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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마트에서 산 애호박... '40도 찜통' 비닐하우스에서 왔다

[현장] '폭염 경보' 경기도 포천 비닐하우스 속 이주노동자들 "쉬는 시간도 없다"

등록 2024.08.16 16:58수정 2024.08.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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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 보이는 애호박.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 보이는 애호박. ⓒ 김성욱


요즘 같은 여름철, 애호박은 마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제철 채소다. 이 애호박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지난 13일 오후 2시, 폭염 경보가 발효된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하우스 안쪽 곳곳에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투명 비닐 포장지에 싸인 애호박들이 무성한 줄기 끝에 매달려있었다. 그 주위로 베트남식 삼각 밀짚모자를 쓴 20~30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캄보디아·베트남·태국·네팔 등에서 온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애호박 순을 따거나, 어느 정도 영근 애호박에는 노란 꽃대 부분을 제거하고 전용 비닐 포장지를 씌우고 있었다.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A(21)씨는 "봉지 안 하면 애호박 모양 다 틀려"라고 설명했다.

남성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쓴 채 약통을 등에 메고 제초제를 뿌리고 있었다. 네팔 출신으로 한국에 온 지 3년 됐다는 B(30)씨는 온몸에 흥건한 땀을 닦으며 "풀 약 친다"고 했다. B씨는 이날 아침 6시부터 일했다고 했다.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주어지는 점심시간 외에 일을 끝마치는 오후 5시까지 휴식 시간은 없다고 했다. 한 달 중 단 이틀, 토요일에 격주로 쉰다고 했다. 다른 노동자들의 근무시간도 대부분 비슷했다. 트랙터를 타고 밭을 갈거나, 애호박이 가득 담긴 박스를 대형 트럭에 옮기는 노동자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노동자들은 "지금 시간이 제일 덥다", "힘들다"면서도 "바쁘다"고 했다. 하루 종일 달궈질 대로 달궈져 바깥 기온이 35도를 넘긴 오후 2~3시였다. 더욱이 비닐하우스 내부는 밖보다 더 무덥고 숨 막혔다.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내부 온도가 40도 이상으로 오른다고 했다. 이들은 보통 3~4명이 50동 안팎의 비닐하우스를 맡는다고 했다. 애호박은 심은 뒤 한두 달 사이에 출하가 가능해, 지금 나오는 애호박들은 7월에 심은 것들이라고 했다.

a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 김성욱

a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 김성욱

a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 김성욱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기른 애호박이 시중에서 얼마 정도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질문하면 "그런 건 모른다"며 그저 웃었다. 주변 농가에 따르면 이곳에서 생산되는 애호박은 주로 서울시 송파구 가락시장이나 인천시 남동구 도매시장에 경매로 팔려 전국으로 나간다고 한다. 애호박 20개가 들어가는 5~6kg짜리 한 상자에 2만 원 선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월급은 대개 200만~210만 원이었다. 하루 10시간, 한달 26일 일한다고 보수적으로 잡더라도 최저임금보다 40만~50만 원은 적게 받는 것이다.

한낮 폭염 경보에도… "쉬는 시간 없다"


a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 김성욱

a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 김성욱


폭염 경보 시 고용노동부는 오후 2~5시 사이 야외 작업을 제한하고 매시간 15분 이상 휴식을 권고하고 있지만, 포천의 애호박 농장에선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권고 사항일 뿐이라 실제 현장엔 아무 효과가 없다"라며 "한여름에도 휴식 시간은커녕 생수마저 노동자들이 직접 사 마셔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폭염에 일을 강요 당하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시급도 못 받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사실상 '내부 식민지'로 착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특히 "인체에 해로운 농약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제대로 된 직업성 질환 실태조사조차 전무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몇 해 전 7년간 농약을 뿌리던 한 이주노동자가 병원에서 불임 판정을 받은 일이 있었다"라며 "당시만 해도 5인 미만 농장은 산재보험 대상이 아니어서,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못한 채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부터는 시행령이 개정돼 5인 미만 농업 사업장도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상태다. 포천에는 현재 2만 명가량의 이주민이 있다. 포천 전체 인구(약 14만 2000명)의 14%에 달한다. 한국의 전체 이주노동자는 130만명 정도로, 이 중 농업 분야는 6만여 명이다.

저녁까지 불 켜진 비닐하우스 "다음 달이 추석이라…"

a  13일 오후 8시가 넘은 시각까지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13일 오후 8시가 넘은 시각까지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 김성욱


포천 애호박 농가의 작업은 해가 저문 오후 8시까지도 이어졌다. 일과 시간이 끝나자 애호박 비닐하우스 바로 옆 검은 차광막으로 가려둔 샌드위치 패널 가건물 숙소들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손전등을 켜가며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비닐하우스 숙소로 퇴근한 노동자들은 밥을 짓고, 빨래를 널기 바쁜 모습이었다. 숙소로 쓰는 비닐하우스 주변엔 누더기로 겨우 사면을 가린 1평짜리 재래식 화장실도 보였다. 해가 지자 퇴비 냄새는 더 심해졌다.

4개월 전 네팔에서 왔다는 스무살 C(남)씨는 농막 주변에서 트랙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이날 3시간여 "오바타임"(초과 근무)까지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라고 했다.

a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일을 마친 이주노동자.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일을 마친 이주노동자. ⓒ 김성욱


- 오늘 기온이 35도까지 올랐다. 몇 시부터 일했나.

"오전 6시부터. 아침 5시에 일어난다. 오후 5시까지 일한다. 일주일에 하루, 토요일에 쉰다. 한 달에 210만 원 번다. 200만 원 가족에게 보낸다. 10만 원 남는데, 그걸로 한 달 생활하기 부족하다. 그래서 '오바타임' 한다. 오후 5시에 일 끝나고 몇 시간 더 일한다. '오바타임'하면 한 시간에 만 원 준다. 오늘은 3시간 했으니 3만 원. 매일은 힘들어서 못 한다. 힘 있으면 한다. 12시에 점심 먹어서 지금 배고프다. 밤 9시면 잔다. 오바타임 하면 저녁 먹을 시간이 별로 없다."

- 무슨 일을 했나.

"패킹(포장), 농약, 트랙터. 농약 많이 힘들다. 더워서. 트랙터로 밭 간다. 다음 달 추석이라 바쁘다. 빨리 트랙터 밀고, 시금치 씨 뿌려야 한다. 비닐하우스 40개(동)가 넘는다. 네팔 사람 2명이서 한다. 사장님하고 사장님 아들도 같이한다. '오바타임'은 나 혼자 한다. 오늘 더웠다. 어제도 더웠다. 그래도 괜찮다. 비닐하우스 숙소에 에어컨 있다."

- 한국에 온 이유는.

"돈. 네팔은 월급이 적다. 18살까지 학교 다녔다. 끝나고 신발 공장에서 일했다. 신발 공장에선 한 달에 만 루피(한국 돈으로 약 10만 원) 벌었다. 매일 가족과 통화한다. 여기에 얼마나 더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한 3년? 4년? 모르겠다. 나중에 네팔 가서 결혼해서 살고 싶다. 한 5년, 6년 뒤에는."

a  13일 저녁,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속 샌드위치 패널 가건물로 된 숙소에 불이 켜져 있다.

13일 저녁,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속 샌드위치 패널 가건물로 된 숙소에 불이 켜져 있다. ⓒ 김성욱

a  13일 저녁,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속 샌드위치 패널 가건물로 된 숙소에 불이 켜져 있다.

13일 저녁,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속 샌드위치 패널 가건물로 된 숙소에 불이 켜져 있다. ⓒ 김성욱

a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저녁, 경기도 포천의 비닐하우스들.

폭염 경보가 내려진 13일 저녁, 경기도 포천의 비닐하우스들. ⓒ 김성욱

#이주노동자 #폭염 #애호박 #농업 #비닐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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