동수단의 경우 법안 통과 반년이 지나도록 세액공제
신청 자체가 '0'이었다. K칩스법으로 56조 7000억 원의 투자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매일경제>와 한국경제연구소의 '
핑크빛 미래'는 도대체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얼렁뚱땅' 법안 심사가 빚어낸 예견된 결과
법이 통과되었던 시점부터 이는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지난해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질책과 기획재정부의 말바꾸기로 황급히 법안심사가 이뤄진 탓에 심사는 '얼렁뚱땅'과 중구난방의 연속이었고 응당 검토했어야 하는 것들이 생략되었다.
기재부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던 반도체 지원이 며칠 사이에 왜 갑자기 두 배로 늘려야 할 정도로 부족해진 것인지 설명은 없었다.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하는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나 최저한세를 고려한 실질적 감면액 추산, 반도체 외 갑자기 추가된 업종(수소, 미래형 이동수단)에 대한 검토는 없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대한 감면액 추정치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애초에 세금감면과 투자증가의 관계는 학술적으로 합의된 결론이 도출된 바가 없기도 하거니와, 법 자체가 신규설비투자가 아닌 계획된 모든 설비투자를 감면 대상으로 인정해 주는 방식이라 투자 유인효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설비투자에 정부가 현금을 얹어주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세액공제라는 '편리한 방식'에 의존한 것도 문제였다. 세액공제는 기본적으로 낼 세금이 있을 때 환급이 이뤄진다. 지난해와 같이 반도체 기업들의 성적이 '역대급으로' 나쁠 때 법인세 실적 역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낸 세액이 없으니 환급은 없고 세액공제분은 이월된다.
막대한 고정자본투자를 바탕으로 시장우위를 점하는 것이 기본 전략인 반도체 산업에서 실적이 나쁜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설비투자가 강요되지만, 세액공제가 현금흐름에 보탬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투자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없다.
세액공제와 더불어 최저한세의 존재 역시 투자세액공제의 효과를 상쇄시킨다. 세법상 법인세 과표가 1000억 원 이상인 기업은 법인세를 최대한 감면받아도 17% 이상의 세금은 내야 한다. 지난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전략기술 중 반도체 설비투자액은 약 20조 원이었다. 그렇다면 공제액은 3조 원이 되는데, 이건 대부분 삼성과 하이닉스의 몫이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삼성과 하이닉스가 낸 법인세 연간 평균 납부액이 9조 원가량이다. 개별 기업의 세무상 법인세율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공시된 회계를 기준으로 추산한 21% 언저리를 평균적인 실효세율로 봤을 때, K칩스법으로 연간 3조 원이 감면된다면 세율은 14%로 떨어진다. 세율이 최저한세율인 17% 이하로 떨어지면 최저한세율이 적용되므로 3조 원 중 1조 3000억 원은 공제될 수 없다.
공제 안 된 금액은 이월이 되긴 하겠지만 이들의 설비투자 규모로 보건대 매년 막대한 이월액이 쌓일 것이고 설비투자의 증감과는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최저한세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공제율을 아무리 높인다 한들 투자 인센티브는 원천적으로 작동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묻고 더블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