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작가의 작업실.
최방식
'사고' 뒤 깨달음,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
"아버지가 그리 물은 건 고교 진학을 앞두고 인문·상업·실업계를 선택해야 하기에 그랬던 것 같아요. 답을 하면서도, 제 생각 밑바탕에는 글보다 그림이 쉽고 재밌을 거란 판단이 있었나봐요. 별 고민 없이 그림을 선택했으니까요."
미술대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수업이 탐탁지 않았고, 공부 재미도 덜했다. 대학 2년여만에 입대했다. 경비교도대로 차출된 게 사회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각종 시국 사범 재판 때 경비 업무로 법정에 다니며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것.
"그전에는 사회문제에 관심 없었거든요. 집회 시위도 참여 안 했고요. 군복무 중 바뀌었어요. 인문사회과학 도서를 읽기 시작했죠. 제대 뒤에는 그림패와 소모임을 만들고 학습과 민중미술(걸개그림 등)에 빠져들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민미협(민족미술협의회) 활동에 참여했다. '그림마당 민' 간사도 맡았다. 그림 공부를 더 하려고 대학원에 갔지만, 작품활동 보다는 민미협 활동이 주였다. 그러다 돈벌이가 그나마 괜찮은 M조형연구소(민미협 출신이 만든 영리활동 그룹)에 객원작가를 거쳐 정직원으로 취업했다.
그때 같이 활동하던 친구가 비슷한 일(조형 등 환경미술로 돈 버는)을 하는 사업체를 직접 차리자고 해 독립했다. 사업장도 양평으로 옮겼다. 하지만 사업이 여의찮아 그만두고, 후배 제안을 받아 목수(목조건축)로 취업했다.
"7채쯤 목조주택을 지었을 거예요. 2015년 건축 일을 하다 2층에서 떨어졌죠.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어요. 1년6개월여 치료와 이어진 1년여 재활치료를 했죠. 나다니는 게 불편하니 그림에 전념할 밖에요. 핑곗거리 없는, 딱 전업작가가 된 거죠."
사고의 아픔을 딛고 작품활동에 열중한다. 2019년부터 5년간 6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해 2월 '들어가기'(경인미술관) 전시회가 성황을 이뤘고, 작품 판매로 빚도 좀 갚았다. 2021년 11월 '신호'(경인미술관), 2023년 10월 '녹는, 점'으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3점(미술은행), 오산시립미술관 1점, 양평군립미술관에 1점 들어가 있다. 그는 미술대전 등 경선에는 일절 응모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자기의 작품을 소유한 특별한 고객 한 분을 잊지 못한다.
"2019년 11년 만에 개인전을 했어요. 전시회를 막 마쳤는데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의자(주제) 그림 2개 팔렸냐고 물어요. 자기가 사겠다면서요. 얼마짜린데 니가 사냐고 했더니, 엄마가 보관중인 명절 세뱃돈으로 살 수 있다는 거예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이튿날 엄마와 함께 은행서 수백만 원을 입금했더라고요."
미래 구상은 소박하다. 지금 하는 '서사 있는' 미술을 계속할 거란다. 개인과 사회에 던지는 질문을 소재로 한 미술이 계속될 텐데, 이제 대답이 담긴 작품이 늘지 않을까. 장애나 주거(집) 주제의 작품을 구상중인데, 찍어놓은 사진을 놓고 씨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