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선생, 안녕하신지요.
당신과 이런 식으로 대면을 한다는 게 참 어색하게 느껴지고, 당신에게 안녕하냐고 묻는다는 것도 참 얄궂게 느껴지는구려.
문단 등단은 당신이 나보다 몇 년 빨랐지만 같은 48년생 동갑이라서 나는 당신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한편으로 너무도 격심한 작가 위상의 차이 때문에, 농촌의 한적한 풀밭 위를 나는 반딧불이 격인 나로서는 하늘의 태양 같은 당신을 바로 보기도 실은 어려웠었소.
당신이 기억할는지는 모르지만 옛날에 우리가 한번 만난 적도 있지요. 1986년 여름 서울 어딘가의 <마당>이라는 잡지사에서였지요. 내가 소설 원고를 하나 맡기는 일로 거길 갔더랬는데, 먼저 와 있던 당신이 나를 알아보고 일어서서 내게 악수를 청하더군요.
그때까지 일면식도 없던 나를 금방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청하는 당신의 태도에 나는 감동을 받았지요. 그때는 정말 당신이 참 고마웠다오.
그런데 아무래도 당신은 당신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몸피가 너무 커져버린 것 같소. 갖가지 저서들의 판매 총량이 무려 1천만권이 넘을 정도로 작가적 위상이 태산같이 커져버렸으니, 그것의 그림자도 그만큼 크고 넓어져서, 당신은 태산의 산마루에 걸려 있는 구름 따위나 볼 수 있지 그 아래 숲이나 골짜기의 그늘 속은 잘 보지 못하는 것 같소.
나는 오늘 당신의 작품을 직조하는 능력과 당신의 양심이나 인격을 형성하는 품성 사이에 도도하게 서려 있는 심한 불균형과 이질성, 또는 양면성을 뼈아프게 목도하는 심정이오.
사람의 원초적 본성이나 마음 바탕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기교만 가지고도 아주 감미롭고 재미로운 미문의 작품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확인하는 것만 같소.
오늘 당신은 너무 무지하고 분별력이 없는 것 같소. 당신이 <조선일보> 등 족벌 신문권력을 위해 용감히 총대를 멘 것 때문에 연일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이 시끄러운 것을 보니 당신이 확실히 쎄긴 쎈 사람이오.
당신의 지명도와 영향력이 참으로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가만히 앉아서도 실감할 수 있으니…. 그런데 당신은 그런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요? 당신의 전투적인 행동이 어떤 파급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미리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나요?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대작가답게 처신을 무겁게 하지 못한 죄가 참으로 크오. 그 경망하고 경솔한 태도는 정녕 대작가다운 풍모가 아니오. 어쩌면 당신은 1천만 권의 판매 저서―그 태산을 깔고 앉은 여유 낙락한 자기 도취에 빠져서 당신의 한마디로 모든 분란이 일시에 바로잡히고 판가름날 것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르겠소.
일시적으로 찧고 까불고 대드는 무리들이야 있겠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이고, 내가 깔고 앉은 태산은 요지부동일 거라는―'이문열교'의 교주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오.
만일 당신이 결코 경천동지할 정도는 아닐, 태산과 노니는 장대한 구름 속으로 감히 날아올 흙먼지 정도는 예상을 했다면, 그리하여 각오를 하고 용감히 총대를 멘 것이라면 그것은 너무도 무모한 전투적인 행동이오. 당신은 누가 뭐래도 선봉에 서서 전투에 나선 것이오.
당신은 오늘(7.9) <동아일보>의 '시론'에서 "특히 안티운동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공격성과 파괴성" 운운하고 있지만, 나는 당신의 그 말을 고스란히 당신에게 되돌려 주고 싶소. 나는 당신에게서 도도한 오만과 아집의 살기를 느끼고 저돌적인 공격성과 파괴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소.
일부 네티즌들의 거칠고 과격한 언사들을 보고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가 본데, 점잖은 척하는 문면 속에 내재한 당신의 말꼬챙이들은 더욱 지능적이고 공격적인 언어 폭력이 아닐까요? 당신이 어깨에 강건하게 메고 있는 그 총대가, 이번에는 어떤 요새에서 어디를 향해 어떤 식으로 포성을 터뜨릴지 모를 분기탱천한 선무당의 뭣 같은 그 포신이 왜 이리 우스워지는지 모르겠소.
이문열 씨. 당신은 '형식논리'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구려. '신문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논조를 일러 "형식 논리만 갖춰지면 못할 짓이 없다"고 했지요? 나는 당신의 그런 말에서 뼈저리도록 '적반하장'을 느낍니다. 당신의 글에서 '형식 논리' 이상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당신은 당신이 지니고 있는 그 거대한 기득권을 최대한으로 누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당신들은 '언론탄압'을 강변하면서도 전 신문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조중동의 장대한 지면을 한손에 독점적으로 움켜쥐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자행해 댑니다. 당신들의 공격은 확실히 경천동지할 정도의 위력과 효과가 있습니다.
200만 명 이상의 독자들에게 일시에 떠안겨지는 그 엄청난 효력에 비한다면 신문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웹사이트에서 비분강개하고 아우성을 쳐봐야 그건 새발의 피입니다. 나도 요즘 들어 제법 열심히 인터넷을 활용합니다만, 여러 개 사이트의 조회수를 다 합해 봐야 당신이 지닌 기득권 위력의 백만분의 일도 안됩니다. 게다가 내가 당신 집에 총 한방을 쏘아본다 해도 당신이 아예 눈을 감고 있으면 표도 나지 않습니다.
나도 명색이 글쟁이고 당신처럼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이어서 은근히 동아일보에서 당신의 글에 대한 반론을 한번 써볼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는 뚱딴지 같은 꿈을 꾸어보기도 합니다만 글쎄요, 과연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날까요?
그러니 싸움이 되겠습니까? 적어도 기득권에 기반하는 물리력으로는 당신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우세합니다. 어쩌면 일방적인 형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더 더욱 기고만장 오만무례해져서 그처럼 신문을 연일 사보와 한나라당 당보로 만들며, 당신 같은 문화 공격수들을 내세워 별 희한한 포성을 마구 터뜨리며 '작반하장'을 일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명명백백한 사실은, 당신들의 그런 무분별한 공격은 한낱 발악이요, 앙탈일 뿐입니다. 조중동의 기득권의 위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연일 경천동지하게 만든 그 부질없는 과잉적인 노력으로 말미암아 당신들은 마침내 경천동지의 화를 톡톡이 치르고 말 것입니다. 왜냐, 당신들의 그런 무모한 짓거리로 수많은 생령들이 눈을 뜨고 일어나 진실을 바로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순리이고 역사 발전의 법칙이니까요.
동갑네 이문열 씨. 당신과 똑같이 50여 세를 살고 있는 내가 일전에는 연세대 교수라는 유석춘이에게서 악령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오늘은 당신에게서 '홍위병' 소리까지 듣는군요. 참 재미있습니다. 아주 진귀한 경험일 듯싶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내가 내 양심 때문에 악령으로 규정되고 말았으니 이거 고백성사라도 봐야 하는 건지 원….
당신의 '홍위병론'을 듣고 보니 당신의 능력에 우선은 감탄을 하게 됩니다. 확실히 천재적인 작가답게 기발한 기지를 발휘한 듯싶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연상'이라는 말로 포장한 그 기교적 수사는 한낱 억지이며 거짓임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나는 우선 연령적으로 홍위병에 대해서 잘 압니다. 홍위병이 발호했던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정황들을 종합해서 보면 당신의 그 연상과 비유는 종합적으로 너무도 아귀가 맞지 않습니다. 상을 차려야 할 자리에 똥을 싸놓은 형국인 것입니다.
당신이 그걸 몰랐을까요? 자세한 사항을 모르고 단순히 연상만을 가지고 당신이 그런 조악한 비유법을 써먹었다면 당신은 작가답지 못하고 너무 무식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굳이 기득권의 위세로 적반하장을 선점적으로 행위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썼다면 당신은 너무 교활하고 음험합니다. 당신 말에 속아 넘어가 줄 순진 무구한 독자층을 또 한번 얼렁뚱땅 올가미로 묶으러 드는 소졸한 수작일 뿐일 테니까요.
이문열 씨. 나는 요즘 당신이 너무 측은하고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당신이 총대를 메고 선봉에 나서야 할 만큼 조중동 족벌 신문들의 권력 체제와 탈세 구조가 그리도 소중한 것입니까? 신문 비리의 온상을 수호해내는 일이 그리도 중요한 당신의 사명입니까?
당신들이 아무리 별의별 해괴한 형식 논리를 다 끌어댄다 해도, '신문 개혁'의 그 본질―지엄한 명제는 땅에 파묻히지도 않고 허공에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우리 정직합시다. 뱃속에 꽉 찬 똥을 어서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쏟아내는 일이 중요하지, 화장실엔 아침에 가야 한다느니, 왜 애써 참았다가 다 저녁때 가느냐는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장실의 조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더구나, 당신 식으로 계속 배변 조건을 참고 살자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오래 아픈 배를 움켜쥐고 살았습니다. 늘 옴치근의 고통을 너무 오래 끌어안고 엉금엉금 설설 기며 살았습니다. 아픈 똥배 때문에 온 사지가 뒤틀려서 주변의 사물을 제대로 보고 챙기지도 못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똥구멍의 괄약근을 꽉 처맨 채로 오래 뱃속에 담고 살았던 암적인 배설물을 이제는 확 시원하게 쏟아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의 건강이 좋아집니다.
더 이상 총대를 메고 함부로 나서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룩한 천만 권의 책이 쌓인 그 태산 위에서 신선같이 그냥 초연하게 유유자적하며 사십시오. 그래도 굳이 또 나서겠다면, 내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묻겠소.
당신들이 한껏 구가하고 있는 오늘의 광대한 언론 자유의 터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고 고초를 겪을 때, 그렇게 온몸으로 언론 자유를 갈구하며 투쟁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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