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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일... 그래서 싸웁니다

일터에서, 방송에서 비정규직을 지우는 '방송 장악'

등록 2024.08.29 13:47수정 2024.08.2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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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비정규직'이었습니다. 학생이면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는 물론이고, 비정규직으로 밥벌이를 했습니다. 3년 가까이 전공을 살려 연구원과 대학 강사로 보냈습니다. 생활인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방송기자가 되겠다는 바람이 있었기에 비정규직은 '내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연말이 가장 불안한 시기였고, 그저 그때만 잘 넘기기만 바랐습니다.

방송 제작 현장을 지키는 비정규직

하지만 바라던 방송국에 입사한 이후 현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동료 들은 저와 상황이 달랐습니다. 제게 '비정규직'은 내 자리가 아니었을지언정, 방송 현장 동료에게는 자신의 지금 자리가 '비정규직'이 아니고선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비정규직이고 싶어서 비정규직인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 아니고선 일을 할 수 없는 자리들뿐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직무가 방송작가입니다. 프로그램 제작에서 작가는 없어서는 안될 인력이지만, 현재 대부분의 방송국에서 작가는 비정규직입니다. 방송국에서 글 쓰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정규직으로 방송국에 몸담을 방법은 없습니다.

이런 비정규직 문제는 한 사업장에서 경력을 이어갈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성실한 FD(Floor Director)나 재능 있는 AD(Assistant Director)이더라도 정규 공채를 통하지 않고서는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PD가 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방송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특히 최근 '근로자성'을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늘면서 각 방송사는 더욱 철저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철저한 분리 덕택인지, 최근 '수신료 분리고지'로 위기를 맞고 있는 KBS에서 칼바람은 비정규직 동료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KBS 경영진은 '수신료 분리고지'로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며 긴축경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며 비정규직 동료들을 쳐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촬영 보조나 사무 보조로 일하던 동료들입니다. 제작현장을 무시한 채 일괄적으로 50% 삭감 방침을 내렸습니다. 50% 삭감 지시를 내린 경영진에게 비정규직 동료들은 사람이 아닌 숫자일 뿐입니다.

비정규직 동료들은 제작 현장에서 엄연히 맡은 역할이 있는 사람들 임에도 마치 '잉여인력'이라는 식으로 감축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 동료들은 '재정 위기' 속에 자신들이 수행했던 역할과 노동의 가치를 부정당했습니다. 이제 제작비 부족이 심각해지고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축소되면 방송작가들의 생업도 위협받게 됩니다. 전국언론노조에서는 방송작가지부가 따로 만들어져 방송사와 노동권 보장과 표준계약서 작성 등을 교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KBS에서는 긴축경영의 여파로 교섭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역시 정권이 공영방송의 재원을 흔들면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새로운 공영방송 장악, '재원 옥죄기'


지위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기반부터 무너뜨리는 공영방송의 재원 옥죄기는 윤석열 정부 들어 나타난 새로운 언론 장악 방식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연합뉴스에 대한 지원을 228억 원 축소했고, 아리랑TV 지원 예산 가운데 인건비를 50% 줄였습니다. 서울시의 회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방송했던 TBS에 대한 지원을 폐지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수신료 분리고지'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KBS를 공영방송일 수 있게 한 수신료 제도를 망가뜨렸습니다.

정권이 공영방송 재원을 옥죄면서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공영방송을 길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는 하지 말고, 눈엣가시인 프로그램은 방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여러 수단으로 공영방송 조직을 손아귀에 넣고 조물락거리면서 정부 홍보방송 제작에 열을 쏟더니, 이제는 알아서 기라는 식입니다. 알아서 기지 않으면 공영방송을 없애 버릴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지금 윤석열 정부입니다.


a  KBS본부, PD협회, 기술인협회 구성원 등 200여 명이 참여한 KBS 조직 개악안 폐기 촉구 피케팅

KBS본부, PD협회, 기술인협회 구성원 등 200여 명이 참여한 KBS 조직 개악안 폐기 촉구 피케팅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부끄럽게도, 이런 재원 옥죄기의 효과는 지대했습니다. KBS 내부에서 빠르게 정권의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어났습니다.

명분은 공영방송 제도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것이지만, 사실 구성원들 의 생계와 분리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지금 '낙하산 박민' 체제의 KBS이고, 시사 프로그램 폐지와 '조그만 파우치'가 언급된 대통령 대담,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불방, 세월호 추 모 리본 모자이크 처리 같은 일을 낳았습니다. 구성원들의 불안을 이용해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면서 생계를 목줄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일터에서, 방송에서 사라지는 비정규직

이렇게 '재원 옥죄기'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벌어진 방송 장악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건, 말씀드렸듯 KBS에 있던 비정규직 동료들입니다.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며 재원을 흔들었는데, 가장 취약한 부문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오던 비정규직 동료가 제일 먼저 영향을 받은 겁니다.

모두 한 사람의 몫을 해내던 사람들이지만, 긴축경영이라는 지침에 졸지에 비효율 요소로 지적되고 말았습니다. 방송작가든 촬영 보조든 사무 보조든 나름 자신의 역할이 있고 KBS라는 거대한 조직이 굴러가는 데 기여하고 있었지만, 없어도 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겠다며 재원을 흔들었는데, 정작 비정규직 동료들이 제일 먼저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이제 일터에서 사라진 '비정규직'은 방송에서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정권에 의해 장악당한 방송은 더 이상 사회적 취약계층, 부당한 대우에 놓인 시민들, 관심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 차별에 시달리는 동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권의 성과를 홍보하고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방송만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KBS 뉴스에서 김건희 명품백과 채상병 특검법은 찾아보기 힘들고 북한 뉴스와 저출생 뉴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받았겠지만, 지난 총선 기간 KBS는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를 열심히 보도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고 공동체가 한 단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방송이 아닌, 정권이 가리키는 방향에 맞춘 보도와 방송 제작이 중요해졌습니다.

방송에서 비정규직을 지키는 것이 공영방송을 지키는 것

방송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회사의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를 할 수 있냐". 타당한 지적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닙니다. 장애인 문제, 젠더 문제, 직장 내 괴롭힘 등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가 방송국 안에도 존재 합니다. 본인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모순적이지만, 그럼에도 방송의 역할과 임무 때문에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권의 방송 장악은 그동안 해왔던 방송의 사회적 역할과 임무마저도 무력하게 만들 것입니다. 정권의 방송 장악은 방송의 자유를 해치면서 민주주의 토대인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공론의 장 형성, 권력 비판을 불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정권의 방송 장악이 짙어질수록 공영방송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들은 방송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비정규직이 일터에서 사라지더라도 방송에서 조명되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여성이, 청소년이, 사회적 빈곤층이 방송에 등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KBS를 비롯해 공영방송의 언론 노동자들은 정권의 방송 장악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워낙 거센 장악 시도에 당장 방송 장악 세력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지만, 더 이상 공영방송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부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송 노동자들이 언론으로서의 방송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비정규직 동지들이 알아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더불어 공영방송의 주인인 시민으로 비정규직 동지들의 매서운 비판도 필요합니다. 공영방송이 계속 시민들의 곁에 국민의 방송으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비판과 연대와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에도 실립니다.글쓴이는 박상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8호 9,10월호 '사이를 잇다'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KBS #공용방송 #방송장악 #재원옥죄기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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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노동시민사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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