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흔한 운동장 풍경. 푸른 잔디밭과 파란 하늘이 만나면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박순우
십 수 년 전 제주로의 이주를 한창 고민할 때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학교 운동장이었다. 당시는 아이가 없었는데도 그랬다. 푸른 잔디밭을 볼 때면 그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아이가 생길지 기약도 없으면서 그런 풍경을 머리 속에 그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아이가 걸음마를 뗀 뒤부터는 자주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특별한 곳을 방문하지 않아도, 학교 운동장은 아이에게 그 자체로 넓은 자연이자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아이는 엄마 품을 떠나 한달음에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내달리곤 했다. 넘어져도 또 일어서서 신나게 뛰어가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시름이 다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묵직한 육아의 버거움도 그 순간 만큼은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이가 온라인 세상에 눈을 뜨면서 혼란이 오기도 했다. 아이는 뛰어노는 것보다 디지털 기기 안에서 노는 걸 더 즐기는 듯 보였다. 함께 놀 친구가 사라져서인지, 디지털 세상이 더 흥미로워서인지, 아이는 자주 스마트 기기를 찾았다.
방과 후 함께 놀 친구가 사라진 3학년부터 그런 현상은 더 뚜렷해졌다. 디지털 기기를 당연히 알아야 하는 세상이지만, 너무 빨리 바깥 놀이 중심의 삶을 내려놓는 게 아닐까 싶어 염려가 됐다.
그러다 학교 행사를 핑계로 주말 하루 오후 시간을 통째로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시간을 보냈다. 전통 놀이 강사를 섭외해 백 여 명의 사람들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를 하기도 하고, 학부모들이 준비한 추억의 놀이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공기 놀이, 제기 차기, 신발 던지기 등 내가 어릴 적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과 함께 하던 놀이는 어느새 전통 놀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놀이에 적응했다. 우리 아이 뿐만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이 각종 놀이의 규칙을 빨리 파악하고 이내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변형한 손수건 돌리기도, 술래가 여럿인 술래잡기도 척척 해내는 아이들. 푸르른 잔디밭과 널따랗고 파아란 하늘, 솔솔 불어오는 짙은 가을 바람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이날 아이들은 그 누구도 스마트 기기를 찾지 않았다. 놀다가 지치면 돗자리 위에 앉아 준비된 간식을 오물거렸고, 어느 정도 배가 차면 다시 잔디밭으로 뛰어 나가 공을 차거나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다.
뛰어노는 것보다 디지털 기기 안에서 노는 걸 더 즐기는 게 아닌가 했던 나의 의문은 기우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방황하고 놀이하는 걸 누구보다 즐겼다. 디지털 기기에서 즐거움을 찾을 때보다 바깥 놀이를 마음껏 했을 때 확연히 더 밝고 명랑하며 쾌활한 표정들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