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무등>솔개와 물고기와의 상생처럼 모두가 주인인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박향숙
그림에 문외한인 내 눈을 주목하게 한 것은 바로 솔개와 물고기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었다. 동양고전 <시경>의 한 대목에 나왔던 '연비어약(鳶飛魚躍) -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뛰면서 연못에 노닐다'가 생각났다.
제목이 무엇인가 보니 <무등>이라고 써 있었다. 전시관을 찾은 사람들은 이 그림을 언뜻보고 솔개가 물고기를 잡아채려는 모습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림 속 솔개는 발톱을 보이며 위협하지 않고 물고기를 응시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무등'의 뜻이 계급이나 차이가 없는 세상을 의미한다면, 솔개와 물고기도 각자 참 주인의 모습으로 서로를 해치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천지만물의 이치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마땅히 더 그러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김 화백이 말하는 것 같아서 '제목, 참 좋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김 화백은 전북 정읍 출신이며 동학농민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역사적 사건을 화폭에 담으며 꾸준히 미술로서 사회운동을 하는 화가 같은 이미지가 있다. 작년에도 광주 5·18기록관과 광주시립미술관기록관에서 초대전을 열었고 그를 계기로 광주시민들과의 인연이 더 깊어졌다고 한다.
이 전시회와 함께 전남대에서는 한강 작가의 작품 전도 선보이고 있었다. 단지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것만으로 5.18 비극의 역사가 치유되는 건 아닐지라도, 오랜 가뭄에 비가 내리듯, 한강 작가의 수상소식이나, 김호석 화백의 전시회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조차도 엄청난 선물이다. 하물며 광주시민과 제주 사람들을 포함하여, 역사적 비극의 아픔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분명 큰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의뢰 받은 김호석 화백은 지난 1년 동안의 작업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실제 사진으로 작업실 전체를 붙여 놓고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함께 5월과 함께해야만 그림이 진정성이 있지 않을까. 결국은 작품은 실패해도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실패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지 관람객일 뿐인데, 전시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고통과 섬뜩함, 슬픔의 강도가 높은 것은 분명 그림을 그린 화백의 진정성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해야 하고 치유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우리 사회가 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산 자들의 예의가 표해지길 바라며 그림과 문학작품을 통해서나마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검은 울음' 속에서 흰 눈꽃으로 피어날 그 언젠가를 기다린다. 광주 무등에서 펼쳐놓은 김화백의 '묵의 세계'를 볼 수 있었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