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현충원 외곽길에 조성된 나무들
이혁진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우리 일행은 나무 그늘 한 탁자에 앉아 쉴 겸 목을 축였다. 힘들어 쉬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정취들이 우리를 자연히 멈추게 한 것이다.
친구들은 만나면 이제는 화제가 대부분 건강이다. 나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탓이다. 건강만큼 폭넓은 주제가 또 있을까. 음식, 약, 병원, 운동 등 정말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한 친구는 지난달 아내와 근처 도봉산에 갔다 갑자기 심장이 멎는 위급한 상황을 맞았다고 한다. 산이라면 일가견 있는 친구가 모처럼 아내를 데리고 갔는데,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이다. 친구 부인은 전직 간호사인데, 남편이 그런 일을 당하니 더 놀랐다고 한다.
응급실에 갔고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됐지만, 그 후 친구는 산은 물론이고 바깥출입도 자신이 없어졌다고 한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통해 특별한 소견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는 데도 친구는 여전히 한 달 전 그날의 트라우마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이 친구의 동정과 호소가 싱거운 축에 속한다며 친구들이 딴지를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마치 자기도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겪을 수도 있다는 표정이다.
실제로 한 친구는 자기도 운동 중에 갑자기 부정맥으로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다면서 친구들에게 심한 운동과 스트레스를 피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화제는 건강에서 죽음으로 넘어갔다. 뜻하지 않은 죽음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