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민간인 학살사건 희생자 허훈옥 동생 허경옥씨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남소연
"너무 억울합니다, 의원님들. 정말 너무 억울합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80대 노인의 짙은 호소가 울려퍼졌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종전까지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으로 난타전을 벌였던 여야 의원들조차 침묵을 지켰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가까스로 발언 기회를 얻은 그는 말을 이었다.
"14살 먹은 애기를, 허훈옥이를 1950년도 10월에 죽여놓고 어떻게 20년 후에 '암살대원'으로 조작을 할 수 있습니까. 진짜 암살대원이라면, 사람을 죽였어야 하는데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다 죽였는지 아무 내용도 없지 않습니까."
지난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한 진도유족회 회원 허경옥(87)씨는 자신의 나이 13살에 한 살 터울이던 친형, 허훈옥씨를 '진도 사건'으로 잃었다. 진도 사건은 전남 진도군에 살던 주민들이 한국전쟁 직후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공산당'으로 몰려 군경에 희생된 사건이다.
그런데 형의 죽음은 공산당 논란과는 무관했다는 게 허씨의 주장이다. 경찰의 위세를 등에 업은 당시 마을 이장 김진오(가명)씨 요구를 허씨 가족들이 들어주지 않자, 형을 '빨갱이'로 경찰에 고발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경찰은 형을 "한 번 더 죽였다". 형이 사망한 지 19년 뒤 공문서에서 형에게 '암살대원' 딱지를 붙였기 때문이다. 사망 당시 14살이었던 나이도 19살로 바꿨다. 형의 명예회복을 바라며 3년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를 통해 진실 규명 절차를 밟았지만, 진화위는 경찰의 '암살대원' 딱지를 근거로 지난 3월 이 사건을 보류 처리했다.
형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게 이번 생 '마지막 숙제'라고 밝힌 허씨 마지막 용기를 그러모아 국감장 발언대 앞에 섰다. 하지만 행안위 국감이 열리던 날조차도, 모든 이목은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에 집중됐다. 겨우 한 마디 발언 기회를 얻어 호소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결국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중학생이었던 형이 '빨갱이'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