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요. 오빠 하나만 구해주세요

오마이 <미국 사는 이야기> 16

등록 2000.05.04 14:16수정 2000.06.07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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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요. 오빠 하나만 구해주세요."
어제 늦은 아침 열심히 기사를 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저기, oo씨 댁이지요. 계시면 좀 바꿔주세요.
저는 김미아(가명)라고 해요. 여기는 미시간 이예요.
예? 이름만 예뻐요.
저, 화장도 잘 안 해요.
사람들이 저보면 순진하게 보인다고 그래요.
저 몇 살쯤 됐을 것 같아요?
21살 이예요.
미국 온 지 10년 됐어요.
뉴욕에 살았는데요 이혼하셨던 부모님이 다시 합치는 바람에 여기로 이사 왔어요.
그런데 너무 외로워요. 이러다 우울증 걸릴 것 같아요.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죠.
한국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제 또래를 찾기가 힘들어요.
거기 한국사람 많아요?
오빠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저랑 비슷한 나이로 조금 많거나 뭐 적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친구가 필요해요.

얼마나 다급했으면 생전 처음 전화로 만나는 사람에게 묻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렇게 제 속사정을 털어놨을까.

무남독녀 외딸이라는 미아는 어느 책자에 실린 남편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고 아마도 미혼이겠지 하고 전화를 건 거였다. 처음에 미아의 목소리가 얼마나 절박했던지 나는 한마디라도 더 붙이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미아를 달래면서 최선을 다해서 친근감을 보냈다.

그런데 오 분도 안 돼서 사정은 바뀌었다. 혹시 하고 전화해서 찾던 사람이 유부남에 아이가 둘씩이나 있다는 것을 알고도 나를 붙잡는 건 오히려 미아였고, 나는 미아의 말에 맞장구만 쳐주면 되었다.

중학교 때 처음 이민 와서는 너무 힘들었어요.
영어도 잘 안되고 처음엔 멋모르고 미국친구들만 사귀었는데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서 동양아이라고 무시하고 인종차별해서요 이젠 미국애들 싫어요.


아빠가 가게를 하셨는데 아빠가 영어를 잘 못하시니까 흑인손님들이 막 무시했어요. 그게 참을 수가 없어서 제가 나서서 막 따지고 그랬어요. 그러면 좀 수그러들어서 가데요.

채팅 하다가 남자친구를 만났는데요. 컴퓨터 채팅으로 만난 사람이라고 아빠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래요. 채팅 오래한다고 컴퓨터 통신비 더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말도 안되게 우기시면서 아예 끊어버렸어요.(여기는 전화선이나 케이블 선이나 한 달에 일정 사용료를 지불하고 쓰기 때문에 시간당 통신비가 드는 것은 아니다.)
너무하시는 것 같아요.


점심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점심 먹었느냐는 질문에도 미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요. 저 밥맛도 없어서요. 밥도 잘 안 먹어요.
다이어트하고 좋지요 뭐.
올 가을에 여기 대학에 입학하거든요. 한 두 해 정도 교육학을 배우고 다른 학교로 전학하려고 해요. 저 여기서는 못살겠어요. 친구도 없고 너무 힘들어서요. 엄마는 안 된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또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엄마는 내가 이렇게 방안에만 있으니까 나가서 일이나 하래요.
일자리는 누가 그냥 갖다 주나요? 내가 찾아 보아야 하는데 차도 없으니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뉴욕처럼 버스나 전철을 타고 다닐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저기 언니(그새 친해졌다고 언니라고 부른다. 마음을 다 털어놓았으니 가깝게 느껴진 모양이다) 시카고 근처에 누구 아는 사람 없으세요? (시카고는 미아가 살고 있는 미시간에서 가까운 도시로 한국사람들이 많이 산다) 저는 언니보다는 오빠가 좋아요. 친구로 좀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시카고가 아니라도 괜찮아요. 거기 아틀란타도 한국사람 많지요? 언니 친척이나 거기 동네에라도 누구 없을까요?
그냥 전화로 얘기하고 사귀어보고 나중에 괜찮으면 만나도 좋구요.

아주 사정에 사정을 하고 있었다. 외롭다구. 오빠 하나 소개해 달라구. 제발 나 좀 살려 달라구. 미아는 거기서 차로 14시간을 달려와야 만날 수 있는 여기 아틀란타까지 전화를 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미아씨. 알았어요. 내가 찾아볼께요, 소개해 줄만한 사람 있나. 그래요. 밥 얼른 챙겨서 먹어요. 집안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산책이라도 좀 해요. 그리고 힘들면 나한테라도 전화해요. 아무 때나 괜찮으니까 전화해요. 아무 때나 전화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 말밖에 없었다.
1시간 반을 통화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5분도 안되어서 전화가 또 왔다.

저 미아예요.

그리고 오늘 두 시에도 전화가 왔다.

저 미아예요. 어제 다섯 시쯤에도 전화했는데 안 계셨어요.

덧붙이는 글 | 네 아들을 데리고 이민 와서 두 아들을 잃은 엄마를 알고 있어. 하나는 여기 생활에 적응 못해서 자살했고 하나는 사고로 죽었지.

언제나 바쁜 부모에게서 따뜻한 밥 한번 제대로 못 얻어먹고 자격지심으로 갱단에 휩쓸리다가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인 아이를 알고 있어.

내가 왜 우리 딸, 우리 딸 하는지 조금 이해가 가니?

덧붙이는 글 네 아들을 데리고 이민 와서 두 아들을 잃은 엄마를 알고 있어. 하나는 여기 생활에 적응 못해서 자살했고 하나는 사고로 죽었지.

언제나 바쁜 부모에게서 따뜻한 밥 한번 제대로 못 얻어먹고 자격지심으로 갱단에 휩쓸리다가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인 아이를 알고 있어.

내가 왜 우리 딸, 우리 딸 하는지 조금 이해가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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