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 난리났네요, 난리났어요

아이들도 노인들도 모두 다 아가씨들 구경 갑니다

등록 2001.02.20 22:40수정 2001.02.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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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문구사가 새로 생겨난 모양입니다.
이름있는 메이커인지 간판을 쳐다보니 어려운 영어가 착 달라붙어 있다. 귀족빛으로 반짝거리는 글은 모르겠고 그 옆에 있는 연필, 공책 그림을 보아야만 그때서야 문구사인 줄 알아보겠습니다.

동네 꼬마들을 죄다 문구사 앞에 모아놓았는지 아예 도로를 점령해 버린 채 북적북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상호가 적힌 풍선을 나누어 주고 있는 모양이다. 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던가? 꼬마들뿐만 아니라 젊은 아낙들도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스피커 볼륨은 고막이 터져라 올려놓고 한 여자가 최신식 리듬에 맞춰 이쁜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뭐라뭐라 상품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짧은 스커트 아래로 보기에도 늘씬한 다리와 요염한 몸놀림이 지나가는 촌사람들의 혼을 홀라당 빼놓기에 충분할 듯 합니다.

키는 여느 남자보다도 한 뼘은 더 큰 것 같습니다. 게다가 쭈쭈빵빵 몸매는 서양여자와 비교해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화장은 얼마나 진하던지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장품 광고모델을 실제로 보는 듯 합니다. 그런 그들이 나긋나긋한 서울말씨로 이쁜 입을 오물었다 폈다 해가면서 지나는 촌사람을 홀려대니 문구 살 일이 없어도 그 문구사로 끌려들어갈 것 같네요.

뭐 핸드폰 대리점이라든지 전자제품 대리점이라든지 새로 문을 열면 그런 이쁜 아가씨들을 데려다 놓고 촌사람들의 눈을 홀랑 빼앗아버리더니 이제는 콧구멍만한 가게를 열어도 의례껏 도우미 아가씨들을 불러다 놓습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촌로들도 "으미, 저게 뭔 지랄들이여? 저년들 속곳 다 보이네... 세상이 어떻게 될라고..." 눈을 반대편 저 쪽을 보며 종종걸음으로 얼른 지나가던가 아니면 혀를 끌끌차며 못내 나무라는 속말을 하시면서 지나치곤 하더라구요.

그런데 요즘은 어떤 줄 아세요?
"어이! 김영감 저기 뭔지 농협옆에 늘씬한 가시나들 굿판 벌렸대? 구경 안 갈랑가?"
"뭣이라고야, 야들은 이쁘고 볼만하당가? 같이 가봄새..."

영감님들뿐만 아니라 젊은 남자들도 힐끔힐끔 쳐다보는 재미로 그 가게를 들르기도 하구요 어떤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몇마디씩 건네곤 한답니다.
"아가씨 힘들지 않어? 우리 끝나면 차 한 잔 할까? 어때?"
"이야! 아가씨 다리 이쁘다야, 춤이 아주 쌕시한데?"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어른들 속옷이나 핸드폰, 전자제품, 화장품 가게라면 그나마 이해를 하겠습니다. 뭐 개업식을 요란하게 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 볼려는 상술은 요즘 사회에서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죠.

그런데 주로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피자집, 만화가게, 문구사 같은 데서 똑같이 그런 행사 도우미들을 데려다 야시시한 판을 벌려 놓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배려해서 조금 의상을 달리한다거나 뭐 전문용어는 모르겠습니다만 커다란 인형옷을 입은 그런 도우미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별반 다른 게 없습니다. 진한 화장에 여름이나 겨울이나 속옷이 다 보일 것 같은 짧은 스커트에 꽉 조인 웃옷을 입혀놓고 아이들을 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가지 않을 수가 없죠. 공짜 선물 주겠다. 이쁜 언니들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하는데 신이 나지 않겠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야 팔팔 뛰는 혈기로 그런 호기심을 가져본다 하겠지만 조그만 소읍에서는 큰 문제가 또 하나 있습니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소외되기는 매일반인 노인들의 문제입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그런 볼거리들을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런 젊은 아가씨들이 벌이는 춤판으로 또는 야시시한 아가씨들이 차를 따라주는 티켓다방으로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점점 세상이 무서워집니다.
잠이 깨어 일어나 보면 점점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워집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상술 앞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노인들도 무차별 쓸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는 점점 성을 상품화하는 세상으로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늘씬한 몸매를 내놓아야만 하는 신종 직업이 생겨나고, 업주들은 그런 아가씨들을 모셔다 이벤트를 열어야만 장사가 잘 된다는 사고를 갖게 된다는 것이고, 우리 소비자들은 그런 이벤트를 여는 가게에서 파는 물건이 좋은 물건이라는 인식을 갖는다는 것이죠.

혹시 제가 너무나 세상물정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지만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똑같은 색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바라보는 마음의 빛깔은 서로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오늘 낮에도 시인마을에 손님 들어오리라는 생각은 아예 접기로 하였습니다. 저기 저 굿판에 기웃거리지 않는 사람들이 이 조그만 소읍에 몇이나 있겠어요? 읍내에 난리났네요, 난리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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