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 한국춤을 보았다

이승희 전통춤 발표회를 보고

등록 2000.12.21 19:52수정 2000.12.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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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춤바람이 봄동산에 부는 화창한 바람(順風)이라면 지금의 춤바람은 사막에 휘몰아치는 거친 바람(亂風)이다. 왜냐하면 옛날의 춤은 붕새나 기러기가 공중에서 높이 너울너울 날 듯이 질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지금의 춤은 망둥이나 꼴뚜기가 물 위에서 마구 뛰듯이 몸을 제멋대로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대산(大山) 김석진(金碩鎭) 선생은 한국 전통춤(옛날춤)과 오늘날 보통 추어지고 있는 현대춤을 이렇게 구별했다. 그러면서 이승희의 춤을 옛날춤을 제대로 추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어제(12월 2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운학(雲鶴)전통춤보존회' 주최로 "한국춤 - 그 구도(求道)의 정신, 이승희 전통춤 발표회"가 있었다. 진눈깨비가 내려 궂은 날씨에도 우면당이 가득 찰 정도로 모인 관객들은 숨을 죽이면서 그 구도의 정신을 새겨 보았다.

내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 동안 흔히 보아왔던 그런 춤이 아니었다. 나는 대금 소리를 끊일 듯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한'이 서려 있는 우리 문화의 진수라고 말해 왔다. 그런데 바로 이 이승희의 춤에서 나는 멈춘 듯 움직이고, 정지한 듯 춤을 추는 우리 문화의 진수를 또 한번 보고 있었다.

보통 춤이라면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요란스러운, 또 예쁜 동작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했던 내게는 완전히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다. 소위 민족문화운동을 한다는 내가 아직 우리의 춤을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념무상(無念無想)
자연에 몸을 싣고
세상의 명리(名利)나 욕심을 비우듯이
자신의 모든 관념, 생각도 잊고 다 비워가야하는 세계.

우리 춤을 이승희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연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의 전통춤.
내면의 수양을 쌓아 온전한 성품을 갖추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꽉 찬 자신의 모습이 되었을 때 한사위 한사위 동작으로 승화시켜가는 우리 춤.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어쩌면 고독하기까지 한 이 춤을 그저 함박 추어야 할 것 같다고 이승희 선생은 말한다.

이승희 선생의 춤은 '이동안류'다. 이동안(李東安)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인 '발탈'의 보유자로 알려졌지만 사실 우리의 전통춤을 고스란히 계승 해오신 분이다. 요즈음 우리 전통춤으로 잘못 알려진 교태어린 춤은 일본식 잔재가 깃들어 있다며 배척해 왔던 고집스러운 선생님이다.


"두 팔을 쩍 벌리고 서면 그 안에 춤이 가득 들어 있어야 해. 쩍 벌린 두 팔을 움직일 때는 태산을 끌어당기듯이, 또 한 팔을 움직일 때는 바윗덩이를 서서히 밀 듯이 이렇게 해야 춤이 되지. 그냥 몸만 나풀댄다고 춤이 되는 게 아녀."
이렇게 말씀하시던 이동안 선생을 미술학도였던 이승희는 그저 춤이 좋아서 빠져 버렸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우리 춤의 계승에 온 힘을 쏟아 왔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다.

이 날 사회와 해설을 맡아준 국립창극단 단장 최종민 선생은 뼈대만 갖고 속을 드러내는, 재주와 기술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구도의 정신이 함축되어 있는 춤이라 평했다. 무대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이 서 있어도 되는 대단한 춤꾼으로까지 극찬했다.

"우리의 전통춤은 기본 춤틀 안에서 장단과 장단 사이를 넘나들며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춤사위들을 엮여서 추게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형식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신명에서 우러나와 저절로 나오는 자연스런 춤동작이 나오질 않는다"는 이승희 선생은 "전통을 계승하되 진수를 보여주는 즉, 춤만 추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한국 춤의 진수를 보여주는 춤꾼이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우리 문화는 형식에 굳이 얽매이지 않는 그런 형태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복의 경우도 재단한 것을 바느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다라 다른 옷이 나온다고 말한다. 또 우리 음악인 시나위는 기본 틀은 있지만 그 틀 안에서 자유분방한 즉흥곡을 연주하는 그런 음악이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러움, 내면 저 깊이에서 나오는 신명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진수가 아닐까?

鳳고翔於千인兮 非梧不棲
士伏處於一方兮 非主不依

저 천리 구만리 장천을 나르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고
선비는 이렇게 한 곳에 숨어 살고 있지만 참다운 주인이 아니면 따르질 않네.

이승희 선생이 좋아한다는 이 <삼국지(三國誌)중에서>의 한 구절은 선생의 외길 고집을 보는 듯했고, 외롭고도 험난하지만 옳은 길을 마다 않고 굳건히 가는 고고한 심성이 느껴지는 듯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벤트TV(케이블TV:채널53)에서 녹화하여
곧 방영할 예정이니 이벤트TV(전화:02-2610-5063)에 전화하여
확인한 후 감상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벤트TV(케이블TV:채널53)에서 녹화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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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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