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서울 빅5병원 경영난 보도, 누구를 위한 건가요?

[두 번째 질문 - 의료대란 6개월, 언론은 누구의 관점에서 보도하나]

등록 2024.08.28 06:47수정 2024.08.28 11:35
3
2024년 2월 19일 서울을 포함한 각 지역 병원에서 전공의가 병원을 빠져나가자마자 미디어는 첫 번째 뉴스 꼭지로 ‘의료 대란’이 일어난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미디어가 ‘중계’한 현장과 언어는 누구를 대변했나? ‘대란’이라는 단어가 상당 부분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이 ‘사실’이 어느 층위의 사실인지, 미디어가 실어 나른 언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미디어의 말과 글은 시민의 입장에서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는가? 6개월 동안의 보도를 들여다봤다.[기자말]
부산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동네, 해운대구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고층빌딩과 들뜬 표정으로 나온 여행객들이 첫 번째 얼굴이라면 두 번째 얼굴은 조명을 비춰야만 만날 수 있다. 해운대구의 남과 북을 가르는 634m의 험준한 장산 뒤편에는 치열한 산업화의 시기를 거치며 켜켜이 세월을 맞아온 낡은 건물, 산세가 만든 비좁은 골목 속에서 살아가는 10만여 명의 사람들이 있다.

1968년 한참 도심 개발에 열을 올리던 부산시가 시내 일대 수재민과 철거민을 이주시키면서 만든 마을이 이곳 반송동이다. 인근 반여동에도 1972년 부산시가 시내 철거민 이주 정책을 또 한 번 시도하면서 생긴 마을들이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놓여있다. 지금은 지하철 4호선이 놓이고 수영강변에는 번듯한 아파트가 있지만, 이주의 흔적을 보여주는 네모반듯한 주택가에는 비좁은 골목을 따라 많은 수의 노인과 장애인이 산다.

a 해운대구 지도 반여·반송동과 해운대 백병원을 오가는 것은 장산이 두 지역 사이를 막고 있어 어렵다. 대신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동래구의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파른 경사를 따라 산자락에 위치한 주거지역에서 지하철역까지 오가는 것은 노인과 장애인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다. 카카오맵에서 캡처한 지도에 HSC팀이 정보를 추가하여 그림.

해운대구 지도 반여·반송동과 해운대 백병원을 오가는 것은 장산이 두 지역 사이를 막고 있어 어렵다. 대신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동래구의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파른 경사를 따라 산자락에 위치한 주거지역에서 지하철역까지 오가는 것은 노인과 장애인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다. 카카오맵에서 캡처한 지도에 HSC팀이 정보를 추가하여 그림. ⓒ HSC


반여동과 반송동 일대에서 인근 대형병원인 해운대백병원까지의 거리는 10km 남짓, 곧바로 자가용을 몰아 달리면 30분이 걸린다. 그러나 주민들이 병원을 이용하기란 쉽지 않다. 전후 복구와 고도성장을 거치며 한때 산업 역군으로 혹은 철거 대상 빈민으로 현대사의 한복판을 거쳐 온 이 지역 원주민들은 이제 아픈 다리와 허리,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살아가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버스정류장까지 이동하고, 또 '미친 듯이 막히는' 부산 시내 한복판을 버스로 지나야만 하는 병원 가는 길, 이들에게 대학병원 혹은 대형병원이란 너무 먼 존재다. 해운대백병원 증축 계획이 부동산 호재라는 소문까지 붙으며 환영받는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병원 이용은 이토록 계급과 직결돼 있다.

변하지 않은 것

2월 19일, 전국에서 각 대학병원 전공의가 대학병원을 빠져나간 직후에도 이곳 주민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같은 지역 병원을 두고도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길고 지난한 여정, 주민들이 대형 병원 대신 아픈 몸을 의탁하던 작은 지역 보건의료기관에는 이전부터 전공의가 없었다. 연일 사진으로, 또 영상으로 중계되는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긴 대기 줄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a 동래봉생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반여동과 반송동 주민들도 이용하는 부산 동래봉생병원 전경(왼쪽) 서울 대형병원의 대표 격인 세브란스병원 전경

동래봉생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반여동과 반송동 주민들도 이용하는 부산 동래봉생병원 전경(왼쪽) 서울 대형병원의 대표 격인 세브란스병원 전경 ⓒ 부산역사문화대전, 세브란스병원


지난한 현대사의 한쪽에 조명을 비춰야 비로소 입체적으로 보이는 지역의 일상을 자세히 옮겨 적는 데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보건의료 의제가 언론사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지만, 지역 주민들이 어떤 의료를 이용하고, 또 어떤 부재 속에서 살아가는지는 자세히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의료의 대표 격으로 불려 나오는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의 사정마저 그렇다. 앞서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들'을 통해 밝혔듯 농어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주민은 병원이 아닌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미디어가 보건의료를 보도하는 관점은 서울 대형병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방의 작은 병원을 이용하던 환자들이 어떤 사정 속에서 살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에 대한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 공화국 세계관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 서울 언론은 지역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을 포기한 지 오래다. 지역의 사정이 곪고 곪은 뒤에야 찾아가, 뒤늦게 호들갑을 떨며 '지방 소멸' 같은 험악한 단어를, '단독' 딱지까지 달아 퍼트려 왔을 뿐이다.


의·정 갈등 국면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어졌다. 주민들의 어려움이 등장해야 했을 지면에는 주민들이 얼마나 서울에 많이 가는지, 서울의 대형병원이 얼마나 중요하고 고난도의 의료를 하는지, 서울 대형병원이 얼마나 어려운 경영 상태에 있는지가 등장했다. 진보지도 보수지도 차이가 없었다. 상경을 엄두조차 못 내는, 작은 지방 병원을 다니는 일상을 들여다볼 생각은 했을까.

a '의료대란' 전과 후 조선일보 보도 조선일보 2023년 10월 23일자 제 2면(왼쪽)과 조선일보 2024년 6월 10일자 제 4면. 왼쪽 기사는 서울대병원 환자 22%가 각 지방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요지로 다뤘고, 오른쪽 기사는 의사와 정부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서울대 의대 교수의 행방이 주요한 변수라고 서술했다.

'의료대란' 전과 후 조선일보 보도 조선일보 2023년 10월 23일자 제 2면(왼쪽)과 조선일보 2024년 6월 10일자 제 4면. 왼쪽 기사는 서울대병원 환자 22%가 각 지방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요지로 다뤘고, 오른쪽 기사는 의사와 정부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서울대 의대 교수의 행방이 주요한 변수라고 서술했다. ⓒ 조선일보

a '의료대란' 전과 후 한겨레 보도 한겨레 2023년 2월 7일자 제 1면 (왼쪽)과 한겨레 2024년 2월 20일자 제 3면. 왼쪽 기사는 지방 환자들이 중증질환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 대형병원 인근에서 숙박하며 진료를 받고 있다는 점을 요지로 다뤘고, 오른쪽 기사는 일명 '빅5' 라고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사직하자 지방에서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을 서술했다.

'의료대란' 전과 후 한겨레 보도 한겨레 2023년 2월 7일자 제 1면 (왼쪽)과 한겨레 2024년 2월 20일자 제 3면. 왼쪽 기사는 지방 환자들이 중증질환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 대형병원 인근에서 숙박하며 진료를 받고 있다는 점을 요지로 다뤘고, 오른쪽 기사는 일명 '빅5' 라고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사직하자 지방에서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을 서술했다. ⓒ 한겨레


"따옴표"는 시민을 밀어냈다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19를 거치며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것이 대표적으로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경마식 보도, 두 번째는 포털 사이트 의존. 이 두 가지는 일명 관에서 나오는 발표와 보도자료를 가지고 출입기자가 기사를 쓰는 관언유착적 행태 그리고 포털 사이트라고 불리는 시장화 된 공론장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흔한 일면이기도 하다.

몇몇 '언론 참사'를 거치며 시민사회가 이런 관행을 비판했으나 동일한 문제가 이번 의·정 갈등 시기에도 반복됐다. 가장 큰 문제는 보건복지부나 의사협회 발 보도자료가 줄줄이 나오며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기사가 등장할 공간을 없앴다는 점이다. 개별 기사의 질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미디어의 뉴스 배치, 뉴스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시민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에 이용하던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울 때 어디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흡사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연일 급박하게 돌아가는 병원의 상황을 걱정스러운 말투로 보도하거나 개탄하는 대신 말이다. 큰 병원들의 경영난, 지방에서 차출되어 서울로 파견 간 공보의, 파업에 대한 서울대병원 교수의 의견이 나왔던 지면과 화면은 정말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많은 기사가 사람들의 어려움을 풀어주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뾰족한 대안이 없는 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파업 직전까지만 해도 대형병원 쏠림이 문제라던 언론은 이들 병원이 파업으로 진료를 축소하자마자 일제히 병원의 매출 감소와 그로 인한 경영난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독자로서는 서울 대형병원의 확장이 문제라는 것인지, 축소가 문제라는 것인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

a '의료대란' 전 KBS 보도 2023년 10월 11일 KBS 뉴스광장 1부 보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89992

'의료대란' 전 KBS 보도 2023년 10월 11일 KBS 뉴스광장 1부 보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89992 ⓒ KBS

a '의료대란' 후 KBS 보도 2024년 4월 5일 KBS 심층 K 보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32808

'의료대란' 후 KBS 보도 2024년 4월 5일 KBS 심층 K 보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32808 ⓒ KBS


전문가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환자가 서울의 큰 병원으로 몰리는 의료 전달 체계의 왜곡이 문제라던 대학 교수들도 정작 환자가 줄어들자 온갖 걱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를 맥락 속에서 비판적으로 살피는 대신 그저 사안의 시급성을 강조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디어가 서투르게 '따옴표'를 찍어 중계하는 각종 대책과 해설은 시민의 혼란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특히 미디어가 '수가'를 보도하는 방식은 전형적으로 서울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앞서 HSC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수가 편, 그리고 카드뉴스를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 의료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 사태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시 HSC가 게재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수가 편'의 문구를 인용해 둔다.

지금 흔히 언급되는 수가를 높여달라는 주장은 전문가 조직 내의 이해관계 조정 실패를 덮어두고 일괄적으로 수가를 높여서 해결해 달라는 주장에 가깝고, 그런 방식의 수가 인상으로는 불균형이 해소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사나 정치권과 정부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따옴표를 찍어 전송하는, "따옴표 저널리즘" 속에서 수가는 마치 사태의 핵심이자 '시민이 몰랐던 의사의 고통'을 함축하는 단어로 변해 있었다. 수가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있는 것인지조차 설명하지 않은 채 의사들의 의견을 실어 나르는 이 관행은 의료 공백 사태 속에서 시민이 설 자리를 더욱 줄였다.

a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검색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의료 수가’로 2024년 8월 25일 주요 전국종합지 보도를 검색한 결과.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검색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의료 수가’로 2024년 8월 25일 주요 전국종합지 보도를 검색한 결과.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 누구의 관점에서 무엇을 전하려 하는가

미디어는 사회를 함축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보이는 미디어의 문제 역시 미디어'만'의 문제는 아닐 테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미디어가 실어 나르는 소식은 사회의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지역 주민들이 발을 대고 삶을 살아가는 공간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역의 입장에서 미디어에 묻는다. 모든 사태의 결말이 시민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도대체 왜 주민들이 서울 상급종합병원 소식 중계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고통받아야 하는가.

지역에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울 대형병원의 경영난보다는 지역 환자의 삶에 대한 기사를 바란다. 시시각각 발생하는 사건을 맥락 없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속보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사태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기사가 필요하다. 지난 6개월 동안 의사와 정부의 갈등을 다룬 기사들이 경마장 중계 같았던 것은, 환자의 삶과 어려움에 집중하기보다 정부와 병원같이 목소리 큰 자들의 의견을 그대로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민의 눈으로 사안을 검토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미디어를 보고 싶다. 어디서나 듣고 볼 수 있는 말과 글을 확대 재생산하지 않고 시민의 필요와 요구에 맞춰 필요한 정보를 발굴하고 전달하려는 노력 말이다.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병원의 경영난보다는 지역 곳곳 어려운 주민들의 삶에 대한 지속적이고 꾸준한 관심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 필자 소개: Health Socialist Club은 사회 정의와 형평의 관점에서 인구 집단 건강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 주제와 내용을 일반 시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게끔 글을 쓰고 자료를 만드는 연구모임입니다. Manager 김새롬/ Member 김진환·문다슬·문주현·박서화·이한빈. HSC의 블로그(https://www.notion.so/healthsocialist/Health-Socialist-Club-4f293bb8aab34b3c91dfed0ddd7f7ba3)에서 더 많은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들
(2)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3) 의료체계에 던지는 질문들
(4) 노동에 던지는 질문들
(5) 의사에 던지는 질문들
(6) 7개월, 질문 위에 서서
#의대증원 #지역 #의료 #의사 #전공의
댓글3

건강의 사회적 성격을 성실하게 분석하고, 사람들의 입장에서 건강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쌓아나가고자 합니다. Health Socialist Club, 줄여서 HSC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서울대 역사교육과 경쟁률이 1:1, 이게 실화입니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경쟁률이 1:1, 이게 실화입니다
  2. 2 "600억 허화평 재산, 전두환 미납 추징금으로 환수해야" "600억 허화평 재산, 전두환 미납 추징금으로 환수해야"
  3. 3 "쿠팡 심야 일용직 같이 하자했는데... 3일 만에 남편 잃었습니다" "쿠팡 심야 일용직 같이 하자했는데... 3일 만에 남편 잃었습니다"
  4. 4 아무 말 없이 기괴한 소리만... 대남확성기에 강화 주민들 섬뜩 아무 말 없이 기괴한 소리만... 대남확성기에 강화 주민들 섬뜩
  5. 5 벌점을 줄 수 없는 이상한 도시락집 벌점을 줄 수 없는 이상한 도시락집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