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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덥다. 온도는 40도, 그나마 내가 있는 곳이 북쪽이니 이 정도다. 남쪽의 에일랏(Eilat, 홍해가 있는 이스라엘 남단으로 관광과 소비의 도시, 겨울에도 최저기온이 20도 정도)은 50도는 된다고 한다. 우... 푹푹 찐다. 햇볕에 나가 있으면 그냥 썬탠이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습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 시원하다. 바람이 서어얼 불어오면서.
나는 햇빛 알러지가 있어서 피부가 태양에 노출되면 타지는 않고 붉어져 너무 가렵다.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실외수영장보다는 실내수영장을 가는 편이다.
나보다 더 하얀 유럽친구들은 타지도 않을 것 같은 살을 열심히 태운다. 앞으로 누웠다, 뒤로 누웠다 하면서... 사실 수영을 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다.
실내수영장과 실외수영장 모두 크파길라디 호텔에 있다. 잔디밭과 계단을 올라오면 바로 실내수영장이다. 실내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발룬티어 대부분이 다들 누워 썬탠을 하고 있다.
다이닝룸은 보통 3시 넘어야 일이 끝나지만, 나머지 일들은 거의 2시쯤에는 끝나니까, 발룬티어들은 무리지어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을 자거나, 수영을 하거나, 개인적인 다른 일을 하면서 찜통 같이 더운 낮 시간을 보낸다.
발룬티어와 키부츠닉은 호텔 스포츠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짐(Gym)은 우리나라 헬스클럽 같은 곳인데, 그곳 트레이너가 머리가 길고 장난 아니게 섹시하다고 소문이 났다. 슬쩍 가는 길에 들러서 쳐다보니, 진짜 그러네... 에이구, 남의 떡에 침 흘리지 말자.
사우나에 들어갔다. 이 곳 사우나는 전기 사우나이다.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뜨거워지고, 땀도 별로 안나면서, 얼굴만 빨개진다. 그래도 내가 이 곳에 자주 오는 이유는 고향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우나가 그리울 때, 때? 그래, 때를 벗겨 목욕하는 것이 그리우면 찾아오는 사우나... 처음엔 영국인 친구가 '서나'라고 발음하길래 못 알아들었던 '사우나'...
나는 미국식 영어(American English)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 곳에서 쓰는 유럽영어, 즉 영국식 영어(British English)에 다시 길을 들여야 했다.
이 곳에는 발룬티어 Tom이 3명이다. 한명은 Fatty Tom(뚱뚱이 탐)이고, 다른 한명은 Eyebrow Tom(눈썹이 진한 눈썹 탐)이고, 나머지 한명은 Handsome Tom(잘생긴 탐)이다.
앞의 두 명은 만나보았는데, 잘생긴 탐은 누군지를 모르겠다.
한국인 제리에게 물어보니까, 펑크족 마냥 머리를 가운데만 남기고 확 밀어버린 친구가 있는데, 그 녀석이 핸섬 탐이란다. 휴가를 갔으니까 며칠 후 온다나?
며칠 후, 펍에 가서 늘 먹던 오랑유 붐 맥주를 홀짝이면서 당구장으로 들어가보니, 머리라고는 가운데만 있는 핸섬 탐같은 애가 큐 다이를 잡고 있다. '저 애인가 보다, 우와 잘 생겼다! 말이나 시켜볼까?'
나는 그 애에게 다가가 말을 시켰다.
"You Must Be Tom! (너 탐 맞지?)"
"Nope! (아니...!)"
엥? 분명히 탐인데 탐이 아니란다. 그럼?
"Then what's your name? Mine is Sun!(그럼 너의 이름이 뭐야? 난 선이라고 해!)"
"난 탐이 아니고 톰이야... 톰..."
깨갱...
이런, 미국식으로 탐이라고 불러줬더니, 영국식으로 탐이 아니라 톰이란다. 영국식 영어는 '아'발음보다 '오'발음이 강하다. 생긴 것은 꼭 25살처럼 생겼는데, 20살이란다. 서양애들은 진짜 겉늙었단 말야. 여기서 나를 18살이라고 보는 애들도 있다. 동양애들은 확실히 피부가 좋아서 그런지 어리게 본다. 그래서일까? 윤경이에겐 그녀를 흠모하는 18살짜리 영국아이(?)도 있다.
한국여자들은 보수적이라서, 이곳에서 한국여자들을 좋아하는 서양남자들이 곤혹을 치르고 상처를 받는다. 서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물론, 연애하는 방법도, 사랑하는 방식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국여자애들은 이 곳에서 남자친구를 사귈 생각을 거의 안한다. 하더라도 그냥 친구로서, 아님 사귀더라도 뽀뽀뿐이다.
하지만, 서양애들은 뽀뽀는 물론 더 깊은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 한국여자애들은 답답한 마음에 영어로 설명을 한다. "문화와 사회의 차이로 인하여 더 이상의 스킨쉽은 있을 수 없음!".
하지만 서양애들은 여행도, 이곳에서의 생활도 생활인만큼,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고, 좋아한다면 아무렇지 않게 성에 솔직하기 때문에, '그들이 성을 밝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과 그래도 이렇게까지 좋아하면서 기다리면 그녀가 마음을 열겠지 하는 헛된 '기대'속에서 상처를 받는다.
펍에 모두 모여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한국애들은 너무 보수적이야."
누군가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우리들은 보수적이야."
내가 맞대응을 했다.
"왜?" 네덜란드 애가 물어본다.
"왜? 우리 사회가 그렇고, 문화가 그래"
"그게 말이 돼?"
"어, 말이 돼!"
모두들 나를 희한한 동물 쳐다보듯이 쳐다본다. 제길... 더 설명을 해야 하나? 모두들 설명을 기다리느라 날 저렇게 쳐다보는 건가? "음음..."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맥주를 홀짝 들이켰다.
"왜냐면, 우리나라는 유교국가야. 여성의 지조와 절개를 중요시 여겨, 물론 그렇다고 바보처럼, 너 나랑 잤으니까, 나랑 결혼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엔 그랬어. 지금은 조금씩 성에 관해서 많이 개방적이고 또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는 여성으로 하여금 여성스럽고, 가정적이고, 성에 관해 무지하길 바래. 당장은 우리 여자들도 어쩔 수 없어. 이해 돼?"
"니 말은 이해되는데, 니네 사회는 이해 안 되는데...?"
"그럼 그냥, 넘어가!"
대충 얼버무리고 그 아이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의 궁금증은 막지 못했다. 다음에는 영어공부도 더 하고, 성에 관한 단어들도 많이 외어서,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영국인 커플이 다정해 보인다. 이렇게 하루 하루는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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