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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갈아 먹는 와사비, '먹부림' 여행 다녀왔습니다

[일본 소도시 투어(2)] 입과 눈이 지루할 틈이 없다... 호텔조식부터 해산물 맛집까지

등록 2024.10.05 11:35수정 2024.10.0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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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휴양도시, 맨홀뚜껑마저 남다르네요 https://omn.kr/2ad2v

여행의 낙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식도락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나름 두 권의 푸드 에세이(2017년 식탐일기, 2023년 전자책 '내 책갈피 속 봉봉')를 낸 경력이 있다 보니 나에게 여행이란 취재도 겸한 일이다. 특히 외국에 나가면 최대한 현지식을 다양하게 맛보려 하고, 마트에서 식재료 쇼핑도 한다. 이번에도 배우자와 함께 알찬 소재를 건져올 수 있었다.


시즈오카 시그니처 메뉴, 아오바 오뎅거리

시즈오카 하면 MBC <나 혼자 산다>에 소개됐던 오뎅이 가장 유명하다. 아오바 오뎅거리는 여행 첫날, 숙소에 짐을 풀기 전 가장 먼저 들렀다. TV에서 봤던 것처럼 화사한 벚꽃 장식과 빨간 등롱이 즐비한 가운데 벌써부터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다만 이날은 평일이었기에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고, 고심 끝에 너무 붐비지 않고 한 팀 정도의 손님이 있던 작은 가게로 들어섰다. 공간이 협소해 일단은 가방을 한쪽 벽면에 걸고 파파고의 도움을 빌려가며 메뉴를 탐색했다.

a 아오바 거리 한국 예능에도 나왔던 오뎅골목이다.

아오바 거리 한국 예능에도 나왔던 오뎅골목이다. ⓒ 정세진


녹차의 고장 시즈오카에 온 김에 나의 첫 픽은 말차 사와(과즙수)였고 배우자는 맥주를 골랐다. 오토시라고 부르는 기본 안주는 에다마메와 시즈오카 특산이라는 사쿠라에비(벚꽃새우)를 살짝 볶은 것이다. 참고로 소량 제공되는 오토시도 유료인데 일종의 자릿세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말차 사와는 진한 초록색에 단맛이 전혀 없는데 쌉쌀한 녹차향이 드라이한 일본 소주의 풍미를 한층 돋운다. 오뎅 메뉴 중에서 찐 어묵인 한펜과 가운데가 뻥 뚫린 대롱 모양의 치쿠와, 푹 삶은 무, 오징어, 다진 고기완자 츠쿠네 등등을 선택했다. 한국식 오뎅이 '국물'에 비중을 두는 데 비해 이동네는 다양한 재료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생선을 뼈째 갈아 만든다는 검은 한펜은 시즈오카의 시그니처 메뉴기도 하다.


잠깐 사족을 붙이자면, 우리는 보통 어묵=오뎅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식 오뎅(おでん)은 가쓰오부시 육수에 어묵(가마보코)을 포함해 무와 소힘줄, 달걀, 다시마 등등 다양한 재료를 익혀먹는 요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오뎅 재료로 어묵이 포함돼 있는 셈.

오뎅꼬치 외에 안주류는 별도로 가격이 적혀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운영하는 가게인데 안주 하나를 만드는 데 꽤 시간과 공이 들어간다. 옆자리 아저씨들이 주문한 달걀말이가 익어가는 걸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데 이분들, 자신들이 먹으려던 안주를 우리 부부에게 토스한 후 새로 주문하시는 거다.


감사인사를 꾸벅 하고 한입 맛봤는데 모짜렐라 치즈가 듬뿍 들어 녹진녹진한 맛이 그만이다. 첫날부터 생각지 않은 친절을 경험하고 왠지 흐뭇해졌다. 겨자에 찍어먹는 오뎅도 기대 이상으로 맛있고,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생 와사비를 쓱싹 직접 갈아서 먹는 장어정식

a 시즈오카 장어 맛집 시라야키와 히츠마부시 등의 메뉴가 있다.

시즈오카 장어 맛집 시라야키와 히츠마부시 등의 메뉴가 있다. ⓒ 정세진


두번째 날, 원래는 유명하다는 함바그 스테이크 집에 가려고 했으나 웨이팅이 무려 세시간이란다. 곧 이토 시로 이동해야 하는지라 급히 메뉴를 변경했다. 기왕에 좋은 거 먹자는 배우자의 의견에 장어로 결정했다. 여기도 원래는 웨이팅이 길다는데 오픈 시간에 맞췄더니 운 좋게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일단 시원한 녹차를 먼저 가져다준다.

녹차로 갈증을 풀고 나서 메뉴를 탐색했다. 배우자는 사쿠라에비와 치어 등이 올라간 양념구이 덮밥을, 나는시라야키(소금구이)를 골랐다. 시라야키에 500엔을 추가하면 정식으로 변경이 가능하다. 일본식 장어구이에는 알싸한 향이 나는 산초가루를 뿌려 먹는다. 마라탕의 얼얼한 맛을 내는 화자오, 추어탕에 넣어 먹는 제피가루와 같은 종류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 시즈오카 특산 와사비도 곁들이는데, 특이했다. 튜브에 든 페이스트가 아니라 생 와사비 뿌리를 그 자리에서 갈아 먹는다. 금방 갈아낸 와사비는 생각보다 자극적이지는 않으면서 코끝이 쨍~하고 뚫리는 느낌이라 더 좋다.

사실 여행 전에 이즈시에 있다는 와사비 맛집을 가보고 싶었다. '고독한 미식가' 4번째 시즌에 나왔던, 흰밥에 금방 갈아낸 와사비를 듬뿍 얹고 가쓰오부시를 올려 먹는 가게였다. 시간 관계상 이즈에 들르기는 무리였지만 어쨌든 시즈오카 특산물이라는 생 와사비를 맛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돌아올 때 나는 와사비 잎과 줄기를 술지게미에 절인 와사비즈케를 구매했는데, 알싸한 것이 흰밥과 어울린다.

배우자가 주문한 덮밥에는 오차즈케로 먹기 위한 육수가 따라 나왔다. 시라야키는 작은 사이즈로 시켰지만 밥과 먹었을 때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카보스(초귤)즙과 산초가루를 뿌리니 한국에서 먹던 장어구이와는 또 다른 맛이 난다. 한국 여행객들에게 꽤 알려졌는지 한국어 메뉴판도 있다.

일식의 묘미는 역시 해산물... '취향저격' 맛집

a 아타미 해산물 파티 줄서서 먹는 아타미 퓨전 해산물 맛집.

아타미 해산물 파티 줄서서 먹는 아타미 퓨전 해산물 맛집. ⓒ 정세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맛있었던 메뉴를 꼽자면 바로 이곳, 아타미의 해산물 맛집이었다. 중간지점인 아타미에서 배우자가 퓨전 이자카야를 찾아냈고, 음식 사진을 보니 딱 '취향저격'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점원들이 일제히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하고 반긴다. 살짝 정신없기는 하지만 화이팅이 넘치는 분위기다. 초저녁인데도 꽤 북적이는 모습을 보니 인기 있는 맛집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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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밥이 이곳의 주 메뉴인데 시즈오카 명물이라고 알려진 금눈돔 덮밥과 각종 해물이 올라간 카이센동을 골랐다. 카이센동은 참치회와 연어, 관자 등을 기본으로 녹는 듯한 성게알과 보석같은 연어알이 듬뿍이다. 담백한 금눈돔과 짭짤한 바다향이 터지는 두 메뉴를 번갈아 먹으니 지루할 틈 없는 맛의 변주곡이 펼쳐진다.

덮밥 외에 배우자는 문어 튀김을, 나는 서양풍 차왕무시를 주문했다. 차왕무시는 위스키 잔 같은 작은 유리잔에 담겨 나오는데 콩소메 육수로 맛을 냈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의 향이 살짝 풍긴다. 가니시는 게살과 연어알, 그리고 처빌 잎이다.

기존에 알던 차왕무시 맛과는 상당히 달라서 호불호가 갈릴 듯한데, 개인적으로는 '극호'. 작은 종지에 성게, 연어알을 추가로 주문해 먹으니 말 그대로 취향저격 안주가 됐다. 그 밖에도 성게 파스타, 해물 스튜 같은 서양풍 메뉴가 있었다.

a 마지막 점심 아타미 시내로 돌아와 정식과 덮밥을 먹었다.

마지막 점심 아타미 시내로 돌아와 정식과 덮밥을 먹었다. ⓒ 정세진


점심 시간대의 가벼운 식사라면 우리나라의 백반과 비슷한 정식, 혹은 덮밥이 무난한 선택이다. 아타미 상점가는 점심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가게들이 북적이는데, 식당을 미리 찾아두지 않았다면 입구에 걸린 메뉴판 사진을 택하는 게 가장 빠르다.

정식과 덮밥 모두 기본적으로 된장국, 장아찌를 함께 제공한다. 일본 가정식에선 매끼 빠지지 않다 보니, 한때 일본에선 "당신이 끓여주는 된장국을 먹고싶다"는 말이 프로포즈 멘트였다고 한다(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비싸고 찾기 힘든 전갱이회는 선도가 좋은 듯, 비리지 않고 감칠맛이 있다. 요즘은 그래도 숙성회가 유행이라 그런지 '히카리모노(고등어, 전갱이 같은 등푸른 생선을 가리키는 말로 '빛난다'는 의미)'가 예전보다 흔해진 편이다. 튀김덮밥은 새우와 시소잎, 호박 등의 구성이다.

호텔 조식, 보기 힘든 재료들... 정성스러운 료칸의 아침상

a 시즈오카 호텔 조식 1인당 1400엔 조식 뷔페. 구성이 알차다.

시즈오카 호텔 조식 1인당 1400엔 조식 뷔페. 구성이 알차다. ⓒ 정세진


첫날 체크인한 호텔에서는 아침식사는 1인당 1400엔 씩 하는 조식뷔페로 해결했다. 로컬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려면 호텔 조식은 생략하란 이야기도 있지만 이곳은 시즈오카 특산 재료들을 활용한 맛있는 메뉴가 많았다.

차는 시원한 녹차와 호지차, 우롱차 등 세 종류가 있다. 명물 요리인 오뎅도 한켠에 준비됐고 녹차 소바와 따뜻하게 양념을 곁들여 먹는 두부 등이 메인이다.

밥은 흰밥 외에 육수로 맛을 낸 연분홍빛 사쿠라메시 두 종류다. 매실 장아찌, 낫또, 마즙, 치어, 톳 등 일본식 반찬들을 종류별로 담아와서 밥과 먹었다. 이른바 '네바네바(끈적끈적)동'이라고 불리는 일본식 덮밥을 즉석에서 해먹은 건데, 끈적이고 흐물흐물한 식감을 선호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재료들이 많다. 기왕 일본에 왔다면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을 듯하다.

디저트는 신선한 과일류와 푸딩이 있었다. 단호박이 든 푸딩은 식감이 푸딩인듯 카스테라인듯 살짝 퍽퍽한데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 신기했다. 상대적으로 빵이나 소시지 같은 서양식 메뉴들은 다소 평범한 편. 일단 뷔페에서 탄수화물은 최대한 덜 먹는 게 여러 메뉴를 즐기는 요령이다.

a 이토 료칸 식사 입실 때 준비돼 있던 웰컴푸드 감귤젤리와 아침 조식.

이토 료칸 식사 입실 때 준비돼 있던 웰컴푸드 감귤젤리와 아침 조식. ⓒ 정세진


이토 료칸 요시노는 직접 방에 아침식사를 가져다 주는 곳이다. 금액을 추가하면 저녁 가이세키 코스도 먹을 수 있다는데, 우리는 이미 저녁을 먹고 온지라 생략했다.

일본 료칸이 비싼 이유는 대체로 포함되는 식대 때문이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들이 나오고 사실상 료칸 숙박의 메인은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방에 들어서니 웰컴 푸드로 감귤 젤리가 하나씩 놓여 있다. 숙소 입구에는 자체 판매하는 지역 특산물(냉동 금눈돔, 말린 나물 등)이 전시됐고, 차가운 녹차를 자유롭게 가져다 마실 수 있다. 다음날 아침 커다란 칠기 상자를 들고 점원이 문을 두드렸다.
1인 식사 쟁반을 하나씩 꺼내더니 식사하기 편하도록 세팅을 해준다. 조심스러운 몸짓에 무언가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노릇노릇한 생선구이는 한 입 물자 기름기가 입안에서 쫙 퍼진다. 마즙을 뿌린 참치회, 간 무를 곁들인 치어, 달달한 달걀말이가 엄마의 정성어린 아침식사처럼 충족감을 준다. 여기에 게가 들어간 된장국과 담백한 어묵, 보랏빛 가지절임인 시바즈케가 함께 나왔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가이세키가 나오는 료칸에도 가보고 싶다.

a 빙수와 말차 스무디 마무리는 달달한 디저트로...

빙수와 말차 스무디 마무리는 달달한 디저트로... ⓒ 정세진


한편, 이번 일본 여행 내내 날씨가 꽤 더워서 차가운 음료수를 엄청나게 먹은 것 같다. 시럽만 뿌린 심플한 일본식 빙수와 녹차 스무디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빙수에 뿌려먹는 시럽에는 멜론, 딸기, 파인애플, 블루하와이 등이 있었다. 시즈오카 박물관 1층 카페에서 먹었던 녹차 스무디에는 작은 경단과 팥앙금이 곁들여졌다.

종종 귀국하는 비행기 시간이 촉박한 경우, '공항에서 먹고 가자'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면 공항에 먹을 만한 가게가 거의 없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시즈오카 공항 역시 규모가 작은 탓인지 식당이 마땅치 않았다. 소도시 여행을 한다면 미리 감안해야 할 사항이다. 아울러, 시간이 생명인 여행객에게 2~3시간 웨이팅을 해야 하는 맛집은 오히려 비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핫플'에 집착하기보다 본인의 기호에 따라 식사 장소를 정하는 쪽을 추천한다.
#일본 #소도시 #시즈오카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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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관련하여 식생활 문화 전반에 대해 다루는 푸드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대학가의 음식문화, 패스트푸드의 범람, 그리운 고향 음식 등 다양한 소재들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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