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다리 뜯어서 노는 것도 죄가 되나요?

꼬마 철학자 우진이

등록 2005.11.08 13:49수정 2005.11.0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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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이는 꼬마 시인이자, 철학자이다.

언젠가 물었다.

"우진아, 집이 어디야?"
"네, 우리 집은 성(城)이에요."

아, 그렇지! 우진이는 '전라 병영성'이 있었던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에 사니까 우쭐대듯 저리 대답하는 거겠지? 그러나 아뿔싸, 빗나갔다. 난, 우진이가 꼬마 시인이자 꼬마 철학자란 것을 눈곱만큼도 못 알아봤다. 이어지는 우진이 대답을 듣고 몰래 내 허벅지를 꼬집고 쿨쿨쿨 웃었으니까.

"아, 우진이네 집이 병영성하고 가깝지?"
"그게 아니라요, 우리 집은 논으로 뺑 둘러싸여 있거든요."

이런! 그러니까, 우진이 집은 논 한가운데 있는 성(城)이란 얘기인 것이다. 가끔씩 몇 안 되는 친구들하고 전쟁놀이라도 하는가보다. 그러다 힘이 부치면 성으로 줄행랑을 치고, 성문(집 대문)을 틀어막으면,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철옹성이 된다는 것이다.

우진이가 칼싸움이라도 하는 듯 의자에서 들썩들썩 요동을 치더니, 금세 시르죽은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못 막는 적들도 있어요."
"그게 뭔데?"
"뱀이요! 또, 개구리…. 아, 귀뚜라미도 있어요."
"으, 무서워!"

뱀이란 말에 으쓱, 소름이 돋는 척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야 애들은 말을 좔좔 마구 풀어놓으니까. 역시 우진이도 그랬다.

"야, 우진아! 그럼 그 적들을 어떻게 물리치니?"
"헤헤, 그까이꺼 대충, 작대기로 쌔려 죽여버리죠 뭐!"
"이런, 나쁜…."

난, 차마 '놈'자를 내뱉지 못했다. 가만 생각해보니까 나도 어렸을 땐 우진이보다 몇십 배는 더한 '놈'이었으니까. 그 순간 나는 멈칫, 잔머리를 맴맴 돌려야만 했다. 우진이도 마찬가지다. 눈알이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 잔머리를 뱅뱅 돌리는 듯하다. 나도, 우진이도, 나쁜 놈이 아니어야 하니까.

"선생님, 그런데요… 요즘은 안 그래요."
"그래? 그럼, 작대기로 뱀을 논바닥으로 걷어 던지니?"
"아뇨! 요즘은 그냥 무서운 척, 엄마야 하고 도망쳐요. 하나도 안 무서운데…."
"왜 갑자기 그러는데?"

궁금해서 다그치자, 우진이는 내 눈을 슬쩍 피하면서 말했다.

"그건…시로 대답할게요."

큰 눈알을 떼룩떼룩 굴리는 것으로 봐, 시는 금방 나올 것 같았다. 그랬다. 쓱쓱, 시는 금세 써지고, 쓱싹쓱싹, 그림도 금세 그려졌다. 역시 우진이는 꼬마 시인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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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이가 귀뚜라미 시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 김해등

풀숲에서 놀다가
귀뚜라미 한 마리 잡았다.
다리 한쪽 뜯고,
또 다리 하나 뜯었다.
양쪽 날개도 뜯자고 했는데
한쪽만 뜯었다.
귀뚜라미가 도망치려고 빨리 움직이자
제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한다.
막대기로 쌔리기도* 하고
토각토각 뒤집기도 하고,
웃기도 했지만 불쌍하기도 했다.
내가 귀뚜라미를 놓아주자고 하자
형이 나를 째려보고
"도망치지도 못하는데 놓아주면 뭐해!"
하면서 풀 속에다 귀뚜라미를 던졌다.
대막대기도 던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대막대기만 보이고
귀뚜라미는 안 보인다.

* 쌔리기도: 건드리다, 때리다

강진 중앙초등학교 3학년 전우진의 시 <귀뚜라미>


우진이 시를 받아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우진이가 이 시로 어떤 대답을 했는지 쉬이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진이는 그 시를 책상에 놓고 뒤꽁무니 빼듯 딴청만 부렸다. 나는 이 꼬마 시인의 시를 읽고 또 읽다가, 마지막 두 행에서 대답을 찾았다. 이건 우진이한테 안 물어봐도 안다. 우진이도 시인이고, 나도 시인이라고 우기고 있으니까.

우진이는 귀뚜라미를 학대하면서 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우진이와 같이 놀던 어떤 아이들도 그 놀이(?)에서는 생명을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우리 꼬마 철학자인 우진이만 귀뚜라미의 생명에 대해 고민을 한 것이다. 그래서 뒷다리 다 뜯겨 도망치지 못해 뱅뱅 돌기만 하는 귀뚜라미를 놓아주자고 한 것이다. 우진이의 요구에 형은 "도망치지도 못하는데 놓아주면 뭐해!"하면서 돌멩이 던지듯 귀뚜라미를 풀숲에 던지고 만다. 귀뚜라미를 툭툭 쳐대던 작대기도 함께.

어느 누구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로지, 우진이만 풀숲을 뒤졌다. 혹시나, 아직도 살아서 꿈틀대는 귀뚜라미를 확인하고,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귀뚜라미는 안 보인다. 풀숲에 묻혔는지, 꼼지락꼼지락 기어서 도망쳤는지, 작대기만 보일 뿐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이 시를 읽어줬다. 다 듣고 난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난리를 쳤다. 자기들도 모두 그런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파리의 날개와 다리를 뜯고, 뭉개고, 지렁이의 꼬리를 토막토막 뜯고, 방아깨비, 잠자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두꺼비 다리를 줄로 묶어 뱅뱅 돌리다 땅에다 패대기를 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방으로 들어온 청개구리를 신문으로 덮고 밟기도 했단다. 개미 허리를 토각 끊어놓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축에 끼었다. 그래서 물었다.

"왜 그랬니?"
"해충이잖아요. 사람에게 피해를 주니까…."
"해충 아닌 것도 있는데?"

아이들이 조금 뜨악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다. 아주 잠시.

"심심해서 그랬어요."
"재미있어서 그랬어요."
"친구들한테 용감하게 보이려고 그런 적도 있어요."

거침없다. 아니, 맞는 말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니까. 우진이와 단짝이고, 한동네에 산다는 혜진이가 말했다.

"선생님, 그래도 고양이를 불태우고, 아파트에서 병아리를 날리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럼, 고양이, 병아리만 살아 있는 생명이고 청개구리, 지렁이는 죽어 있는 것일까?"
"빨간 피를 안 흘리는 것은 죽여도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럼, 피가 다 빨갛기만 하는 것일까?"
"그건 그래도…."

잠잠했다. 아이들도 할 말이 없는가 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그때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아이들 눈치만 살폈다.

"놀이로 생각하면 안 돼요."
"…!"

꼬마 철학자였다. 그래 맞다. 우진이가 나에게 대답 대신 시로 건넨 것이 그 뜻이었던 것이었다.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고, 놀이로 삼으면 안 된다는 진리였다. 내가 애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우진이가 대신 해준 셈이다.

아이들을 컴퓨터 앞으로 불러 모았다. 지금까지는 보여줘서는 안 될 것 같았지만, 우진이 때문에 용기를 얻었다. 이마에, 등에 못 박힌 고양이 사진을 봤다. 지하실에서 고양이에게 휘발유를 붓고 불태워 죽이는 장면도 보여줬다.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있는 너구리 동영상도 보여줬다.

아이들이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감고, 비명을 질렀다. 내 옆에 있던 혜진이 팔에는 오돌토돌 소름이 돋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눈 감는 것도 부족해서 귀까지 틀어막기도 했다. 혹시, 며칠간 섬뜩섬뜩, 가위 눌려 잠에서 깨기도 하고, 밥 먹을 때마다 그 생각이 나서 토악질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현상은 며칠 안 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을 놀이로 삼아 학대하고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집으로 갈 시간이 됐는데도 아이들이 미적미적 엉덩이를 쉬이 들지 않았다. 가만, 이거 너무 음습하고 칙칙한 공부를 했나? 그래서 다시 꼬마 철학자에게 물었다.

"우진아, 지금 모기가 네 팔뚝을 물어뜯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거야?"
"헤헤헤!"

웃는다, 우진이가. 그리고 아이들도 웃었다.

"어떻게 하긴요, 그냥 손바닥으로 때려잡아야죠. 그건 놀이가 아니잖아요."
"뭐어? 난 우리 철학자님께서 그냥, 입으로 후욱, 쫓기만 할 줄 알았는데…."
"와하하하!"

그때야, 아이들이 엉덩이를 떼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애들이 다 가고 난 뒤에 불쑥, '이싸'의 하이쿠 시 한 편이 생각났다.

'아이들아, 벼룩을 죽이지 마라, 그 벼룩에게도 아이들이 있으니!'

머리가 또 뱅뱅 돌았다. 지금까진 정리가 잘 된 듯싶었는데 말짱 헛것이 되고 말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벼룩을 죽여야 하는지, 살려줘야 하는지. 그러나 방법은 있다. 내일 꼬마 철학자 우진이에게 물어보는 일이다. 일단, 벼룩이란 녀석의 존재를 알려줘야 하겠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이버아동문학관(www.iicl.or.kr)에도 송부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사이버아동문학관(www.iicl.or.kr)에도 송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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