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미국 사는 이야기> 5

"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

등록 2000.03.06 14:57수정 2000.03.12 12: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도 인종차별의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2세들을 껴안아보고 싶었다고, 이민이라는 낯선 환경속에서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함께 헤아리고 싶었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직은 철없을 어린 나이에도 그저 무슨 일이든 혼자 잘 삭이며 살아가는 딸아이가 자꾸만 마음에 밟히는 것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딸아이가 나는 미국 속의 한국인? 어정쩡한 미국인? 이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어떠한 이유로도 평가절하될 수 없는 나"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을 뿐입니다. 그래야 "어떠한 이유로도 평가절하될 수 없는 너"를 사랑할 수 있겠기에.

초고에 붙였던 제목이 "딸과 함께 크는 엄마"였습니다.
여덟 해 쭉쭉 뻗은 딸아이의 키만큼 저도 많이 컸습니다.

이틀 전에 써보낸 당선소감이야.
올 들어 두 번이나 당선소감을 썼다. 1월에는 시로 이번에는 논픽션으로.

두 가지 이유에서 이번이 훨씬 기쁘다.


첫째는 상금이 있다는 점.
글쓰는 노동보다는 뷰티 써플라이(흑인들의 머리약 판매점) 가게에서 3천가지의 약품을 줄줄 꿰는 것을 더 알아주는 여기 이민사회 현실에서 글쓰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아냈다는 사실이 하늘로 뛰어오를 만큼 즐거워서라면 이해가 갈까?

둘째는 지난 5년간 딸아이만 보면 고여드는 눈물속으로 떠오르던 '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에 관한 작은 생각을 일단 매듭을 지었다는 면에서 그렇다.
이제는 적어도 딸아이를 보면서 울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마저 생긴다.


'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에 대한 나의 작은 생각은 딸아이가 세 살 반되던 해에 시작되었지.
포카혼타스 디즈니 만화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해 영화, 비디오, 책에 몰두하던 아이가 갑자기 묻더군. 세 살 반 짜리 내 딸이.(아, 한국나이로는 네 살 반이 맞겠다.)

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느냐고.
포카혼타스는 까만 머리고 존 스미스는 노란 머리인데 둘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였어.
한국에서는 뭐 그저 그렇게 넘겨도 되는 질문이겠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세 살 반 짜리 딸에게서 그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내 가슴은 '철렁' 정도가 아니었다. 거의 폭격을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이는 똑같이 검고 긴 머리채에 황인종과 다름없이 나오는 그 인디언 소녀 포카혼타스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그토록 포카혼타스를 좋아하게 만든 이유였고.

아이의 눈에는 자기하고 똑같이 생긴 포카혼타스가 노란 머리 백인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지.
내 딸이 어린 나이에 그 문제를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인 점은 있다.
사실 그때문에 나는 그동안 더 아팠던 거고.
하지만 이건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야.

초기 이민자들이나 유학생들은 사실 인종문제에 관해 피부에 닿을 만큼 신경을 쓸 여유가 없지. 일하고 공부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여기 사회에 적응하려면 그런 것쯤 아무 것도 아니려니 하고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거든.

또, 대부분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만 살아가는 1세 부모들은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날마다 자녀들이 겪어 내야만 하는 인종문제를 깊이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고.
하지만 여기서 살아가는 1.5세, 2세들에게 인종문제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건 매일 부딪히며 살아내야만 하는 문제거든.

내 딸은 3살 때 처음 다니던 유아원에서 백인 여자아이와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내 딸만 벌을 서는 일을 당했어. 그 사실을 7살이 되어서야 털어놓더군.

4살이 되던 해에는 역시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백인 남자아이로부터 "I hate you because of your color."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고.

그 이후로 나는 내 딸에게서 쏟아지는
"옐로우는 어글리야"
"엄마, 나는 내 피부색이 너무 싫어."
"백인하고 흑인하고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어?"
"엄마, 차도 나무도 하얀색이 훨씬 더 예쁜 것 같애."
등등의 말을 참아내며 살아야 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이야기는 "소리 없이 우는 아이들"

덧붙이는 글 다음 이야기는 "소리 없이 우는 아이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5. 5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