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7월 8일 아침 내 개인 홈의 '자유게시판'에 <안타까움>이라는 익명으로 글을 올려놓으신 분의 그 소견에 대해 답변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내 개인 홈에만 올려놓기가 좀 아깝고 여러분께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여기에도 올립니다. 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안타까움을 느낍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려진 안타까움 님 글의 전문은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혹 궁금한 분이 계시면 제 홈을 한번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신지요.
어느 분이신지 내 홈을 찾아 주시고, '자유게시판'에 좋은 글까지 올려 주시어 참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의 적극적인 '안티조선' 운동 참여을 보며 내 건강 걱정까지 해 주시고 안타까움을 표해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안타까움 님의 그 안타까움에 대해서는 제가 더욱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안타까움 님의 그것은, 어쩌면 너무 단순하고 협소한 시야가 아니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점에 관해 꼭 필요한 몇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유석춘 군 보게나!」라는 글을 보시고 내가 몹시 분개한 마음으로, 흥분 상태 속에서 그 글을 쓰신 줄로 느끼신 것 같습니다만, 그건 오해입니다. 유석춘이라는 친구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경멸 따위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런 것은 어느 정도 기본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로운 기분으로 그 글을 썼습니다.
유석춘이라는 친구의 그 글이 지니고 있는 천박성과 유치함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스스로 웃음을 머금으며, 읽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을 정도로, 글을 해학적으로 쓸 수가 있었던 겁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원색적인 조롱과 야유 따위를 일종의 해학과 버무렸지만….
그까짓 일에 나는 정도 이상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런 류의 일들은 사실 오래 전부터 수없이 겪으며 살아왔고, 너무도 일상적인 것이니까요.
이제 50여 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내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배꼽 아프고 허리 꼬이는 세월이었는지 아십니까? 얼마나 정도(正道)와 상식이 비비꼬이고, 요절 복통을 강요하는 가치 전도의 세월이었는지 아십니까?
혹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작가랍시고 내 소설 창작만을 고집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지역에서나마 사회공동선에 일조하기 위해 나름껏 열심히 몸으로 뛰며 살았습니다.
과거 지역잡지 <갯마을>의 편집주간으로, 지역신문 <새너울>의 논설주간으로 일하면서, 그리고 대선 때마다 <공정선거감시단>의 상임의장으로 활동하고, <가톨릭농민회> 분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실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 내가 유석춘의 그런 글 하나에 너무 분노한 나머지 증오심에 받혀서 흥분 상태로 글을 쓸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이상 유석춘의 그런 글을 보고 그냥 모른척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안타까움 님께서는 다른 이들에게는 <조선일보>를 보지 말라고 하면서 나 자신은 열심히 <조선일보>를 읽는다는 식의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조선일보>를 구독하시는 것으로 알고 계신 것 같은데, 그것도 오해입니다. 나는 <조선일보>를 구독하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구독을 해 왔던 <동아일보>도 최근에 구독을 중지했습니다.
'신문 개혁'의 중대한 명제 앞에서 <조선일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족벌 신문의 태생적 한계를 그대로 안고 있는) 동아일보에 대한 '구독 중지의 배경과 사유'를 정리한 글도 이 게시판 안에 게시되어 있습니다만….
구독은 하지 않더라도 그 신문들의 기사며 논조며 지면에 오르는 논객들의 글은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면 자동적으로 해결이 되니까요. 그 신문들을 하나하나 불러볼 필요도 없이 '안티조선' 운동 사이트인 <우리모두>와 이런저런 사이트에 들어가면 금방 알 수가 있지요.
안타까움 님께서는 내가 <조선일보>를 몹시 미워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조선일보>와 무슨 개인적인 원한이 있느냐는 안타까움님의 말씀에서 나는 실소를 머금으면서도 아득한 절망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나는 <조선일보>를 증오하고 혐오하고 경멸합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조선일보> 로부터 안게 된 오뇌와 비애와 절망이 참으로 크고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저 5공 시절부터 <조선일보>에 대해 불러오고 있는 '개똥신문'이라는 나만의 호칭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에 대한 내 관점과 시각은 여러 개의 글로 정리되어서 내 홈의 '안티조선' 방과 이 '자유게시판' 안에도 게시가 되어 있습니다만, 나는 여전히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낍니다. 대체적인 기술이고 부분적인 정리여서 충족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불원간에 큰 작업을 하나 해 볼 생각입니다. 내가 왜 <조선일보>를 거부하고 반대하는지, 우리가 왜 족벌 언론을 타파하고 '신문 개혁'을 이루어야 하는지―그것의 대의와 절대적인 당위성를 총체적으로 세밀하게 내 나름껏 정리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조선일보>의 역사며, 생리와 속성이며, <조선일보>가 언론의 사명을 저버리면서 어떻게 '언론기업'으로 성장해 왔는지도 면밀하게 소개를 해야겠지요.
우리는 참으로 '신문 권력'의 엄청난 폐해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의 가치관도 사회공동선도 성립시킬 수 없고, 절대로 민족 통일의 길도 열어갈 수 없습니다.
안타까움 님도 물론 그러시겠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안티조선' 운동 참여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작가로서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오해들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작가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이런 운동을 합니다. 작가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당대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눈을 감고서야 어떻게 작가일 수 있겠습니까? 아예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옳은 작가이기는 어렵겠지요.
안타까움 님께서는 내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너르고 큰 사랑으로 <조선일보>을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조선일보>를 미워함이 천주교 신자로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사랑'을 훼손하는 것으로 파악히시는 듯싶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오해입니다. 내가 맹렬히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는 이 적극성과 열정은 사실 나의 지고 지순한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삶에 대한 희구와 소망 때문입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세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것은 가능한 것이지요.
이런 일을 하면서도 나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상기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의미와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도 많은 고뇌를 합니다.
내 개인적인 차원의 일에 있어서는 나는 무슨 일에서나 많이 인내하고 양보하고 자제하며 삽니다. 손해도 많이 보고, 이렇게 저렇게 희생도 많이 하며 삽니다.
그렇지만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의 일에 있어서는, 참고 양보하고 속기만 하고 살아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런 닫히거나 막힌 상태로, 소극적인 상태로 유유자적 살아가는 것이 '사랑'의 실천적인 삶일 리는 만무합니다.
안타까움 님, 내 건강을 걱정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런 일 정도에 건강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해칠 정도로 격렬하지도, 격정적이지도 않습니다.
우선은 건강이 중요함을 잘 압니다. 그렇지요. 건강해야지요. 그래야 이런 일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줄기차게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마침내 좋은 결과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타까움 님, 나는 어언 50대 중반에 이른 나이이면서도 여전히 청년 시절에 가졌던 나 자신에 대한 의문 하나를 지금도 가슴에 품고 삽니다. 나는 왜 이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이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지도 않는 일을 가지고 잠을 못이루며 고뇌하고, 개선과 극복의 명제를 향해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생각하면 나의 그런 이상한 속성 때문에 참 힘들게 살아온 세월입니다. 지금도 간혹 나 자신이 너무 의아스럽고 측은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그런 속성에 대해 스스로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하며 삽니다. 내게 이런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나의 이것이 긍극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임을 이 세상에서, 아니면 저 세상에서라도 마침내 스스로 확인하고 구현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얘기입니다만, 기존의 문학 장르에 속할 수 없는 내 요즘의 이런 글들은 내 홈뿐만 아니라 '안티조선' 운동 사이트인 <우리모두>에는 물론이고 여러 유명 사이트들에 속속 계시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우리모두> <작가 네트> <한국소설가협회> <태안군청> 홈 등에만 올렸는데, 어떤 분들이 여기저기 유명 사이트들에 내 글을 퍼다가 올려놓는 바람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연유로 해서 (나도 <창비>와 <한국일보 정보동호회> 등등 쪽으로 걸음을 하게 되어) 마침내는 내 스스로 글을 올리게 되었지요. '안티조선' 운동을 좀더 적극적으로,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한 방책으로….
비교적 조회수가 많은 편입니다. 추천도 많이 받습니다. 간혹 내 글에 대해 비난이나 비판을 하는 네티즌을 만나기도 합니다만 (그건 그것 대로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중립적인 분위기가 유지되는 사이트에서도 비교적 호평과 환영을 받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티조선'이라는 이름의 이 사회적 국가적 명제가 확실히 우리 사회에서 공감의 진폭을 덩두렷이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대단히 중요한 일로 생각합니다.
컴 앞에 처음 앉았을 때는 간단히 가볍게 몇마디만 하려던 것이 막상 쓰다보니 길어졌군요. 이런 글을 쓰게 해 주신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 님께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내 홈을 찾아주신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하고, 이 긴 글을 읽어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늘 편안하시고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2001년 7월 8일·주일, 좋은 '봉사'를 하나 하고 집에 돌아와서)
충남 태안의 소설가 지요하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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