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미술관들

김현종의 <유럽기행> 프랑스 3편

등록 2001.06.26 12:33수정 2001.07.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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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사람들이 '옭세'라고 발음하는 오르세 미술관(Musee d' Orsay)에 가서야 이 대도시는 조금씩 명예회복을 하기 시작했다. 이 미술관이 당초 기차역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 입구에 들어서면 높다란 천정에서 떨어지는 자연 채광이 찾는 이를 반긴다.

유럽인들이 빛을 건축에 이용하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유럽의 문화사는 빛의 문화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스테인드 글라스로부터 한갖 개인집의 채광창까지 빛을 살리고 구부리고 이끄는 데 능하다.


오르세 미술관은 나폴레옹 3세 때인 1848년부터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의 그림과 조각들을 모아 놓았다. 루브르 박물관이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미술의 모든 것을 모아놓은 백화점이라면 오르세 미술관은 이 60-70년간의 회화를 주로 모아놓은 일품 요리점과 비슷하다.

물론 오르세에도 로댕이 만든 지옥의 문 같은 조각, 들라크르와의 호랑이 사냥 같은 사실주의 회화의 걸작이 있지만 역시 이곳에서의 압권은 인상파 화가들의 풍경화, 인물화이다. 특히 조그만 점의 집합으로 형상을 그려내는, 19세기 후반 점묘파 화가들의 그림이 친근하다.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정상적 수업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두 좋아할 그림들이다.

지식이 짧은 탓이겟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고호나 고갱 같은 몇몇의 작품을 빼고는, 있는 그대로를 담는 게 주 목적인 신문의 스틸 사진 정도로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엄청난 주제를 부둥켜 안고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닌 조그만 현실을 포착해 꼼꼼히 묘사함으로서 진지한 스타일이다. 세느 강에서의 뱃놀이, 야외에서의 파티, 프랑스의 산과 들을 화폭 위에 옮겨낸다. 그래도 좋다. 화가의 고민이 크고 무거워야, 그래서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송두리째 후벼 파야만 명작은 아니니까.

오르세의 인상파 그림들은 굳이 비유하자면 솔직담백하고 때로 개인의 조그만 감정들을 흥분하지 않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음악으로 치면 세미 클래식, 책으로 치면 개인의 연애담이나 르포 문학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상파는 사실 당시까지의 주류 미술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림이라 하면 예수와 그의 가족, 제자들의 모습 또는 성서 시대의 일화를 그리는 것이라는 도그마는 무려 18세기까지 존재했다. 그것도 휘황찬란하고 엄숙하게. 인간 본연의 모습, 휴머니즘의 표현에 주력한 르네상스의 그림들도 한계는 있었다. 귀부인의 모습을 그려본 모나리자는 결코 르네상스의 대표적 그림이 아니다. 천지창조, 예수와 마리아, 또는 천사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주류였다.


인상파는 반대로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고, 과거 그림의 일부 비과학적 휘황찬란함을 시정하고 색채의 정확한 분석과 전달에 힘썼으며, 결과적으로 사람 가까이 더 다가갔다.

오르세 미술관의 1층(그라운드 플로어)에서는 6번방 밀레, 7번방 쿠르베, 13번방과 14번방의 1870년 이전의 드가, 마네, 모네, 르느와르를 보면 될 것 같고 3층(upper level)에서는 30번방부터 40번방까지의 아무 인상파 화가들 그림만 봐도 황홀하다.

개인적으로는, 오르세에서 본 그림 중 19세기 후반부의 여인들 초상화가 가장 기억난다. 이 여성들은 보는 사람을 가르치려 하거나 신비한 체 하지 않는다. 그저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관람객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약간 도도하긴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야유회 같은 큰 풍경화 속에 잠깐 나타나는 엑스트라가 아니고 자기 얼굴로 독상(獨床)을 받을 차림 정도의 여자들이면 대체로 부자집 마나님이거나 먹물 먹은 여성, 하다못해 화가의 누이들이다. 세번째의 유형, 즉 화가의 친인척을 제외한 여성들은 대체로 부르주아지나 아직 돈이 좀 남아 있는 귀족의 부인, 처녀일 것이다. 화가에게 초상을 맡길 정도면 예술에 대한 이해도 있을 것이고.


문득 그림 속의 여인들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프랑스 대혁명 전야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밤의 파리를 주름잡은 살롱 마담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기꺼이 호화로운, 또는 점잖은 자기 집을 문인, 화가, 학자, 사상가, 혁명가, 정치인의 사교장으로 제공했다. 손님 치르기를 즐기되 다소 비천한 자와 성향이 과격한 자들도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 서울의 성북동이나 강남 사모님들과 달라 보인다.

머리 속에, 손 끝에 다소의 비범함을 갖고 있는 자라면 누구나 제법 괜찮은 사교장을 출입할 수 있는 사회 풍토가 혹 현대 프랑스의 숨은 동력은 아닐까. 프랑스의 현대 문화와 예술, 철학과 사상, 학문은 이 살롱에서의 숱한 이성적, 감성적 혼합 과정을 거쳐 발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결코 미술품을 통해 가르치려 하거나 신을 전도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는 이를 편하게 한다. 그리고 관람자에게 어느 정도 상상의 덧칠을 허용하는 점이 좋다.

오르세 얘기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 한 마디. 19세기 중반 자연주의 화가인 밀레의 그림 만종(晩鐘)을 기억하는지. 나는 오르세에서 만종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한때 나에게 서양화라는 것을 알려준 그 그림을 이제 원화로 보는구나 하는 감동이었다. 젊은 부부가 밭일을 마치고 저녁 어둠 속에 고개를 숙여 감사하는 그림이다.

1961년에 태어난 우리 세대에게 이 그림은 대단히 친숙하다. 이 그림은 흔히 말하는 이발소 그림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우리 세대의 헤어 스타일은 '이부가리', 아니면 상고머리였고 그 머리를 깎을라치면 만종은 어느 곳 어느 이발소에서나 볼 수 있었다. 러시아 작가 푸시킨의 시, '삶'과 함께.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어렵고 힘든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만종은 푸시킨의 시를 담은 목조 액자틀, 이발소의 삐걱대는 의자, 가끔은 귀 뒷머리를 째놓는 거친 면도 솜씨 같은 옛날 풍경들과 함께 떠오른다. 그때 이발사 아저씨들은 꼬마들의 머리를 감길 때 세탁비누로 세 번씩, 모근까지 상할 정도로 박박, 손톱으로 후벼파듯 감기곤 했다. 왜 그랬을까.

한편으로 나는 밀레의 만종을 보면서 이 그림이 참으로 기이한 변천을 거듭한데 대해 감정이 일렁였다. 여행을 위해 서양미술사 책을 곁눈질한 결과 밀레는 그때까지의 허구적 작풍에서 벗어나 사람 사는 세상의 있는 그대로를, 때로 고단한 모습까지를 그림으로써 가치가 있는 화가다.

그는 이런 그림을 그림으로써 세상은 영웅이나 성인, 장미빛이나 호사만 있는 게 아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로 치면 민중화의 초기적 형태다. 그러한 밀레의 그림이 건국 초기 한국에서는 푸시킨의 시와 접목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이렇게 고단한 것이니 우리 모두 만족하고 살자는 체제 순응의 훈도를 은연중 암시하고 있었다.

오르세에서 나오자 나와 처, 아이들은 다소 행복해졌다.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이해 가능한 눈 사치를 하고 난 직후다. 만복감 속에 살짝 올라오는 트림을 누르며 식당 문을 걸어 나설 때 행복하듯.

오르세에 반해 루브르는 미술의 역사 그 자체이자 대양(大洋)이다. 나에겐 이 대양을 설명할 능력이 없다. 미술 외적인 측면에서 루브르에 대한 소감 몇 마디 적자면,

첫째 루브르에 전시된 1만2천여 점의 미술품 중 핵심 상품은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 등 3점이다. 미술관 곳곳에 이 세 가지 그림과 조각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쪽지가 축소복사된 그림과 함께 붙어 있다. 나 같은, 가장 낮은 단계의 미술 소비자도 쉽게 찾을 수 있게.

왠지 롯데 백화점 본관과 분위기가 비슷한 루브르, 그중에서도 가장 찾기 쉬운 것은 사모트라케의 니케(승리의 여신상)조각상이다. 어디서 들어가든 바로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루브르를 보고 나서 이 여신상을 얘기하는 것은 혹 이러한 편리함 때문은 아닐까.

소문도 엄청나고 규모도 엄청난 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관광객'은 '음메 기죽어'를 내심 외치기 마련인데 니케 여신상은 그런 이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하나를 찾았으니 나머지도 찾을 수 있다 는 자신감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바로 모나리자의 위치를 알리는 화살표가 보인다.

둘째, 3점의 핵심 상품 중에서도 모나리자는 대표 상품이다. 모나리자 앞에는 항상 그녀의 숭배자들이 줄을 서 있다. 밀로의 비너스나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에 비해 두세 배는 많다. 사람들은 비너스나 승리의 여신의 경우 2-3미터에 이르는 몸 덩어리 전체를 볼 수 있음에도 가로 77센티미터 세로 63센티미터의 이 작은 그림을 더욱 좋아한다. 알 듯 말 듯한 미소 속에 보는 이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았기 때문일까.

모나리자는 그림이 신격화된 드문 사례다. 19세기 후반부터 그림엽서나 대중잡지의 표지로 가장 인기있는 그림이었고 이를 통해 더욱 보편화, 신비화 되기 시작했다. 2차 대전 당시 마릴린 몬로나 잉그릿드 버그만만큼은 아니더라도 미군들의 야전침대 머리맡에 자주 붙는 사진이었다.

이른바 핀업 걸 중 하나였다는 얘기다. 종전 후에는 많은 연합국 병사들이 단지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파리를 찾곤 했다는 후문이다. 조악한 나찌즘에 맞서 그들이 지키고자 한 문명과 예술의 상징물로서 머리 속에 각인돼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모나리자를 방문한 올해 4월 25일, 개인적으로 나는 예상치 못했던 호사를 누릴 수 있었고 그녀를 마음껏 '학대'할 수 있었다. 많은 글에서 그녀를 방문했던 호사가들이 모나리자 그림을 보기 위해 줄을 섰다가 겨우 10여초 보고 다음 사람에게 밀려났다고 읽었는데 우리 가족이 간 날은 5분에 걸쳐, 보고 또 봐도 누가 뭐라는 사람 없었다.

워낙 강한 선입견을 갖고 보아서인지 모나리자의 미소는 확실히 신비했다. 그녀가 검정과 갈색이 섞인 벨벳 옷을 걸치고 있다는 것은 원화를 자세히 뜯어보고 알게 된 소득이다. 왼쪽 입술 끝이 살짝 오른쪽보다 더 올라간 게 신비감을 더해 준다는 게 우리 가족의 20여분에 걸친 토론의 결론이었다.

모나리자는, 지난 겨울 마드리드에서 만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함께, 초등학교 5학년짜리 여자아이부터 41살의 보통 한국 남자까지, 우리 가족이 즐겁게 화제로 삼을 수 있었던 그림이다.

셋째 모나리자와 비너스, 니케의 여신보다 고대와 중세의 이 여성들을 담고 있는 루브르가 바로 프랑스의 국보 1호라는 점이다. 루브르는 엄밀히 말해 일개 박물관, 미술관이라기보다 세계 초일류의 문화상품들을 모아놓은 초대형 백화점이다. 세계 최고급 백화점이라는 런던의 헤롯 백화점이 없어진다한들 서글퍼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루브르가 없어진다면 얘기는 다르다.

물신주의적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지만, 루브르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소비'해도 닳지 않는 재화, 성(性)처럼 특별한 노력 없이 무한 재생산이 가능한 재화들을 가득 담고 있는 특이한 백화점이며 이러한 루브르를 갖고 있는 프랑스가 부러웠다.

프랑스 정부도 루브르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최근 유리 피라미드 통로의 신설 및 출입구 대폭 개선, 루브르 궁전 내에 있던 재무성 건물의 이전 및 전시 공간의 확대를 통해 소비자 만족의 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프랑스와 파리를 관광케 하는 유발 요인으로서 루브르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처사다.

우리 가족이 방문한 날은 입구에서 여론조사 용지를 나누어 주었는데 전에 방문한 적이 있느냐, 어느 루트를 통해 입장했느냐, 누구랑 함께 왔느냐, 무엇을 특히 보러 왔느냐,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 모나리자를 보았느냐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더냐고 시시콜콜하게 묻고 있었다. 나는 그날, 귀국하면 반드시 국립박물관이나 국립 현대미술관을 이런 관점에서 꼭 한번 관찰하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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