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미국사는이야기> 4

-기를 쓰고 도서관에 가는 이유

등록 2000.03.03 00:05수정 2000.03.0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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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잔디는 초록 물이 잔뜩 오르기 시작했고 그 위로 부끄럼없이 화사하기만 한 붉은 목련은 하얀 목련만큼 우아하고 기품있진 못해도 시선을 잡아끄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봄날 오후 나는 어제도 도서관엘 갔다왔다. 내 아이들과 아이 친구들까지 4명이나 이끌고.


애들과 함께 수시로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소설책과 음악을 가까이 놓고 산다니까 나라는 사람은 10년 미국생활에 이제는 자리를 잡고 애들과 함께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무조건 미국 땅에만 발을 들여놓으면 고운 잔디위에 내 집을 갖고 고국 땅에서 못 이룬 꿈을 이룰 수 있으려니 하는 망상과 다를 바 없다.

아니지. 삶의 여유를 즐긴다는 말은 맞다.
다만 내가 즐기는 삶의 여유란 흔히들 생각하기 쉬운 Barnes & Noble 책방에 가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Fox Theater에 가서 팬텀 오브 오페라를 본다거나 Woodruff Arts Center에 가서 소프라노 조수미 공연을 감상하는 그런 종류의 삶의 여유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나의 도서관 드나들기는 그러니까 살아볼수록 낯설기만 한 여기 이 사방 푸른 잔디위에서 무력감과 자신감 그 중간쯤에 갖다놓은 하나의 위안처라고나 할까. 큰 애가 태어나고 남편의 학교를 따라 삶의 터를 옮겨간 켄터키 루이빌 시골구석 거기가 시작이었다.
도서관에 대한 나의 집착은.

지금은 거기도 한국 유학생의 아내들이 제법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고용 기회가 많이 늘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92년만 해도 거기서 일할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대부분 살림이 넉넉치 않았던 유학생을 비롯한 한국 학생들의 아내가 학비와 밥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했던 일은 가정집 청소나 가게 점원이었다.

독한 약품과 걸레들을 잔뜩 트렁크에 싣고 하루 몇 시간씩 미국인들의 가정집을 청소해 주는 일. 여기 보통 중산층 정도의 가정은 주부가 스스로 집안청소를 하는 일이 드물다. 보통 청소를 대행해주는 메이드(maid) 회사를 통해 해결하지. 이웃을 통해 물어물어 개인적으로 믿을 만한 청소부를 구하거나.


더러는 어렵게 공부해 간호사와 같은 전문직을 따내기도 하고 가지고 있던 기술로 피아노 레슨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보다 많은 이들이 그 고된 청소부 일이나 가게 점원을 보았다. 청소일은 시간을 적게 들이는데 비해 수입이 짭짤한데다 유창한 영어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눈치 볼 일없이 주어진 일만 해내면 되기 때문에 몸이 다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남편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 무려 10년 넘게 그 일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눈물나는 농담도 오고갔지.
10년씩 청소해 남편 뒷바라지 하고 박사모 씌워 한국에 가면 그동안 고생으로 늙어버린 아내들은 병을 얻기가 일쑤고 남편은 새 여자들을 기웃거린다고.


나는 그래도 의사소통 정도는 할 줄 아는 영어와 그리고 대도시에서의 경험 덕분에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옷가게에 취직이 되었다. 시간당 $4.50 을 준다고 하더군. $5.00 이상이 아니면 일 못한다고 우겨서 겨우 시간당 $5.00을 받아냈지. 그 후로 다시 집을 옮기게 되기까지 4년간은 흑인아이들이 하는 인사말인 "What's up!"이 통 입에 익지 않아 "How can I help you." "Thank you."를 되풀이하는 생활이었다.

얼마 후에는 일자리를 옮겨 환경도 좋아지고 주급도 시간당 $7.50까지 올라 일하는 학생 아내들 중에서는 최고의 임금을 자랑했지만 생활하기에도 급급했던 우리는 아이의 교육이나 문화생활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다.

그래서 찾기 시작한 곳이 도서관이었다. 우연히 지나다가 들른 공공 도서관에 아이들에게 유익한 무료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 자리에서 이용자카드를 만들었지. 그렇게 해서 두 살 반 짜리 딸아이를 달고 시작된 나의 도서관 출입이었다. 그러나 매주 빠트리지 않고 도서관을 간다는 것, 그것은 가히 전쟁이었다.

직장에서 돌아와 녹초가 되어 저녁을 챙겨먹고 아이와 가방을 몇 개씩 들고 도서관으로 간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어. 그래도 나는 도서관 가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미국 땅에서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그게 최선의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
특히 아이가 세 살반이 되던 해 '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느냐'는 충격적인 질문 이후로는 더욱 더.

미국의 문화 장벽을 깨고 들어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책이라고 생각했거든. 나라고 해서 미국 문화를 꿰뚫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회화실력이 뛰어나 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며 미국 사회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거기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는 말이 맞다. 어렵던 유학생활에 아이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돈을 쓸 수도 없는 형편이었지.

책 속에서 미국문화의 다양성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어.
그리고 인종에 상관없는 인간의 보편성을 스스로 읽어내기를 바랬다.
나는 내 딸에게.

그게 내가 지금껏 기를 쓰고 도서관에 다니는 이유야.



덧붙이는 글 | 다음이야기는 '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

덧붙이는 글 다음이야기는 '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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