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름방학큰아이의 생리가 시작되면 또 어떤 마음이 들까? 조카를 통해 예행연습을 한 듯하다.
김보민
한 달에 한 번, 나의 몸과 마음이 백 점 만점에 몇 점인지 알 수 있었어.
생리를 하기 전 달콤한 초콜릿을 달고 사는 내 모습도, 생리 기간이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내 모습도 모두 생경했어. 그즈음 여자 친구가 예민해지면 남자들이 '너 요즘 생리 기간이야?'라고 묻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어.
생리가 시작되면 왜 식욕이 왕성해지는지, 왜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지 잘 몰랐기에 생리는 그저 안 하면 좋을 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궁의 존재만 어렴풋이 느끼게 해줄 월례 행사일 뿐이었어.
직장 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서너 번 새벽까지 야근하는 일이 잦았어. 생리가 불규칙해지고, 생리통이 심해졌어. 다음날까지 고객사에 전달해야 하는 월간 보고서를 쓰는데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니 허리를 곧추세우고 모니터를 가득 채운 파워포인트 화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어. 지글지글 끓는 방바닥에 허리를 지지며 누워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달에 한 번은 꼭 했던 것 같아.
다행히 나의 여자 상사에게 생리통이 심해 조금 일찍 퇴근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나의 생리통을 이유로 고객사에 월간 보고서를 전달하는 날짜를 조정할 수는 없으니,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으며 견뎠어.
재인아, 네가 생리팬티를 애벌빨래하는 모습을 보며, 자는 동안 생리가 샐까 봐 편안한 반바지가 아닌 몸에 착 달라붙는 거들 같은 바지를 챙겨 입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지난 시절을 소환했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생리를 하게 될 너를 딱하게 여겼어.
한 달에 한 번이라고 하지만 일주일에서 열흘 가까이 뜬금없이 찾아오는 입터짐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을 관리해야 하고, 생리대를 미리 쟁여둬야 하고, 생리혈이 샐까 신경 써야 하고, 진통제도 구비해야 하는 일상을 유지하느라 피곤한 여자의 일상을 겪게 되겠지?
두 번째 출산 후 6년이 지난 지금, 내 자궁은 할 일을 끝냈다고 생각하곤 해. 매달 하는 생리가 멈추며 자궁이 은퇴하는 시점이 오면 몸과 마음이 그저 후련할까?
심장은 피를 혈관으로 내뿜고, 콩팥은 소변을 보관하다 배출하고, 폐는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데 내 자궁과 난소는 뭘 하며 지낼까? 더 이상 생리대를 살 필요도 없고, 이불과 바지에 생리혈이 새는 실수도 할 일 없고, 생리통도 사라지고 더 이상 아이도 낳을 수 없는 어느 때를 상상하다가 문득 이제 막 제 역할에 충실하기 시작한 너의 자궁을 떠올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