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21돌을 지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올해는 내가 5월 18일을 제법 의미롭게 지낸 것 같다.
어제 오전에 나는 인근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아내에게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직장의 아내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이야 종종 있는 일이지만, 5월 18일에 5·18과 관련하는 메일을 보냈다는 것은 실로 뜻깊은 일일 것 같다.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5. 18의 아픔과 환희를 되새기며
000씨의 소설 손보는 일을 하다가 잠시 손을 놓고 텔레비전의 5.18 특집 방송을 보다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아서…문득 당신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군요.
오늘은 슬프고도 기쁜 날이에요.
5.18은 내 가슴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겁니다.
나는 내가 5.18을 기리며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민주화 투쟁 시절의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고, 그 노래를 다시 부르며 눈물 지을 수 있는 가슴을 지니고 사는 내가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요즘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다 나의 이런 가슴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나는 내 가슴을 믿어요. 쉰살이 훨씬 넘도록 내 가슴속에서 유지되고 있는 진실과 옳음에 대한 청순한 열망, 정의감과 의로운 분노, 그리고 많은 눈물…. 나는 그것들을 믿고 스스로 사랑해요. 내가 일상 생활에서 행위하는 그 모든 작은 '사랑'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면서 나의 그런 마음―기질로부터 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나의 이런 마음을 올곧게 유지하면서 살고 싶어요. 내가 궁벽한 시골 구석에서나마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의로운 운동들에 계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안티조선' 운동은 이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역사적 의의가 참으로 크고도 명백해요.
현실적으로 성과가 있을지, 과연 어떤 형태가 성공일지 현재로서는 불확실하지만 운동의 목표가 너무도 분명하고 엄정하므로, 이 운동의 생명력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어요. 그리하여 먼 훗날에는 우리 시대의 매우 의미로운 운동의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확신해요.
나는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의로운 사람'들이 참으로 사랑스러워요. 그들의 '의로운 기운'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발전을 해왔고, 공동선의 가치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오늘 쌓아올리고 있는 참 가치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정의의 탑'은 결코 덧없이 허물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우리 정신 운동사에 찬연히 빛나는 탑이 될 겁니다.
5·18민주화 운동 기념일 21돌을 지내며 아직도 마르지 않은 내 눈물을 스스로 확인하고 되새기는 일을 제법 한 것 같군요. 컴퓨터라는 이 문명의 이기 덕에….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는 덕이 정말로 확실하다 싶고….
그럼, 오늘은 이만….
그리고 나는 오후 5시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차를 가지고 아내의 학교 근처로 갔다. 아내에게 운동화를 건네주고, 아내와 함께 백화산 등산을 했다. 안개에 덮인 산 속의 색다른 풍경에 반하며 우리는 광주 망월동의 풍경을 상상했다.
5·18에 관한 이야기만을 했다. 아내는 내 메일 덕분에 4학년 아이들에게 5·18에 관한 얘기를 들려줄 수 있었노라며 내게 고마워했다. 그리고 충청도 태안 사람이면서 광주 사람 못지않게 5·18을 사랑하며 사는 내가 존경스럽다고 했다. 나는 내게 이런 가슴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저녁에 우리 가족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일미사에 참예했다. 그런데 나는 미사를 지내면서 몹시도 가슴이 아팠다. 깜빡 정신을 놓은 탓에 5·18 민주 영령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가슴아팠다.
낮에 아내에게 5·18을 기리는 메일을 보내고 저녁 무렵 함께 등산하면서 5·18 관련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으면서도, 그리고 낮에 텔레비전에서 본 특집 방송 장면들과 안티조선 '우리 모두' 사이트에서 본 노혜경 씨의 글에 대한 기억이 내 뇌리에 명료한 상황에서도 왜 미사 봉헌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미사 시간 내내 광주의 민주 영령들에게 너무도 죄스러웠고, 나의 우둔한 무심이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나이 탓인가 싶기도 했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광주의 그날이 점점 더 멀어지고 나도 나이를 먹어가므로, 내 마음속에서도 5·18의 의미가 알게 모르게 점점 약화되는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며 나는 잠시 지난 시절들을 추억했다. 과거 5공과 6공 시절을 살아오면서는 광주의 영령들을 위해 여러 번 미사 봉헌도 했었음을 상기했다. 그리고 5·17이나 5·18에 미사를 지내게 되면, 그날이 주일일 경우는 물론이고 평일에도 '신자들의 기도 (지금은 보편지향기도)'시간에 참으로 뜨겁고 절절하게 기도를 바치곤 했었음을 기억했다.
지난날들을 돌아보고 오늘을 뜨겁게 반성하면서 나는 내년부터는 해마다 5월 18일에는 꼭꼭 광주의 민주 영령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올해는 5월 마지막 날에 5월의 영령들을 기리는 미사 봉헌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미사 후에 나와 아내는 성가 연습을 했다. 이날의 성가 연습에는 올해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오르간 반주를 해주었다. 딸아이는 평일 미사 반주만을 담당하는데, 성가대 반주자인 자매가 결석을 한 탓이었다. 그런데 그 바람에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오르간 앞에 앉은 딸아이가 연습 시작 기도도 하기 전에 오르간 소리를 내는데, 그 음이 뜻밖에도 5·18 관련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 아이가 아빠로부터 그 노래를 배운 때는 이미 1년 전이었다. 성가 연습 시작 전에 누구의 입에서도 5·18에 관한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올해 겨우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악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 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내 입에서 자동적으로 노래가 나갔다.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올해 마흔살인 남성 단원이었다. 일찍이 나로부터 그 노래를 귀가 아프게 들어 부분적으로나마 기억을 하고 있는 단원도 두 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것도 성당 안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 노래를 모르는 단원들도 가만히 경청해 주었다.
나는 일순 눈물이 핑 돌았다. 제대 뒤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예수님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십자가상의 예수님이 미소를 지으시는 것도 같았다.
나는 눈물 많은 내 가슴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위로받는 나를 새롭게 느꼈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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