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이루어진 정부와 의료계간의 협상이 초반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협상 첫날부터 서울경찰청장이 협상장에 와서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요구로 협상이 중단되었다가 이틀만에야 재개되었다. 29일에는 다시 의약분업 관련 공무원들을 인책해야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요구로 다시 협상이 중단되었다.
나는 현시점에서 의료계를 자극하는 말은 가급적 아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부조차도 어떻게든 의료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권력으로서의 체면과 위신을 손상 받아가면서까지 대화를 하려는 판에, 할 말은 많아도 일단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협상 며칠간을 지켜본 지금,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않는다. 과연 의료계가 정말로 협상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사를 갖고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약분업을 주도한 정부를 욕보이며 그저 분풀이나 하고 말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먼저 협상을 중단시켰던 요구들부터 따져보자. 서울경찰청장이 보도자료를 통해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협상장에 와서 직접 사과하라는 것은 과거 어떤 협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요구였다.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 경찰과의 관계가 정말 불편했을 때도 그같은 요구를 한 조직이나 집단은 없었다. 그것은 경찰조직더러 앞으로 일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요구였다. 그나마 대통령이 협상장에 와서 직접 사과하라고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 모르겠다.
의약분업 관련 공무원들을 문책하라는 요구는 또 무엇인가. 정부방침에 따라 일을 한 공무원들을 그런 식으로 문책한다면 과연 이 정부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정부더러 의약분업 자체를 부정하고, 국정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번만이 아니다. 그동안 의료계 폐업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의료계의 협상과 투쟁방식이 좋게 말해 '정말 독특하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어떤 집단이든 투쟁을 할 때는 최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법인데, 의료계의 투쟁을 보면 애초부터 국민의 비난을 자초하는 방법만을 선택해 왔다. 나름대로의 목표를 관철하려는 투쟁으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협상을 할 때도 줄곧 그러했다. 대부분의 협상이라는 것이 핵심 쟁점에 대한 합의를 우선 시도하고,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 지엽적인 사안들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가는 것이 순서이다. 그래야 협상 쟁점들에 대한 일괄타결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법이다.
그런데 의료계의 경우를 보면 하나부터 백까지 요구안을 제시하고는 모두 수용하라는 식이다. 요구안은 백 가지이지만 그 가운데 무엇 무엇을 들어주면 이런 것들은 양보할 수 있다는 그런 개념이 없다. 그저 백 가지면 백 가지 모두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9월 6일자 오마이뉴스, 김명일 전공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인터뷰 "협상이란 없다, 그냥 들어달라" 참조). 그건 협상이 아니다.
그동안 의료계가 보여온 투쟁과 협상의 방식은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습을 놓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배경에 대한 논의도 분분하다.
"그저 공부만 하던 사람들이라 투쟁도 협상도 어찌할 줄 모르고 저러는 것 아니냐"는 통속적 진단에서부터, "자신만을 생각하는 기득권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냉정한 지적에 이르기까지, 의사들의 '독특한' 행동 자체도 입에 오르내리는 거리가 되고 있다. 심지어 이해하기 어려운 의료계의 행동양식을 보고는 "의대도 인성(人性)교육부터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음을 의료계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달라고, 온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막무가내식의 떼를 쓰고 있을 나이들은 이제 지나지 않았는가. 협상을 할 의사가 있으면 상식에 맞는 방식으로 협상을 하고, 애당초 협상을 할 의사가 없으면 여러 사람 속터지게 하지말고 아예 이쯤에서 그만 두기 바란다.
정부가 농락당하고 있는 것은 의약분업 준비를 소홀히 한 업보라 치면 되겠지만, 애꿎은 국민들이 더 이상 농락당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의료계가 이제라도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으로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는 것은, 그동안 고통받아온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임을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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