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못동천석실(붉은 네모 속) 옆에도 고산은 바위를 막아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동천석실 주변에는 너럭바위가 있어 그곳에서 차를 즐기기도 하는 등 고산은 하늘아래 바위틈에 터전을 잡고 몸과 마음 수양을 했다.
이윤옥
차를 산 밑 주차장에 세우고 녹음이 우거진 자갈길을 20여 분 올라야 동천석실에 다다를 수 있다.
여름 무더위 속이라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다. 이 비탈진 산길을 짚신으로 올랐을 고산 선생, 젊은 나이가 아니라 당시 환갑도 훨씬 지났을 나이에 동천석실을 춘하추동 오르내렸다니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나부터도 헉헉 거리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것을 참고 산길을 올라가니 동천석실이 나타났다. 저 아래 발밑에 펼쳐진 부용동보다 오히려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 곳에 동천석실은 자리하고 있었다.
이 높고 험한 바위 위에 지어진 한 평짜리 집을 사랑한 고산의 마음을, 이곳에 오르니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시퍼렇게 살아있는 권력을 쥔 궁궐의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주저 없이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고산.
직신(直臣)이라는 게 다 지난 지금의 눈으로 보면 강직한 일이겠지만, 당시의 당사자에게는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왜 고산인들 몰랐을까? 그래도 역사는 간신보다는 직신을 기억해주고 있으니, '사필귀정'이라는 말은 시대를 초월해 들어맞는 말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