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천지 한백꽃 뜨락에서

눈여겨 보지 않으면 만나지 못할 꽃들

등록 2001.04.06 11:54수정 2001.04.0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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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산에 핀 꽃에 눈길을 주기까지

▲금붓꽃 ⓒ 전고필
그리 강팍하게 살아온 날들이 아니었건만 대학시절 나는 수없이 많은 불심검문 속에 살아야 했다. 도대체 왜 나만 그렇게 검문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잘 모르던 어느 날 맘씨 곱고 선량한 교수 한 분이 안경을 끼고 다니라는 주문을 해 왔다.


스스로의 본색을 감출 줄 알아야 하는데 자네는 모든 것이 눈에 드러나는 특징을 가져놔서 그것이 자신을 옭아맬 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하지만 나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보여주는 세상을 그대로 보면서 살고 싶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눈으로 드러나는 것이 그다지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을 때 참 세월이 무료할 것이라는 예감을 했다. 단순한 병영 생활은 변화를 추구하는 나를 수없이 힘들게 할 것이며 짓누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내 기억 속에 떠 오른 것은 제주의 한라산에서의 뜨끔했던 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행사에 근무를 하던 몇 개월의 기간 동안 나는 현장 가이드의 역할을 했는데 주로 제주 지역을 직접 안내했다.

계절이 봄이라서 대학생들의 졸업여행이 몇 건 있었는데 당시 한라산 등반은 필수적인 코스 중의 하나였다. 그런 학생 고객을 모시고 함께 등반을 하는 것은 일을 넘어서 내겐 정말 즐거운 기억이었다.


그런 어느 봄볕이 무척 다사로운 날 윗세오름을 넘어서 화산재가 포근하게 느껴지는 평평한 길을 가는데 어떤 여학생이 나를 불렀다.
"아저씨 이 꽃이 무슨 꽃이죠?"
바위 밑에 뿌리를 내리고 딸기나무처럼 누운 가운데 노랗게 꽃을 피운 흔하게 보았을 법한 꽃의 이름을 물어 보는 것이었다.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을 하면서 짐짓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그 여학생은 내 말을 듣고 나서 바로 한마디를 던진다.
"가이드를 하려면 가는 길에 의미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자연물까지도 다 알고 안내를 해 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상당한 충격이었다. 가이드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참 이런 산에 핀 꽃과 나무가 얼마나 많은데 이것을 다 알고 얘길 해 줘야 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니. 그리고 그 순간의 기억들은 마치 밀린 숙제와 같이 내 가슴에 남게 되었는데 그 기억이 군대에서 다시 떠오른 것이다.

▲할미꽃 ⓒ 전고필
그래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 나의 불온한 눈길을 거두고 작은 것에도 각별함을 부여하면서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하고 맑은 기운을 가진 눈을 갖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작은 식물부터 애정을 주는 법을 배워보자는 심정 하나와 그 날 한라산 등반의 묘한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선배가 준 용돈을 기념도 할 겸 과감히 원색 식물도감을 샀던 것이다.

그렇게 철원에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둔지에서, 진지에서, 행군 중에, 면회길에 도감과 꽃을 맞추며 이름을 외우고 나름대로의 특징을 찾아 헤매며 보냈지만 전역을 한 후 다시 일하게 된 여행사에서 식물들의 이름을 물어보는 사람은 만나질 못했다.

몇 해 전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광주 시내의 한 켠에 야생화를 전문적으로 재배하고 이를 보급한다는 집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내에서 광주공항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백꽃뜨락이라고 하는 농원이었는데 신문을 오린 후 토요일 오후를 택해 그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이 땅의 야생화가 꽤 많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 집 주인장과 야생화의 이름을 얘기하면서 한참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고 돌아올 때는 집 마당과 사무실에 심어둘 야생화 몇 뿌리를 구입했다.

그리고 몇 해 뒤 그 집을 다시 찾았을 때는 다른 이가 장사를 하고 있었고 그 집 주인은 담양의 대덕면이라는 곳에 농원을 만들고 있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한 해에 대 여섯 번 이상은 담양 대덕의 야생화 농원을 찾게 되었다. 그 곳에 가면 식물도감을 통해서나 볼 수 있는 온갖 야생화들이 곱게 자라나고 있다.

한백 꽃 뜨락 이야기

▲얼레지 ⓒ 전고필
눈이 아직 녹지 않은 2월부터 온실이 있는 그곳을 찾은 것은 벌써 다섯 차례 정도 된다.

그 곳에는 250여 종의 야생화들이 자라고 있다. 우리의 산하에는 약 4200여 종의 나무와 풀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관상 가치가 높고 집에서도 적당히 기를 수 있는 종들을 씨앗을 받아 오거나 뿌리를 채취하여 직접 재배하고 번식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견 자연 속의 식물을 자연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두지 않고 인간의 손으로 옮겨오는 것에 대해 염려스러운 마음도 들지만 그 집 주인장인 나문심이라는 분의 얘길 듣노라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방치하는 동안 자연의 상태에서도 멸종하는 품종들이 부지기수이고 보호의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보존의 최상책임을 내세우는 것이 너무나 피상적이고 소극적인 보호책이란 점은 문제를 가진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는 우리의 식물 종을 가져가 여러 상태에서 재배하고 개량을 하여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상품화를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도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라일락의 경우가 그런 대표적인 예이다.

원래 유럽쪽에서 라일락이라고 불리웠고 우리 고유종은 "수수꽃다리"였다. 진한 향을 품고 있는 꽃의 모양이 수수꽃과 닮아 지었을 것인 이 이름대신에 우리는 라일락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방울깨꽃(디기탈리스) ⓒ 전고필
높이 2미터에서 4미터 정도까지 야생의 상태에서 자라는 이 나무를 1947년 미국인이 가져가 울타리를 칠 정도의 높이로 종을 개량하고 한국종임을 밝히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김"을 넣어 "미스킴 라일락"으로 만들어 판매를 하였는데 무척 인기 있는 나무가 되었고 그로 인한 부가가치도 많았다는 얘기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리꽃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우리의 울릉도의 말나리꽃을 가져간 네덜란드에서 종을 개발하여 우리 쪽에서는 볼 수 없는 노란색의 종으로 개발하여 "코리안 타이거"란 이름으로 인기를 끄는 꽃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한국적 자연관인 바라보고 아끼는 마음 이상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 채 종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상품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다른 세계와는 별개의 개념 속에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핀 야생화가 모인 한백꽃뜨락

▲하늘나리 ⓒ 전고필
주인 나문심 씨의 전공은 식물이나 수목의 분야도 아니고 생물학의 분야도 아닌 국문학이 전공이라고 한다. 그녀가 이렇듯 야생화를 직접 기르게 된 데에는 어느 청탁된 원고가 "야생화"에 관한 글이었는데 그때 피상적인 도록으로만 글을 쓰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 직접 그 꽃을 보고 글을 쓰고자 마음먹고 꽃을 찾게 되고 그 꽃과 만나게 되면서 보는 단계를 넘어 직접 키워보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후 그녀가 사는 아파트는 차츰 이곳 저곳에서 구한 야생화가 들어서고 그 소중함을 느끼며 함께 보고 키우는 즐거움을 나누고자 상무지구 쪽에 화원을 열었다가 직접 재배하고 종자를 확산시켜 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담양 대덕에 땅을 구해 농원을 일구었던 것이다.

지난 일요일 오후 시인 김호균 선생 가족과 사진을 하시는 민영 선생 가족, 그리고 학생들 셋과 한백꽃뜨락을 찾았다.

봄볕이 완연함을 넘어 여름기운이 다가온 듯한 날씨인데 주인장의 늦동이 아들 대영이는 이제 네 살인데도 하우스와 집 뜨락을 오가며 혼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주인장은 꽃에 물을 주고 새우란의 포기 나누기를 하며 분갈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린 대영이의 모습을 보면서 고 녀석 참 행복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도회지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먼저 배우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영상매체와 온갖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수용해야 되는 구질구질한 생각들이 많을 것인데 대영이는 문 나서면 사방에 보이는 들꽃들의 자태를 보면서 가장 먼저 익히는 것 중의 하나가 꽃이름이 아닐까 하는 부러운 생각이 스친 것이다.

주인장에게 인사를 드리고 꽃구경을 시작했다. 집 앞 양지녘 화계에는 금낭화가 이제 몽실거리며 주머니처럼 생긴 꽃의 몸집을 불리려 햇볕을 쬐고 있었다. 5년 전 내 집 마당 한 켠에 뿌리를 구해 심었는데 도무지 씨앗을 맺지 않아 뿌리 나누기를 해서 여러 곳에 나눠 심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해 왔던 꽃이다.

몇 해 전 이곳 주인은 금낭화가 만개했을 때 주머니처럼 생긴 꽃의 하얀 부분을 손으로 문질러 주면 암술과 수술이 만나 수정이 되기 때문에 씨앗이 달리는 좋은 방법이 있다고 그 방법을 권장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수정을 시키고자 손으로 문질러 주었지만 내 집의 꽃은 다 그냥 지고 말았다. 무언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탓일 것이다.

▲물봉선 ⓒ 전고필
금낭화를 지나 마당의 연못을 보니 도롱뇽이 알을 낳았고 그 옆에는 각각 색이 다른 도롱뇽 한 쌍이 있다. 짙은 검은 색을 띄우는 것과 옅은 갈색을 띈 녀석인데 알 주변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는데 곧 그 연못은 도롱뇽으로 가득할 만한 좁은 공간이다.

그 곁에 큼직하게 보이는 개구리 한 마리는 보신꾼들이 침을 흘리면 좋아하는 아무르개구리 한 마리가 있고 바로 그 곁에 실타래처럼 늘어뜨린 물체가 보이는데 아무래도 생명체인 것 같아 눈길을 주고 있으니 정말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흔히 시골에서 실뱀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하고 나무장대로 그 녀석의 몸을 번쩍 들어 사람들의 눈에 확인을 시켜준다. 색은 나무의 색을 닮았는데 실처럼 가느다랗고 머리 부분에 검은 색을 띄고 움직이는 것에 모두들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도대체 이처럼 가느다란 것이 입도 몸통도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나 또한 그 녀석의 실체에 대해 알지 못하니 묵묵부답에 단지 어릴적 시골에서 이것을 만지면 손을 벤다고 해서 두려운 존재였다는 점과 실처럼 생겨 실뱀이라고 불렀다는 것 외에는 아무 말 하지 못한 것이다.

하우스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조그만 정자가 있고 그 곁에 할미꽃이 활짝 피어 있다. 몸에 하얀 잔털을 달고 있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내부에는 진한 적색의 화관을 가진 할미꽃은 언제 보아도 슬프디 슬픈 할머니의 사연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예전에는 마을 동산이나 양지바른 곳만 갔어도 만날 수 있었던 꽃이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양지를 좋아하는 이 꽃을 직접 본 것은 3년 전 지리산의 한 봉우리에서였다. 삼거리의 갈림길 사이 양지녘에 고즈넉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초연해서 렌즈에 담아두고 그 아래쪽에서 쉬고 있는데 잠깐 눈을 부쳤는가 보다.

▲산부추 ⓒ 전고필
친구가 나를 깨운다.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인 다음의 일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한 아주머니가 아까 그 할미꽃을 뽑아 들고 내려와 다시 심어 놓으라고 하니 뭔 상관이냐고 하면서 그냥 가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서둘러 일어나 찾아가서 얼굴을 보니 큰 과욕이 있는 분은 아닌 것 같다. 듣기 편하게 할미꽃을 집으로 옮긴다고 해도 쉽게 키우지 못하고 오히려 아쉬움만 더 드실 것이라고 하며 원 위치에 다시 심어 주시라고 부탁을 하니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심어 놓고 내려 갔다. 작년 이맘때 그 곳을 다시 가보니 그 자리에 그 전보다는 약간 허한 상태지만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 바로 할미꽃이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 가보니 벌써 복수초는 씨앗을 달고 있고, 노루의 귀처럼 하얀 잔털을 가지고 있는 노루귀는 자라난 잎이 꽃의 기운을 다 앗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야생의 상태에서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앵초는 꽃 몽우리를 빨갛게 달고 있는 것과 벌써 피어 분홍빛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함께 여러 곳에 담겨 있다.

송추계곡과 강원도 철원의 진지곁 계곡에서 만났던 단풍처럼 잎을 달고 있는 돌단풍도 하얀 꽃을 달고 있다. 포병이었던 나는 매년 3월쯤이면 진지공사의 현장에서 삽질을 하는 것이 2년간의 정례적인 행사였는데 어느 날 그 노천에서 계곡 곁으로 용변을 보러 갔다가 부시럭거리는 새소리와 물소리에 눈과 귀를 기울이다 바로 내 눈 앞에서 핀 아름다운 꽃을 만났는데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 며칠 동안 그 꽃을 보는 재미에 흠뻑 빠진 적이 있다.

그 꽃은 바로 처녀치마였다. 처녀치마를 찾아보았지만 꽃을 피운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푸른 잎사귀만 보인다. 아쉬웠지만 다시 눈을 돌려보니 노랑 제비꽃, 남산제비꽃, 삼색제비꽃이 차례로 보인다. 야생의 상태에서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어울리는 화분 위에 담겨 있는 모습이 기품이 있고 당장 몇 개의 분이라도 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눈을 들 때마다 들어오는 식물들은 이제 어지간하면 꽃이 피지 않아도 이름이 금방 생각날 만큼 익숙해진 내 자신에게도 보람을 느끼며 눈길을 준다.

족두리 모양을 닮은 족두리꽃, 겨울에 꽃 선물을 할 때 빠뜨리지 않고 포함되는 아이리스와 유사한 붓꽃중 그 키가 작고 산지에서 자라는 금색의 금붓꽃, 두루미의 깃 모습을 닮은 두루미 천남성, 매의 발톱 모양으로 웅크린 꽃받침을 가지고 있는 매발톱꽃, 아직은 화분 위에 아무 모습도 드러내지 않지만 하얀 모습의 해오라기가 나는 모습을 닮은 해오라비난, 실타래처럼 줄기를 타고 빨간 원형의 꽃을 피우는 타래난초, 이제 막 봉우리를 달고 있는 새우란, 자란, 피나물, 동의나물, 그리고 포자를 컵처럼 달고 있는 이끼 등 이들이 포트나 화분에 가득한 모습에서 정말 진한 봄의 향기를 넘어 이 땅에 이런 아름다운 꽃이 있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해 준다.

내가 눈길을 주지 않고 그 들꽃과 산꽃의 키 높이에 눈을 들이대지 못한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소중한 우리의 자연이 한백에 죄다 모여 있는 것이다.

야생화를 본 감회

▲타래난초 ⓒ 전고필
여행사에서 일할 적에 이맘 때 합천의 가야산 안내 등반이 있었다. 가이드를 맡은 직원들에게 지금 가야산에 피어 있을 만한 꽃 이름을 죄다 일러주었다. 그 중 그 친구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꽃 이름은 얼레지였다. 꽃도 다른 야생화처럼 작지도 않고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독 강조하여 가르쳐 주었는데 짐작대로 산길을 가는 동안 곳곳에서 얼레지를 만나며 정상에 올랐다.

먼저 정상에 올라 나중에 오는 등반객을 기다리는 와중에 어떤 손님이 "어라. 여기도 얼러리가 있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미루어 짐작해 보니 틀림없이 내 직원이 꽃 이름이 얼까지만 생각이 나서 얼러리라고 말한 것이리라 여기고 기다렸다가 물어보니 사실이었다. 다시 정정을 해 주었을 때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요렇게 아름다운 꽃 이름이 얼러리겠냐는 얘기를 하며 모두들 웃음을 터뜨린 기억이 난다.

우리의 산과 들에서 만나는 야생화는 정말 다양한 종류를 가지고 있고, 그들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지니고 생활해 가고 있다. 더불어 그들의 생애를 애정 어린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우리 조상들은 그 꽃의 특징을 닮은 꽃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흔히 시나 글 속에서 얘기하는 "이름없는 꽃" 혹은 "이름모를 꽃"이라는 것은 정말 꽃의 입장에서는 서운하기 그지없는 표현양식이다. 들판에서 강가에서 산에서 만나는 꽃들뿐만 아니라 들풀 또한 모두 사람이 그렇듯이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번 그들의 이름을 찬찬히 불러본다. 머릿속에 그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말이다. 애기똥풀, 며느리 밥풀꽃, 수크렁, 미나리 아제비, 접시꽃, 양지꽃, 기린초, 석곡, 현호색, 동자꽃, 뻐꾹나리, 함박꽃, 산자고, 골무꽃, 복수초, 깽깽이풀, 비비추, 원추리, 어리연꽃, 순채, 패랭이꽃, 창포, 부들, 솜다리, 끈끈이주걱, 은방울꽃...

한백에 들를 때마다 나는 주인장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전문가의 시대에서 매니아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변환기라고 하지만 정말 돈도 되지 않고 누군들 쉽게 덤비지 못한 일을 묵묵히 10여 년을 지속해 오며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자상하게 각 식물의 특성을 설명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주인 그 자체도 산야에 핀 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봄 숨막히는 도심을 떠나지 못했던 분에게 혹은 화려함을 싫어하는 여행객에게 꼭 한백꽃뜨락이 아니더라도 고개숙인 여행객이 되어 보길 주문해 보고 싶다. 그 숙인 고개 아래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얼마나 많은 세계가 열려 있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며, 그 산들에 핀 들꽃의 강인함을 내 몸으로 옮겨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길 산길을 갈 때 언제나 떠 오르는 두 편의 시를 권해 드린다.

받들어 꽃

곽재구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 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미사일 받아라 끝내는 좋다 원자폭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싸 힘이 센 304호실 아이라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아름을 골라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아름답고 힘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늘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과꽃
한 송이를 꺾어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그리고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
하고 경례를 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시키지도 않은 아이들의 경례소리가
과꽃이 지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애기똥풀

안 도현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한백꽃뜨락은 전남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에 있습니다. 광주에서 담양 창평을 거쳐 옥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면 창평면 소재지를 지나 대덕면의 소재지를 지나면 문재라고 하는 큰 고개가 나옵니다. 

그 고개 정상에 세 개의 길이 나오는데 그중 옥과 가는 길과 화순온천 가는 길 사이의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2킬로 정도 마을로 들어가면 산자락 아래 검정색의 하우스가 보입니다.

주인은 방문객이 많아지는 것이 이 땅의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손님을 반겨 하십니다.

둘러 보시는 길에 야생화 화분을 삭막한 도심의 내 공간으로 들여 놓으셔도 좋고 화단이 있거나 이전에 쓰다 남은 화분이 있다면 포트에 담긴 야생화를 사가지고 옮겨 심어도 좋습니다.

4월말 경에는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에서 야생화 전을 갖는다고 하며 그 보다 좀더 빠르게는 광주 북구 문화의 집에서 야생화전을 기획하고 있답니다.

* 사진은 대덕의 야생화 농원에서 찍은 사진과 직접 산과 들에서 찍은 사진을 곁들였으며 여러 계절에 걸친 사진입니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

한백꽃뜨락은 전남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에 있습니다. 광주에서 담양 창평을 거쳐 옥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면 창평면 소재지를 지나 대덕면의 소재지를 지나면 문재라고 하는 큰 고개가 나옵니다. 

그 고개 정상에 세 개의 길이 나오는데 그중 옥과 가는 길과 화순온천 가는 길 사이의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2킬로 정도 마을로 들어가면 산자락 아래 검정색의 하우스가 보입니다.

주인은 방문객이 많아지는 것이 이 땅의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손님을 반겨 하십니다.

둘러 보시는 길에 야생화 화분을 삭막한 도심의 내 공간으로 들여 놓으셔도 좋고 화단이 있거나 이전에 쓰다 남은 화분이 있다면 포트에 담긴 야생화를 사가지고 옮겨 심어도 좋습니다.

4월말 경에는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에서 야생화 전을 갖는다고 하며 그 보다 좀더 빠르게는 광주 북구 문화의 집에서 야생화전을 기획하고 있답니다.

* 사진은 대덕의 야생화 농원에서 찍은 사진과 직접 산과 들에서 찍은 사진을 곁들였으며 여러 계절에 걸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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