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파리에 대한 첫 인상은 그러나 고약했다. 파리 사람들이 '뻬리뻬리'라 부르는 외곽 순환도로를 어렵사리 통과해 한국인 민박집이 있는 지하철 12호선 종점부근에 당도했을 때 파리는 무례함으로 다가왔다.
좁은 재래 시장 길로 조심조심 차를 운전하는데 갑자기 앞에 개구리 주차해놓은 차 안에서 여자가 하나 튀어 나왔다. 불과 1미터 앞에서의 일이었다. 피할 길도 없는 폭 3미터쯤의 일방 통행 길에서 힘껏 급정거를 할 수밖에.
다행히 그 차의 문짝을 들이받는, 객지에서의 골치아픈 횡액은 면했지만 한 마디 쏘아붙이려 하자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제 갈길을 가버린다. 분노에 찬 시선으로 관찰하니 바로 이웃의 빵 가게에서 그날 저녁 먹을 바게트 빵을 사고 돌아가는 길인 것으로 보인다.
파리의 거리질서는 무질서에 가깝다. 횡단보도는 길을 건너는데 있어 보조장치,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시민이 아무 데서나 무단 횡단을 서슴지 않는다.
행인과 횡단보도는 별개의 존재다. 도대체 파리의 경찰은 무얼 하고 있는지. 경찰이 곳곳의 보도에 숨어 '기초질서 저해사범'을 일제 단속해, '발 달린 짐승'의 습관을 고쳐보려 한 한국 경찰의 '성실성'이 절로 그리워졌다.
근 10년 전의 일이었다. 전국적으로 5백만 명 정도가 5천원, 1만원씩 세금 아닌 세금을 낸 기억이 떠올랐다. 파리의 경찰은 가끔 박봉 타파를 위해 임금인상 시위도 한다고 읽었는데 그래서 바쁜 것일까.
조금만 머뭇거려도 추월과 빵빵거림은 기본인 파리의 거리. 좁은 골목길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차와 행인들. "행동은 나의 자유, 조심은 너의 의무"라는 파리장과 파리지엔느들의 상식에 절로 항복 선언이 튀어 나왔다. 도심에서도 밤이면 가볍게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는 게 파리의 운전자들이다.
"홍세화 선생도 고생깨나 했겠군."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 제목에 생각이 미치자 이 속에서 20여 년을 산 홍선생의 노고가 연상되었다.
그러나 파리는 무질서 속의 질서를 갖고 있다. 개구리 주차든, 노상 주차든 비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시민 모두 이를 묵인하고 향유하는 생활의 지혜를 갖고 있다.
상점 주인들은 자기 집 앞에 낯선 차가 불법 주차, 편법 주차하려 해도 별로 눈치를 주지 않는다. 자기 가게 앞에 낯선 차가 주차할라치면 당장 눈을 부라리며 쫓아내는 충직한 식당 주인은 파리에서 보기 어렵다. 없다.
숱한 시행착오와 경험 끝에, 남의 불법 주차를 눈감아 주는 게 언젠가 나에게도 이익이라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 같다. 우리 가족은 파리 방식의 주차와 한국 방식의 주차중 어느 것이 더 개인에게 이익이냐를 놓고 토론한 결과 4대 0으로 파리 방식을 지지했다.
그래도 파리의 카오스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하철은 울긋불긋한 스프레이 낙서로 가득 차 있고, 거리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만만치 않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색과 차림 또한 제각각이다. 인도, 중국계가 많은 런던의 인종색은 하양, 노랑, 검정의 3색이다. 파리의 그것은 대체로 흑백이다. 북아프리카 쪽의 흑인이 압도적이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이 인도와 신대륙에 전념하던 사이 프랑스는 지중해를 그들의 뒷마당 삼았다. 그리스인과 로마인, 투르크 인에 이어 지중해를 절반쯤 제패했다.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가 모두 프랑스 식민지였고 이집트도 프랑스의 양해를 얻고서야 영국령이 되었다.
수도의 외국인 인구 구성은 그 나라의 역사를 반영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이러한 흑백의 인구 구성과 전반적인 무질서는 선진국의 수도, 예술과 문화의 종주 도시 파리를 꿈꾸었던 우리 아이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들은 가끔씩 원인 제공자도 아닌 나에게 항의를 해댔다.
이 파리는 도대체 어떤 도시일까. 파리를 말하자면 왼쪽과 오른쪽을 빼놓을 수 없다. 지형적으로 파리를 나누면 파리는 강남 또는 세느 강 좌안과 강북 또는 세느강 우안으로 나뉜다. 세느강의 왼편에는 중세 때부터 종교와 사상, 문화와 학술의 요새들이 구축돼 왔다. 클루니 수도원, 생 제르맹 수도원, 파리 대학, 몽파르나스, 그리고 수많은 지성인들이 드나들던 카페들이 왼편에 있다. 파리의 왼쪽은 웬지 사색적이고 우울하고 깊이 있어 보인다.
반면 강의 오른편은 권력과 돈의 중심지였다. 부르봉 왕가의 궁정에 이어 현재도 대통령궁이 있고 상젤리제 거리의 수많은 상점, 라파이에트 백화점 같은 대형 쇼핑센터, 고급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파리의 오른 쪽은 밝고 활기차고 명쾌하다. 프랑스 군사력의 상징인 개선문은 당연히 오른쪽에 있다.
인구 900만의 세계적 메트로폴리스가 된 현재는 이같은 이분법적 구분이 100% 통하지 않는다. 수상 집무실이나 외무성 건물이 강의 왼편에 자리잡고, 오른편에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가 자리잡는 다소의 예외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오른쪽과 왼쪽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생활자세. '평균적인 프랑스 인들은 그의 마음을 왼쪽에 두고, 지갑을 오른쪽에 둔다'가 있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논다는 얘기다. 정신세계는 다소 좌익적, 진보적, 이상적으로 운영하고 물질세계는 우익적, 보수적, 현실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꼬집은 말 같다. 하기야 돈은 좌익적, 진보적, 이상적으로 쓰고 생각은 우익적 보수적, 현실적으로 하는 사람이 더 희귀하겠지만. 인간의 보편적 이중성을 일면 지적한 이 말은 파리에서 대단히 유효해보인다.
내 기억에서 이러한 파리의 이중성은 남의 나라에서 개고기를 먹는 것까지 견권적(犬權的) 차원에서 상관하는 행위, 그런 한편으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기 나라 고속 철도를 판촉하는가 하면, 아무 이유없이 강화도에 침략하고 문화재를 훔쳐간 나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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