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라와 친구들과 함께한 알렉산드리아의 저녁잠시 나갔다 오니 주방은 나흘라와 조카들이 이집트식 만찬을 만들기 위해 북적였다. 크림과 함께한 쌀음식 로즈메아마르, 닭고기 육수에 몰로키야 채소로 만든 몰로키야 등 다양한 이집트 전통음식으로 우린 저녁 식사를 함께 보냈다. 길게 펼쳐진 상은 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이 가득 놓여있다.
신예진
나흘라와의 이야기를 끝으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다녀오니 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이 가득 놓여있다. 음식 조리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흘라 옆에 가서 무슨 일인지 묻는다.
"데이지, 지금껏 경험해 보지 않은 이집트 전통 요리를 보여줄게!"
잠을 줄여가며 회사를 운영하고, 옷을 제작하는 그가 오늘 처음 본 배낭객을 위해 땀 흘려 요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보인 호의에 감동하며 한바탕 성대한 만찬을 음미한다.
이후 만찬을 마친 이들이 하나둘씩 떠난 뒤 나흘라와 단둘이 남는다. 만찬 여운을 다독이며 빨간 소파에 앉아 찻잔을 부딪친다. 고동색으로 우러난 홍차 온기를 움켜쥐면서 그는 못다 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
나흘라는 암묵적으로 밝은 피부를 선호하는 이집트인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흑인, 백인, 황인 등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이집트인이지만, 상대적으로 어두운 피부색을 가질수록 은근히 멸시를 당한다는 것이다.
은연 중에 밝은 피부색을 동경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피부를 밝게 하는 화장하며 밝은 피부색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여긴단다. 나흘라도 본인의 어두운 피부색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차별받으며 자라온 이야기를 한다.
"형제 모두는 밝은 피부색이지만, 어두운 피부와 곱슬머리를 가진 나만이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했지. 나는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 더 많이, 오래 노력해야 했어."
그의 어머니는 나흘라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다른 형제와는 달리 히잡을 강제로 씌우고 그에게만 가사 노동을 맡겼다. 공부하는 형제들 사이에서 온갖 궂은 집안일을 하고 구박을 당하면서도, 그는 매일 밤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나흘라, 넌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이야. 슬퍼하지 마, 너는 좋은 삶을 살 거야.'
나흘라의 시련은 부모님의 차별과 구박만이 아니었다. 그는 가족 유전자로 지중해열 (Mediterreanan Fever) 희귀병을 앓고 있다. 지중해열은 복통과 고열을 동반하는 유전성 장애이다.
합병증이 유발되면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장기 및 조직에 침착되어 장기 기능을 손상하기도 하며, 여성의 경우 치료받지 않으면 불임과 유산의 위험성도 있다. 염증은 자연 치유되기도 하지만 재발을 반복하며 급성기에는 심한 통증으로 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나흘라는 부모님에게 각각 유전을 받아 희귀병 진단을 받은 이후 약을 통해 하루하루 이겨내고 있었다.
"희귀병을 진단받았을 때 고민하다가 깨달았어. 알라가, 그럼에도 삶을 즐기라고 말하고 있는 거구나. 병은 있지만,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여성이 되고 싶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잊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