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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에서 장구목으로 가는 길. 강변을 끼고 비포장길을 달리는 군내버스에서 옛길을 생각해 봅니다. ⓒ 전고필 |
장구목과 만나면서
여행은 일생의 짧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 수많은 삶의 시간 속에서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소중한 시간에도 우리는 일상의 잡다한 일을 떠남속으로 그대로 옮겨오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흔하게 들고 다니는 핸드폰, 신문, 잡지, 라디오 심지어 일상의 상념까지도 그렇게 여행지로 옮겨오고 심한 경우는 주방까지도 여행지로 옮겨온다.
현대인은 그런 일상성이 모든 생각과 생활을 지배하는 구조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런 것으로부터 잠시간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여행을 만끽하는 방법이 되는데.
과연 우리의 여행이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다. 내 자신 또한 여행하는 것이 직업이 돼버린 탓에 언제나 더 깊게 느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다닌 탓에 종래의 즐거움과는 다른 답사가 돼 버리고 만다.
이번 장구목의 여행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장구목이 나를 자유롭게 놓아 준 것이 많기도 했다. 내게 감동을 주었던 모습을 쉽게 놓쳐 버린 것이(밭이랑처럼 깊이 패인 주름을 하신 할아버지가 황혼빛을 받으며 일하시던 모습)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곳에는 그 흔한 모텔도 없었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핸드폰도 터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튼 스케치를 하듯 한번 다녀오면 그 모든 것을 쉽게 정리해내고 다음 목적지를 찾아낼 것이라 여겼는데 이 글을 쓰기까지 다섯 번을 더 다녀왔다.
하지만 아직도 장구목에 대한 앎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저 장구목에서 보았던 경관만 읊어댄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는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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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구목의 물안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구목의 정경입니다. ⓒ 전고필 |
내가 처음 장구목과 만난 것은 작년 6월의 일이다. 광주비엔날레가 끝나고 한동안 책장 속에 가둬두었던 한겨레 21의 '영화가 사랑한 풍경'이라는 기획 시리즈에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를 더듬어가는 모습을 다시 찾았다.
그 책 속에 나와 있는 기사의 지도를 뒤적이며 전북 순창과 임실을 돌아 다시 순창쪽으로 가는 차 한 대 지날 만한 도로에 구담 마을이 있었고 그 맞은편 길을 따라 1km 더 들어가니 장구목이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가 금년 5월 초부터 그곳을 찾기 시작했다.
강변의 마을이지만 비린내가 나지 않는 마을, 수달과 가시고기가 함께 사는 마을, 흐느적거리며 흐르는 여울 곁에 염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는 마을, 조금만 뜨거워도 아이들이 팬티만 입고 물로 뛰어드는 마을, 얕은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아 서로를 이어가는 마을, 강변의 미루나무가 너무도 크낙한 거울에 제 모습을 다듬는 마을, 세월의 흔적이 화강암 암반에 층층이 배어 있는 마을, 담배씨만도 못한 즐거움이지만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섬진강의 끊이지 않는 강만큼 넉넉한 정을 가진 마을.
내가 이 장구목을 만난 것은 참으로 값진 여행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오늘 그 마을의 정경을 얘기하고자 한다.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여행자의 입장이 아니라 한 젊은이로서 그들의 삶과 다가갈 수 있을 때 할 수 있으리라 믿기에 그 얘기는 숙제처럼 뒤로 미뤄두고 싶다.
장구목이란 이름에서 얻은 상상력
전국의 지명중에는 노루목이라는 이름이 많다.
노루가 뛰어다니는 길목으로 이쪽과 저쪽의 노루가 교차하는 지점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것은 지명을 동물의 이동통로를 통해 얻은 이름이라면 장구목은 그 마을의 생김새가 장구의 모양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란 것이 나의 추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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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를 노리고 있는 왜가리. 그 새에게도 부양할 가족이 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 전고필 |
그래서 나의 여행길에 장구모양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지 혹은 산세가 그런지 찾아 보는 것이 내 과제의 하나였다. 그런 내 자신의 추론은 장구목 마을의 앞 강에서 바라본 순창쪽으로 솟아있는 강 양편의 산 모습이 겹쳐진 모습에서 틀리지 않았다고 단정을 하였다.
식자라고 하는 문화재 관련 인사들이 문화재 안내판에 스스럼없이 사용하던 고복형이라는 장구통 모양의 산세가 그곳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의 안목에 잠시간 감탄을 해보았다. 그래 생각하고 보면 그렇게 찾을 수도 있는 법이야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기대는 마을사람과의 대화 도중에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원래는 장군목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장구목이 되었당께"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더 얘기를 잇지 못했지만 나는 잠시 내 고향의 연천 마을의 지명을 떠올렸다. 원래는 솔개연를 사용하던 마을이었는데 일제때 제비연자로 바꿔 제비촌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그 마을 지명의 변천사였다.
굳세고 용맹한 이름은 거세되었던 시대의 슬픔이 혹 이 마을에도 적용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은 던지지 못하고 가슴에 묻고 있다.
5월 장구목의 색깔론
5월의 강은 연푸른 빛을 가진다. 단일한 여름의 푸른색이 아닌 짙거나 엷거나 그 중간인 나무들이 뿜어내는 색감이 모두 강에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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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담마을에서 본 섬진강변 모습. 구담마을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중 하나로 당산나무에서 강변을 보니 유장한 강물 곁에 염소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습니다. 한해전 6월 찍은 사진입니다. ⓒ 전고필 |
하지만 그 강의 색은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쪼아내리는 빛의 굵기와 양에 따라 달라지고 구름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바람이 부는가 멈추어 있는가에 따라, 내가 걷고 있는가 달리고 있는가 멈추어 있는가에 따라 강의 색은 현저한 차이를 보여준다. 심지어는 내 마음의 심리적 상황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특히 색들이 혼잡한 이유는 강물의 외관을 둘러싼 빛에 감탄하다가 정작 강물을 보면 그 속에 혼인색을 띄우고 바위틈과 모래밭을 어슬렁거리는 각시붕어라든가 피리들이 그 강에 살고 있음을 만날 때 더욱 그러하다.
스스로의 영역에서 새로운 식구들을 만들기 위해 독특한 사랑법으로 색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런 섬진강의 강물을 어떻게 쉽게 이 색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혼돈스러운 색감의 가운데에서도 굳이 강 물빛을 말하자면 연초록의 색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지극히 주관적이 색 읽기에 불과하다. 더 힘겹고 어려운 것은 어찌 그 많은 강물의 내력을 단일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에 있다.
장구목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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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장구목의 정경. 깨끗하게 단장한 장구목의 새벽 모습입니다. ⓒ 전고필 |
깊은 밤 적막함이 흐르는 장구목의 강에는 낮에 놀던 물고기들은 모두들 바위틈 어디론가 들어가고 별들이 맑은 이슬을 강변 풀숲에 뿌리고 들어와 논다. 저 건너 산자락을 타고 들어온 별들이 그 많은 섬진강의 바위 하나씩을 잡고 휴식을 취한다.
그 사이 강물은 낮 동안 뜨겁게 달궈 놓았던 열기를 조금씩조금씩 벗겨내며 추운 별들에게 온기를 주며 반겨준다. 달님은 이런 정경에 익숙한지 제 얼굴을 강물에 비춰보며 이런 저런 표정을 지으며 다듬는 것으로 장구목을 지나간다.
함께 간 어떤 시인은 장구목의 하늘과 강을 수놓은 별들을 보며 이렇게 얘기한다.
"워메 여긴 누가 사금파리를 깔아부렀네 잉"
사금파리들이 제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장구목과 구담마을의 수탉들이 홰를 치고 새벽을 알린다. 내일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별들에게 수탉은 더 큰 소리로 "꼭 이리로 오시오"라고 외친다.
누가 부르지 않았어도 찾아오는 아침인 것 같지만 장구목에서는 그냥 오지 않는다. 장구목의 아침은 안개가 강물을 열어 주어야만 찾아오며, 마을의 어부아저씨가 시원스레 오줌을 갈기고 고기통을 들고 강가에 다가가야만 찾아온다.
이런 매일의 반복된 작업이 있어야 장구목의 아침이 시작된다.
장구목에서는 물안개가 끼지 않는 날은 어부의 쪽배가 강물에 닿을 때부터 시작한다. 강물은 비로소 별들에게 밤새 주었던 온기가 사라지면 몸을 뒤척여 세수를 한다. 그 강에는 안개가 거뭇 거뭇 피어오르고 장구목의 바쁜 어부는 이 물안개속을 헤집으며 쪽배를 타고 그물을 걷는다.
밤사이 잠 못 이루고 꿈길을 헤매던 쏘가리나 꺽지는 이제 그 가난한 어부의 손에 들려 이 강을 떠나게 된다.
그 강 언저리에 사는 왜가리나 백로들도 밤새 우느라고 배고픈 새끼들을 위해 강가로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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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구목의 바위와 물빛. 장구목의 물빛을 이런 사진으로 다 담긴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빛의 한 종류입니다. ⓒ 전고필 |
햇볕이 장구목에 들어오면 강물은 더욱 청정한 기운을 가지려 마지막 안개까지 날려 보낸다. 이때 강변 풀숲에서는 이슬이 저마다의 태양을 안으며 빛을 발한다.
아롱거리는 이슬들이 바람을 만나면 더 크게 하나로 모였다가 흙속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장구목 마을의 모습과 어부의 뱃일을 담아내기도 한다.
나그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 이슬은 밤사이 섬진강에 내려앉았던 별들이 이슬로 변한 것 아닌가 고개를 뒤척여 보기도 한다.
아침 강가에는 이제 식사를 즐기려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요란하다. 수분이 부족한 곤충들이 강물에 몸을 착지하여 물을 묻히려 하면 금세 쏘가리와 꺽지가 그들을 잡아 가둔다.
어떤 때는 한번에 잡지 못하여 여러번 물장구를 튀기며 먹이를 쫓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길들여진 돌고래의 쇼보다 이런 모습이 얼마나 기묘한지는 직접 보지 않고는 말하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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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의 밭일. 그 강에 기대여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척박함과 승부하며 살아오시지 않았나 생각되어져 마음 아려왔습니다. ⓒ 전고필 |
그리고 이 때쯤이면 아침을 먹은 농부들이 경사진 밭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할머니와 제약회사에서 준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고추모종을 하고 농약을 하고 밭고랑을 다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햇살이 어깨에 내려 쬐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신성한 노동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눈물겨운 우리네 삶이 생각난다.
드디어 장구목 사람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밭뙈기를 부치는 이곳의 농부는 거개가 60을 넘긴 분들이다. 그렇기에 나그네는 그분들의 가까이에 다가서는 것이 두려워진다. 거칠고 투박한 그분들의 손에 비해 기름기 흐르고 뻔지르한 말투로 무장한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경외스런 몸짓을 카메라에 잡으려는 것은 사실 도회지 사람의 호사스러움의 극치란 것을 단 20초만 노부부의 힘겨운 괭이질을 보면 느낄 수 있다.
70이 가까워 보이는 그분들은 왜 이곳에 살고 있을까? 그들의 강변에 기대어 사는 삶은 행복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장구목을 거닐다 보면 오전은 금방 가버리고 만다.
한낮의 장구목은 강변의 버드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고추와 담배를 키우는 태양의 볕이 어찌나 뜨거운지 금세 살코기가 되어 버릴 것 같은 기세로 우리에게 덤벼드는 것이 장구목의 한낮이다.
버드나무 아래에서 호젓하게 잠을 한숨 잔다거나 함께 간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강과 더불어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노닐어 보는 것이다. 변해 가는 강물의 색감과 그 많은 돌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구목의 돌들을 바라보면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거친 물결이 일었던 시간과 그 돌을 뜨겁게 달구었던 시간, 완만하고 유유하게 흘렀던 강물의 역사가 돌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거대한 바위가 있는 곳에는 저마다 주인이 있었던 시간도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누구네 바위하며 그 널찍하게 깔린 바위가 한 집안의 살림의 일부였던 시간도 있었다.
삶이 곤궁하던 시절 그 강의 바위는 물고기를 가두는 양식장과 같은 곳이었다. 강변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은 바위 사이에 풀이나 볏짚을 쑤셔 넣고 고기들이 그곳에 모여들기를 기다려 한꺼번에 모여든 고기를 잡아 요기를 하곤 했다.
어엿한 한 집안의 먹을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삶과 강의 역사를 읽다 보면 하루가 가는 것은 금방이 되고 마는 것이 장구목이다.
장구목의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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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의 전사 꺽지. 그들은 수동적이지 않았습니다. 외래종이 섬진강을 넘본다면 이 꺽지와 쏘가리가 가장 먼저 전선에 나설것 같았습니다. ⓒ 전고필 |
장구목은 장구목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장구목의 터줏대감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속에 깃들여 사는 꺽지와 쏘가리와 수많은 바위들이 바로 인간과 함께 주인인 것이다.
다만 의사표현이 없는 다른 것을 대신하여 장구목 사람들이 그들을 지키고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장구목의 강은 단일한 화강암 암반이 처음과 끝을 이룬다. 덕분에 장구목에서 모래밭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된다.
장구목의 모래는 저기 하동쪽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고 그 대신에 장구목에는 요강바위를 비롯한 수많은 바위들이 모래밭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모래밭이 재첩의 천국이라면 장구목의 바위는 꺽지의 천국과 같은 곳이다. 닳아서 돌이 되었을지라도 장구목의 바위는 그 밑에 꺽지 한 마리씩을 키우고 산다.
거대한 바위가 인간의 눈요기감이 되고 새들의 휴식처를 만들어 준다면 그것들의 살점은 강심을 다니는 물고기와 다슬기에게 훌륭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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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강의 모습을 닮은 요강바위. 사람둘이 꼭 들어갈만한 크기에 깊이는 2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 전고필 |
그 중에 아주 똑똑하게 생긴 바위 하나는 정말 산전, 수전, 법정 공방전을 다 겪은 내력을 지니고 있다. 그 모습이 옛적 요강을 닮아 요강바위라고 이름하는데 어찌나 그 생김새가 기묘하고 멋진지 사진으로 닮아내기에는 모자람이 너무 많은 바위이다.
장구목 마을의 일반적인 바위층보다 크기가 도드라진 이 바위를 탐하는 자들이 몇 해전 밤을 찾아 대형 장비를 동원하여 퍼가버렸다. 20여 톤이 넘는 바위를 탐하여 저지른 인간의 탐욕이었던 것이다.
행방불명된 이 바위를 찾기 위한 장구목 사람들의 노력이 하늘에 닿아 결국 경기도에서 찾아내었단다.
장물이었던 이 바위를 원위치로 돌리기 위하여 법정에 섰던 마을 사람들의 집념은 결국 이 바위를 4년만에 원위치로 돌릴 수 있긴 했는데 거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마을 사람들의 몫이었단다.
열댓집이 모여사는 이 마을에서 저마다 돈을 각출하여 500만원을 만들어 원래의 위치로 옮겨다 놓은 정말 신주단지와 같은 마을의 보배 바위인 것이다.
강물빛을 닮은 섬진강 장구목의 순수한 사람들의 사랑은 참으로 가슴 저미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 선량한 사람들에게 천박한 집안 정원을 꾸미는 괴석의 하나로, 혹은 어느 가든이나 모텔을 꾸미는 장치의 하나로 요강바위가 가버렸다면 그들은 또 어느 바위에 기대어 살았을까 생각해보면 인간의 탐욕이 싫어진다.
에필로그
이 땅 어딘들 소중하지 않은 곳 없지만 장구목에서는 더욱 더 사무치는 마음이 일었다.
장구목으로 접근하게 되는 길에서 만나는 비포장길,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시멘트 포장길, 밤을 새워 첨벙이던 수달의 물질소리, 먹이를 쫓아 위험도 감수하며 저공 비행을 하다 무참히 죽어가던 밀화부리, 모기처럼 생긴 벌레가 물을 차고 오르려 할 때 뛰어 올라 채가던 꺽지.
그러나 더 내 마음을 간절하게 했던 것은 칠순의 노부부가 밭이랑을 다듬을 때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가 그 모습의 경외스러움에 내가 사치스러운 짓을 한다는 느낌에 슬며시 카메라를 놓았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포기하고 다시 새로운 모습을 찾기 위해 여러 번의 길을 찾았으며 결국 5월의 신록이 다가고 한 가지 색으로 합해질 여름에나 이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 주변의 지인들과 합석하는 자리에서 이곳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물안개를 함께 보는 것에 마음을 합쳐 하룻밤을 자고 새벽 다섯시반에 일어나 종일토록 장구목과 구담마을을 헤맸다.
그 모습 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끌어 당겼던 것은 그 강에 사는 꺽지였다. 순 가시뿐인 물고기이지만 꺽지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어떤 이물질과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성질을 가졌다.
쉽게 타협하고 쉽게 물러서는 오늘날의 삶의 방식과 애써 배웠던 순종적 이미지의 한국인, 그리고 한국의 자연이 그렇게 무르게 있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꺽지의 당찬 모습에서 보았던 것이다.
물을 차오르며 먹이를 사냥하고 다시 유유히 돌밑으로 들어가는 적성강의 꺽지를 생각하며...
그리고 그 속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얘기는 꼭 다시 쓰기로 하고 이렇게 겉모습으로 치장된 이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장구목을 접근하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순창에서 전주 따라 가다보면 임실군에 닿고 강진면의 소재지에 이른다. 이곳에서 우회전하면 717번 지방도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섬진강이 보이고 천담교가 나온다.
그 길을 통과하여 조금만 가면 언덕이 나오는데 그 오른편으로 장구목 가든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시멘트 포장이 된 이 길을 따라가면 섬진강이 오른편으로 펼쳐지고 오른편으로 구담 마을을 굽이쳐 1킬로 정도 내려가면 장구목 마을이 나온다.
다른 한 길은 순창읍의 제일고쪽에서 남원방향으로 4.8킬로를 가면 인계와 내월 이정표가 나타나고 오른편 아래로 유명한 화탄 매운탕집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좌회전하여 1.8킬로 가다보면 내월 보건진료소 간판이 나온다. 그길을 따라 또 1.8킬로 가면 언덕의 콘크리트벽에 장구목이라는 청색의 글씨가 보이고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그 곳으로 가면 곧 비포장길이 나오는데 주저없이 비포장길을 따라가면 된다.
가다보면 우측으로 다리가 나오고 맞은편으로는 강경이라는 표지석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우회전하여 다리를 건너가면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에 장구목 가든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그 표지판을 따라 외길로 4킬로를 가면 되는데 불과 500미터를 넘어서면 섬진강의 수려한 풍광이 시야를 유혹한다.
이때부터는 그 유혹에 빠져야 한다.
차의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그 경관은 내 눈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다가는 이제 갓 새끼를 치는 새들과 접촉사고를 내거나 더 심하면 맞은편에서 오는 차와 박치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은 순창읍내에서 강경까지 가는 버스가 있을 뿐 나머지는 걸어가야 한다.
그곳을 섬진강의 여러 지류의 강중 적성강이라고 하는데 천담 마을까지는 8킬로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이다.
하루 도보 여행의 코스로 삼아도 좋은 코스이다.
숙박과 음식은 장구목에 요강바위 가든과 장구목 가든이 있어 해결할 수 있으며 행정 구역은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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