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역할과 의미

동북아시아 패권전략 수행의 첨병 주한미군 철수 문제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등록 2000.05.10 14:18수정 2000.05.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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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의 시민단체들은 현재 한-미간에 계속 논란되고 있는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촉구하는 대대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불평등한 한미협정 개정 국민행동"이라는 이름으로 120여 개의 시민단체들이 결속되어 문정현 신부를 대표로 한 이 움직임은 노근리 사건에 대한 미국의 책임문제를 재차 거론하고 있는 노근리 피해자측 움직임과 맞물려 미국의 대응을 주목하게 하고 있다.

한미행정협정 개정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첫째, 한미행정협정의 모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재검토와, 둘째, 한미행정협정 본협정과 부속문서의 전면개정, 그리고 세 번째로 방위비 분담 특별조치 협정 폐기를 3대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러한 시민단체들의 논의는 한미간의 군사적 관계가 기본적으로 불평등한 종속관계일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한국이 치루고 있는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을 주목한 결과라고 하겠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군사적 지원을 한다는 것을 명목상의 골자로 하는 것이지만, 이를 위해 한국이 평상시 기본적으로 미군에게 내주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있는 점에 보다 중요한 핵심이 있다.

따라서 이 한미상호방위조약 내용은 미국 자신의 동북아시아 전체의 패권유지에 요구되는 군사전략상의 필요를 위해서 한국의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 보다 본질적인 목적임을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미국의 군사전략상 필요에 의한 동원체제를 만들기 위한 것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원칙 위에서 한국은 자신의 인적.물적 자원을 비롯하여 국토 일부의 수용까지 허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으로서는 재정적 부담을 한국에게 지우고는 자신들의 군사전략상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며, 이를 위해 한국의 중요한 자산이 쓰이고 있는 셈이다.

안보비용이라는 논리가 가능할 수 있으나 그 안보가 주권의 일부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안보는 무엇을 위한 안보인가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안보란 기본적으로 주권방어에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조건하에서는, 미군 범죄에 대한 주권국가로서의 처리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미군이 작전과 전략상의 필요를 내세워 요구하면 언제든 국토와 재산을 내주어야 하는 식민지적 상황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주권을 위협하는 안보논리는 이미 그 자체로서 모순이며, 거부해야 마땅하다.

주한미군의 위상이 치외법권적 존재로 현실화되는 한미행정협정은 국제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군사기지라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가령, 푸에르토리코의 비크섬이 미국의 군사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푸에르토리코 인들이 저항하고 있으며, 이들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미군이 현재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은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군사기지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군사기지로 전락할 경우 그 나라의 주민들의 생명과 권리는 유린될 수밖에 없다. 일체의 행위가 바로 그 군사작전의 개념 속에서 처리되기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의 경우에도 미군의 군사훈련 중 푸에르토리코인이 죽었다.

한국의 경우, 미군에 의한 범죄로 적지 않은 여성들이 그동안 살해당하고 피해를 입었지만 아무런 법적 대응과 보상도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한국인들의 인명에 대한 군사기지의 개념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여인들이 대체로 가난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기지촌 여성들이라는 점도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멸시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 국민들의 생명과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주둔군은 이미 동맹군의 기능과 가치를 상실한다. 그것은 도리어 점령군의 위상에 가깝다.

보다 광범위하게 말하자면 미군의 존재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균형자의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무장을 지속적으로 촉진 지원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군축을 가로막고 있는 실체이다.

군축의 대상이 되는 무기가 거의 모두 미국산 무기라는 점 또한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기본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걸림돌이 된다.

세계적으로 냉전이 끝나고 이제 한반도 내에서 남과 북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통일 이후에도 자신의 군대를 계속해서 한반도 내에 주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새롭게 내세우고 있는 논리는 한반도의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파키스탄이나 인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군의 주둔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기인하게 된 것이지만 이제 그 전쟁의 종료를 향해 가고 있는 역사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근본적으로 거론되어야 당연하다.

이것을 북한의 주장과 동일시하면서 친북논리로 몰아세우는 것은 민족사적 의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냉전적 사고에 세뇌된 결과이다. 새로이 정치에 진출한 젊은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계속 침묵한다면 그들의 존립근거는 민족사적으로 의문시 될 수밖에 없다.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개정 국민운동"은 주한미군의 존재가 한국인들에게 도대체 무엇인가를 이번 계기를 통해서 알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일방적이고 주권침해적 존재로서 주한미군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게 되면 주한미군의 주둔과 관련된 도덕성과 법적 근거가 의문시되도록 해야 하며 결국에는 미군의 철수가 이루어지는 사회분위기를 강력하게 형성해야 할 것이다.

80에 가까운 노령의 문정현 신부가 이 운동에 나서는 과정에서 미군에 의해 체포되고 수갑이 채워져 감금되는 등의 수모를 겪은 일은 그 개인의 수모가 아니라 우리민족에 대한 미국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주권과 생명, 그리고 재산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고, 동맹군의 포장을 한 식민지 주둔군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는 이미 주권국가가 아니다. 우리의 식민지 해방운동은 아직도 완결된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철수본부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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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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