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청소경비주차 노동자 투쟁 자료사진
공공운수노조
나는 강의실을 쫓아다니면서 수업 시작 5분 전에 양해를 구하고, 학생들에게 우리가 왜 파업을 통해 투쟁해야 하는지 알렸다. 학생들은 공감해 주었고, 지지 서명도 많이 해주었다. 투쟁하면서 청소를 하지 않자, 곳곳에 먼지가 쌓였다. 화장실은 변기가 막혀 바닥에 변이 쌓였고, 복사실에서 쓰고 있는 옆 창고에까지 똥물이 들어가기도 했다. 쓰레기장에는 쓰레기 봉지가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총파업에 들어갔을 때, 소장이 와서 "송영호씨! 쓰레기 좀 치워가면서 하라!"고 했다. 나는 "총파업인데 왜 일을 해요?"라며 강하게 저항했고, 노조 지침을 철저히 따랐다. 투쟁 중 조합원간 갈등이 생겼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투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화합하고 단결해야한다는 걸 강조했다.
투쟁 기간 중 남편이 출근시켜주는 차 안에서 파업가를 불렀다. 남편이 "나 이 다음에 집에서 안 쫓아낼 거지?"라고 말했다. 집안에서 조용히 살림만 하고 남편이 안 벌어다 주면 굶어 죽을 거라 생각했던 아내가 열심히 투쟁하는 모습에 놀랐던 모양이다.
투쟁 중에는 노동가를 많이 불렀고, 대중가요를 개사해서 부르기도 했다. 늠름한 학생들이 연대해주었고, 전 조합원이 똘똘 뭉쳐 싸웠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승리하는 날 노천극장에서 학생들과 조합원이 한자리에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모두 기뻐했다.
그해 홍대에서도 용역회사가 바뀌면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집단 해고하는 바람에 복직을 요구하는 투쟁이 벌어져 한동안 연대투쟁 하러 갔었다. 그 후에도 서울여대 동문회 행사가 있던 날 총장 면담을 요구하면서 차를 에워쌌던 일도 있었고, 신촌에서 시급 만 원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강대교를 건너 여의도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70살 되었지만, 2년 더를 위해 힘내련다
12년 동안 운영위원을 하면서 서울 시내에 안 가본 대학교가 없을 정도였다. 연대를 하러 현장에 갔다가 내가 처해있는 환경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볼 때면, 동지애를 느끼면서 힘껏 연대를 했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내가 힘을 받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쫓아다녔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살았고, 결혼해서는 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 많은 날을 인내하며 살았다. 그동안 억누르고 살았던 감정들을 투쟁 현장에서 팔뚝질하며 많이 쏟아낸 것 같다. 청소 일을 하는 나에게 노동조합은 꼭 필요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었던 것들을 조합원들과 힘을 합하여 투쟁을 통해 이루어 낼 수 있었다. 투쟁은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본다.
경제적으로 막막해서 청소 노동으로 뛰어들었고, 일을 시작했던 초기와 달리 지금은 떳떳하게 "청소하러 다닌다"라고 말하고 있다. 70살이 된 지금도 새벽 4시만 되면 오뚝이처럼 일어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집에서 살림을 할 때나 직장에서 일할 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신체 기능이 약해진 것 같고, 특히 관절 쪽이 좀 안 좋은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결혼 전에 "다른 집 애들은 돈도 잘 버는데 너는 왜 그래?"라고 하셨던 엄마 말씀이 나를 힘 나게 한다. 일을 못 할 정도는 아니니까 치료받아가며 2년 남은 정년을 잘 마치고 싶다.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 소박한 내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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