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그대를 힘들게 할 때 그냥 가보세요

그 아름다운 이름 속에 노을과 사랑이 머무는 곳 "모항"

등록 2001.02.21 18:09수정 2001.02.2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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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항 가는 길에 만난 곰소의 천연염전 풍경
이런 모습들이 산업화에 의해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 전고필

가는 겨울이 아쉬워 선택한 여행지 모항

봄의 소식이 간간이 들려 오면 옷이 차츰 엷어져야 함을 내 스스로도 체감하기 시작한다. 또 한 계절이 가는 것이다.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던 겨울도 옷의 부피가 엷어지면 괜시리 하얀 눈이 소담하게 내리던 날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왠지 그 겨울에 못다한 여행을 떠올린다.

한적한 겨울 바닷가의 백사장을 거닐고 싶은 생각도 불현듯이 나를 자극하고, 겨우내 갈대밭에서 웅성이며 사냥꾼의 총질을 피했던 새들의 모습도 다음 해 또 돌아온다는 확신이 없어 보고 싶어진다.

겨울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아름다운 서정들이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의 갈증을 채워 줄만한 곳을 찾는 것이 2월의 여행지 선택법이다.

일주일 전 광주 환경운동연합 식구들과 함께 철새를 찾아 강진의 도암만과 진도의 나리 간척지를 다녀왔지만 단연코 실망이었다. 몇해전 보았던 15만 마리의 가창오리의 군무가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새들이 자유롭게 날지 못하는 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리고, 그 불만족한 가운데 나는 또 다른 나의 여행을 만들기로 했다. 개강을 하면 더욱 분주하여진다는 명분을 들며 바닷가를 떠올렸다.

서해와 남해 두 곳 다 이곳 광주로부터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아름답지 않은 곳 없지만 이 계절에 가장 근사한 바다의 정취를 맛 볼 수 있는 대상지를 찾고자 했다.

그런 망설임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우연히 들려 오는 노래 한 곡에서 나는 이 겨울의 마지막 자락을 잡을 수 있는 곳을 떠올리고 그 노래가 주문하는 데로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 노래는 바로 안도현 시인이 발표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란 시집에서 가져온 "모항 가는 길"이라는 김원중의 곡이다.


아름다운 항구 마을 모항

모항(茅項)가는 길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
그래 눈 딱 감고서 떠나 보는 거야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만이
한번쯤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에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 때
한번쯤 세상을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던지면 돼
지금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모항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 왔듯이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처럼
너를 지치게 만들지도 몰라
하지만 던져 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구불구불 험난한 길을 걸어서"


▲한적한 모항의 백사장과 마을 풍경
몇 명의 연인들이 백사장을 거니는 동안 석양은 모항을 황금색으로 색칠하고 있습니다. ⓒ전고필
안도현의 시에 곡을 붙인 가사의 내용이다. 모항으로 가는 것은 시의 내용처럼 대수롭지 않게 그저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가면 된다. 사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변산반도의 한적한 어촌인 이곳은 행정 구역상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의 모항이란 자연 부락이다.

대부분이 바다를 농토 삼아 사는 이 마을은 화려한 채석강의 이름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는 마을이다.

다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모항의 바로 위편 산자락에 호랑이의 발톱을 닮은 "호랑가시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도청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방문객이 많은 곳도 아니고 그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기억을 해 주는 것뿐이다.

옛부터 이곳 변산 사람들은 이 호랑가시나무의 가지를 꺾어서 명태의 몸에 꽂아 대문 앞에 걸어 놓는 습속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그 모습을 찾아 볼길 막연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이렇게 무서운 나무가 있으니 잡귀나 잡신은 우리 집을 넘보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고 전한다.

모항이란 이름을 불러보면 어머니의 항구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항은 띠가 많은 곳이어서 띠 모(茅)에 목 항(項)자를 쓰는 곳이다. 예부터 띠가 많았던 곳이라 해서 붙은 지명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마치 띠와 상관없이 어머니의 항구 모항(母港)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모항의 서쪽으로는 서해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위도가 있고 서북쪽으로는 채석강이 있다.
모항의 동쪽에는 젓갈과 염전으로 유명한 곰소가 있고 그보다 조금 더 동쪽에는 화려했던 옛 명성을 잃고 쇠락해 버린 줄포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고창의 동호 해수욕장과 마주 보고 있다.

모항은 마을 서편에 커다란 소나무 숲을 지니고 있다. 100여 그루 정도되는 아주 오래된 소나무들이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을 막아주고 여름이면 모항의 1.5킬로에 달하는 해수욕장에 놀러온 관광객들에게 비치 파라솔의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모항은 변산이 그런 것처럼 불룩 튀어나온 반도 속의 또 조그마한 반도 마을이다.
모항에서 어떤 편리함을 찾고자 하는 것은 과욕이다. 그저 마을이 있고 찾아오는 길손이 있어 민박을 치는 집이 몇 집 있고, 모항의 언덕에 한 대기업에서 연수원 형태의 기업 콘도를 한 채 지어 놓고 자사의 직원들만 이용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횟집도 몇 개 있었지만 그것은 모항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때 반짝 장사를 하는 곳일 뿐 지금은 휑하게 찬바람이 수족관 창자를 후비고 나올 정도다.

▲바다가 해를 삼키려는 순간
어쩌면 바다는 저기 있는 사람마저도 함께 데려가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고필

그렇다고 모항이 썰렁함으로 가득한 곳이란 말은 아니다.

모항에서는 바다가 해를 삼키는 모습을 그 어느 곳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때가 되면 띠뱃놀이로 유명한 위도가 해를 삼키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지금은 위도 보다 바다가 먼저 해를 꿀떡 삼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장렬한지 매서운 바닷바람의 한기 따위는 잊어 버리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는 모습이 함께 한다.
지는 해가 모항의 서편 해수욕장에 걸리면 모항은 하나의 거대한 황금 덩어리로 변한다.

모항의 뒤편 도로에 서서 그 모습을 보면 나도 이 아름다운 곳에 조그마한 집 하나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어둡고 쓸쓸했던 마음이 풍요로움으로 배가 불러오는 것을 느낀다.

모항이 아무 말 없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것을 구태여 얻으려 하면 주지 않지만, 내가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항이 나를 포만하게 만드는 선물을 주었던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모항에는 채석강이 그런 것처럼 연인과 함께 가면 이별을 한다는 그런 속설이 없다. 오히려 모항에 연인이 간다면 이 말을 다시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노을을 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그대와 내 사랑이 이렇듯 노을처럼 온 세상을 충만하게 하자는 약조를 이 곳에서 하고 온다면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여행이 될 것이다.

▲고사한 소나무를 물들인 노을의 힘
소나무가 살아 일어날것 같았습니다.
ⓒ 전고필
바다가 어두워지고 고요한 정적이 찾아오면 쏟아질 듯 별들이 하늘과 바다에 박힌다.

늙은 소나무는 연신 바닷 바람과 대화를 나누고, 백사장에도 바다 깊숙이 가라 앉아 있다가 불끈 솟아오른 바닷물이 연신 얘기를 한다.

이럴 때 허연 무릎을 드러내고 축축한 바다를 거니는 것도 좋을 일이다.

살속 깊이 파고드는 냉랭한 기운이 느껴질 것이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는 바닷물이지만 내가 바다와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여겨보자. 어디 내 언제 그에게 내 마음을 열어 보였던 적 있었던가 되짚어 보면서 말이다.

바다는 뜨겁게 달아오르며 수줍은 듯 얘기할 것이다. "그대들 꼭 다시 만납시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치 않는 우정으로 그대들 다시 만납시다. 그때까지 힘과 용기 잃지 마세요 라고..."

덧붙이는 글 | 광주에서 모항 가는 길

광주광천동 버스 터미널에서 정읍으로 정읍에서 곰소 - 곰소에서 모항으로 가야 한다. 정읍에서 곰소 가는 버스는 8:54, 11:18, 13:42(버스터미널 063-535-6011)에 있으며 곰소에서 모항가는 버스는 07:55, 09:55, 11:50, 13:50, 15:50, 17:50, 18:50, 20:30(버스 터미널 063-582-7129)에 있다. 
 광주에서 격포(채석강)가는 직행(9:20, 14:30)을 이용하여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모항으로 나오는 방법이 있다. 
자가용은 호남고속도로 정읍에서 서쪽 고부쪽으로 가서 변산반도를 타면 된다. 정읍에서 모항까지는 43킬로 정도 가면 되며, 가는 도중 곰소 휴게소가 나타나면 그 옆쪽을 보면 염전이 있다. 기왕 나선 길이라면 이 염전을 둘러보고 물을 퍼 올렸던 우리 고유의 펌프 물자새의 모습도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광주에서 모항 가는 길

광주광천동 버스 터미널에서 정읍으로 정읍에서 곰소 - 곰소에서 모항으로 가야 한다. 정읍에서 곰소 가는 버스는 8:54, 11:18, 13:42(버스터미널 063-535-6011)에 있으며 곰소에서 모항가는 버스는 07:55, 09:55, 11:50, 13:50, 15:50, 17:50, 18:50, 20:30(버스 터미널 063-582-7129)에 있다. 
 광주에서 격포(채석강)가는 직행(9:20, 14:30)을 이용하여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모항으로 나오는 방법이 있다. 
자가용은 호남고속도로 정읍에서 서쪽 고부쪽으로 가서 변산반도를 타면 된다. 정읍에서 모항까지는 43킬로 정도 가면 되며, 가는 도중 곰소 휴게소가 나타나면 그 옆쪽을 보면 염전이 있다. 기왕 나선 길이라면 이 염전을 둘러보고 물을 퍼 올렸던 우리 고유의 펌프 물자새의 모습도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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