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운동의 본질에 대하여

빛누리 후배님에게 띄우는 글

등록 2001.07.22 07:53수정 2001.07.2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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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누리 후배님.
별고 없이 잘 지내리라고 믿소.

잘 아시겠지만, 나는 여전히 '언론 개혁'을 열망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소. 언론 개혁이라는 명제와 맞물려 있는 우리네 삶의 '참 가치관'과 '민족 정기'를 확립하려는 일에 조그맣게나마 일조를 하려다보니, 내 나이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열정이 내 등을 힘껏 떠밀고 가는 듯싶소.

요즘 참으로 글쓰는 일을 많이 했소. 주변에서는 소설가가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라는 시선으로 나를 보기도 합니다만, 나는 요즘의 일에 바치는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고, 시간을 아주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쓰는 일보다도, 지금의 '언론 개혁 관련글'들을 쓰는 일이 더 중요하고 의미롭다고 보는 거지요.

언론 개혁이 단순히 족벌 신문들의 권력 체제와 비리 구조를 혁파하고 사주로부터 '편집권'을 독립시키는 것 등으로만 마무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시대의 총체적인 참 가치관과 민족 정기를 확립할 수 있는 터전을 닦는 일이라는 인식에 기반해 있기에,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글을 쓰고 싶고, 쓸 수 있을 것 같소.

그러나 조금은 무리를 했던 듯싶소. 몸이 극도로 피로하고, 뭘 잘못 먹었는지 피부에 두드러기 같은 것도 생기고 목까지 쉬어서 오늘은 아무일도 하지 않고 푹 쉬려고 하였더니, 빛누리 후배가 그것을 허용해 주지 않는구려.

당신이 어제 태안군청 홈페이지 '횡설수설' 방에 올려놓은 글들을 잘 읽었소. 먼저 '퍼온 글'인 '그들은 왜 피학살자들을 부관참시했나'라는 글의 내용은 나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오.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5·16 쿠데타의 주역들이 6·25사변 직전 김창룡과 함께 '보도연맹' 등 민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하고 그 증거까지 거의 인멸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듣고 있었고, 최근 <한겨레21>의 한홍구 선생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었소. 5·16 세력의 증거 인멸 행위를 일컬어 '부관참시'라고 표현한 당신의 말은 적절한 듯싶소.


그리고 우리의 언론 개혁 운동이 성공을 거둔다면, 아직까지는 많은 부분이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그러나 오늘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그 '과거사'들이 '조중동'의 지면에도 오르고 더욱 큰 논의의 광장을 통해 국민적 관심의 표면으로 떠오를 수 있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당신의 지적도 적절한 희망적 시각으로 느껴졌소.

그런데 그 글 밑에 달아놓은 글이 제목부터 '지요하 선배님께-안티조선문제 제기'라고 되어 있어서 나는 적이 긴장한 상태로 그 글을 읽지 않을 수 없었소.


"오늘 저는 매우 충격적인 경험을 하였습니다. '안티조선일보'의 사이트에는 아직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오늘 제가 가본 곳은 '안티조선일보 운동'에 대한 '안티운동'을 하는 어느 좀 외로운 듯이 보이는 사이트에 수록된 방대한 자료들이었습니다."

이런 말로 시작된 당신의 글을 읽고 보니, 당신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소.

당신이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당신 논지의 중심은 아직 '안티조선'에 대한 유보적 태도, 또는 중립을 표명하는 것으로 귀착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나는 조금은 마음을 놓으면서도, 이 기회에 당신의 그런 논지며 당신이 소개한 그 '안티조선운동에 대한 안티운동' 사이트에 들어 있다는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방대한 자료들과 관련하여 글 하나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소. 그리고 이 일을 도저히 뒤로 미룰 수 없어서 불편한 몸으로 이렇게 컴 앞에 앉아 있는 거요.

빛누리 후배.

당신의 그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 나에게는 조금도 충격적인 일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우선 말해 두겠소. 당신은 안티조선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내가 좀더 확실하고 과학적인 정보에 기반하지 않고 단편적이고 편협된 지식에만 의존해 있지는 않은가-그럴 수도 있는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새로운 자기 점검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지만, 그 점에 대해서도 절대로 아무 염려도 하지 않기를 우선 부탁해 두고 싶소.

당신에게 충격적인 경험을 안겨 준 그 사이트의 실체는 나도 이미 접해 보았소. <창비> 사이트의 '독자 마당'에 갔더니 '안티조선운동 붕괴 임박'이라는 꽤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이 올라 있길래 열어보았더니, 그 사이트의 실체와 주소를 알려 주는 것이었소. 당신의 표현 대로 정말로 방대한 자료가 담겨 있더군요.

그뿐이 아니요. <조선일보>의 문화부 이형석 기자가 내게 참으로 방대한 메일을 보내 주어서, 그 지극 정성이 담긴 노고에 나도 조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소.

나는 처음부터 조선일보를 무조건적으로 '친일신문'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소. 일제 시대의 조선일보가 오로지 전적으로 '친일'만을 했다고는 보지 않았다는 얘기요.

그러나, 전적으로 친일신문은 아니었다고 해서 친일-민족 배반 행위들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닌 것이요. 또한 조선일보가 전적으로 친일신문은 아니었다고해서 상당수의 노골적인 친일 행위들이 가려지고 무시되거나 분식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보오.

나는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선구적 문인들에 대해 내 나름껏 공부를 했소. 작품들의 내용과 성격, 그 작품들이 발표된 지면, 그 작품들이 씌여지고 발표되던 시기의 시대적 상황 등에 대해서도 내 나름껏 면밀한 고찰을 해 보았는 바, 이것은 작가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며 미덕이기도 할 것이오.

그러다보니 나는 일제시대를 살아 온 우리말 신문들의 존재 가치며 민족에게 기여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면밀한 고찰을 해 볼 수가 있었소. 일제 시대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점들-그 긍정적인 면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요.

더불어 그 신문들의 상당수의 노골적인 친일 행위, 또는 친일 표현들은 그 시대 상황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궁여지책일 수 있는 성격도 있다는 점까지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요.

그런데,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그 사이트에서 접하고 또 빛누리 당신이 내게 소개한 그 방대한 '자료'들을 보면서 내가 우선적으로 느낀 것은 안쓰러움과 측은함이었소. 민망함을 느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도 같소.

마치 몸의 앞쪽은 보기 괜찮고 뒤쪽은 등창에다가 욕창으로 범벅이 된 사람이 굳이 홀라당 발가벗고 서서 등은 벽에다 붙이고 사람들을 향해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왠지 그런 형국을 연상하며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소.

조선일보 사람들의 상당한 노고로 만들어진 듯싶은 그 사이트의 방대한 자료들은 사실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닐까요? 그것들은 일제 때 조선일보를 존재할 수 있게 했던 또 하나의 축(軸)이 아니었을까요? 일련의 친일 행위들이 (그 정도와 심각성은 논외로 치고) 일제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또 하나의 축이었다면, 우리땅 우리말 신문으로서의 민족에 대한 기여도 역시 조선일보를 살 수 있게 한 또 한가지 축이었다는 것이죠.

참으로 당연지사인 그것이 어째서 그렇게 자랑스러운 것일까요? 설령 자랑스러운 것일지라도, 그것으로 친일 관련 부분을 그토록 철저히 덮어버리고 호도할 수 있는 것일까요?

빛누리 당신은 조선일보 옹호 사이트의 그 방대한 자료들과 비교하면서 <한겨레>의 '심층해부 언론권력'에서 제시된 조선일보의 친일 행위들을 일러 "짚더미 속에서 찾아낸 바늘"이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당신이 한겨레의 그 보도를 유심히 보았는지 의문입니다. 그동안 <민족문제연구소> <월간 말> <한겨레> 등에서 제시되고 보도된 조선일보의 친일 행위들은 절대로 적지도 작지도 않은 것이며, 침소봉대한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조선일보가 매년 1월 1일치 1면마다 일왕 부부 사진과 찬양 기사를 싣고, 이봉창 의사를 '범인'으로 지칭하면서 '천황 폐하 별무 이상'을 특보로 전하고, 일제의 중국 침략 때는 '황군 격려' 성금을 거두고, '친일 언론보국 서약'을 하고, 신문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놓고, '지원병 제도는 반도통치의 신기원'이라고 하면서 조선인 청년들에게 중국 침략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가도록 독려하고, 정신대를 선전하면서 군수 물자를 헌납하고, 사고(社告)와 사설과 갖가지 기사로 일제에 최대한 아부하고 봉사하고 협력한 그 모든 친일 부역 행위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우리땅 우리말 신문으로서의 민족에 대한 기여도를 상쇄하거나 덮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지요.

당신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 중의 하나인 1945년 해방 후 조선일보가 복간되었을 때 김구 선생이 조선일보에 친필 휘호를 써준 사실도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걸 그렇게 내세우다 보면 자칫 김구 선생을 욕보이는 것일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줄로 압니다.

빛누리 후배님.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조선일보의 일제 때의 친일 부역과 우리땅 우리말 신문으로서의 민족에 대한 기여도를 서로 저울질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들의 질량을 따지는 일은 정말로 무의미한 일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일제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조선일보의 총체적인 모습입니다. 바로 그 총체적인-너무도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안티조선 운동이 일어났고, 지금 이 시각에도 언론 개혁 운동이 맹렬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이니까요.

나는 조선일보가 스스로 '민족지'임을 강변하지만 않았어도 조선일보 문제가 오늘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선일보가 스스로 민족지임을 내세울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가지 사항이 선행되었거나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친일 행위에 대한 고백과 참회가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지요. 방대한 자료 사이트를 마련할 만큼 우리땅 우리말 신문으로서의 민족에 대한 기여도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일련의 크고도 심각한 친일 행위들이 영구적으로 감추어지거나 분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닐진대, 조선일보는 마땅히 소유 구조의 한계를 안고서라도 참회 의식을 치렸어야 한다고 보는 거지요.

어떤 사람이 몸 어딘가에 분명히 성형 수술로도 고칠 수 없는 보기 흉한 흉터가 있는데, 그것에 화장품을 덧칠하고 좋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그 흉터가 없어집니까? 일시적으로는 가려지고 보이지 않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떳떳한 일도 아니고, 치부를 더욱 크게 키우는 일일 뿐이지요.

또 종교 얘기를 끌어들여서 미안합니다만, 내가 엊그제 인터넷에 올린 '반성과 참회가 없는 나라'라는 글에서 2000년 역사의 가톨릭 교회가 교회의 모든 역사적 과오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참회한 것에 관한 얘기를 했던 것도, 자신의 잘못이나 치부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과 참회가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가를 설파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어떻게 보면 가톨릭 교회의 2000년 역사와 견주어 볼 때 몇가지 그 역사적 과오들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일이지요. 264명의 역대 교황 중에서 사후에 성인품(聖人品)에 오른 교황이 75명에 이르는데 반에 성직을 더럽힌 타락 교황은 4명에 불과한 그 단순 수치만을 놓고 보면, 가톨릭교회가 세상의 평화와 정화에 기여한 공적만을 마냥 내세우며 나아갈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과오들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여러 가지를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만 2차 대전중 나치에 대한 교회의 묵인은 지난해의 그 참회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알았지요.

이야기가 잠시 곁길로 나갔습니다만, 나는 우리 나라의 족벌 신문들이 민족에 대한 기여도 속에 엄밀하게 자리잡혀 있는 일제 때의 그 친일 행위들을 민족 앞에 스스로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더라면 민족지로서의 기반이 확실하게 잡혔을 수도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민족지로서의 또 하나의 요건은 바로 '정론지'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정론지의 요건이나 기준을 세세히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해방 이후에 친미 사대주의와 친독재의 길로 달려온 조선일보가 오래도록 정론지를 강변해 온 사실입니다. 이미 민족지로서의 결격 사유가 분명함에도 민족지를 강변하고, 거기다가 정론지로서의 요건을 상실했음에도 스스로 정론지라고 주장하니, 그것이 결국은 심각한 문제로 확대되고 만 것이지요.

나는 조선일보가 권력 놀음을 지양하고 정론지로서의 길만 잘 걸어왔어도 민족지라는 이름을 지킬 수도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반(反) 정론의 길을 고수하면서 오늘날에는 친일 친미 사대주의가 한층 심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일제 시대의 일련의 친일 행위들이 더욱 크게 부각이 되었다고도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의 안티조선 운동에 있어서 조선일보의 일제 때의 친일-일련의 부역 행위들은 주요 의제가 아닙니다. 안티조선 운동을 하는 명분의 일부분일 뿐이지요. 안티조선 운동을 추진하다보니 조선일보가 스스로 강변하는 '민족지'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오늘의 친일 친미 사대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발견하게 되어, 그것을 주요 성토 사항의 하나로 삼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다시 말해 조선일보의 일제 때의 모습이 안티조선 운동 표적의 전부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일제 때의 방대한 자료들이 수록된) 사이트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안티조선 운동 붕괴' 운운한다는 것은 너무도 얼토당토 않은 궤변이라는 것이지요.

빛누리 후배님.

어떤 사물이나 사안을 바라볼 때는 일부분만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종합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안티조선 운동, 더 나아가 언론개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단지 조선일보(동아일보를 포함하여)의 일제 시대 친일 행위를 당신 표현대로 침소봉대하여 그것만을 표적으로 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미 누누이 말했듯이 오늘의 언론개혁 운동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참 가치관-민족 정기를 확립할 수 있는 그 터전을 닦는 일입니다.

어째서 오늘의 언론 개혁 운동이 오랫동안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던 민족 정기를 다시 불러오고 세워 나갈 수 있는 일이냐-더 나아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차후에 자세히 논증해 드리기로 하지요.

이 글을 태안군청 홈에는 올리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빛누리 후배님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든 그 글을 태안군청 사이트에 올려놓은 사실을 고려하여, 한 번 더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내 이름자의 끝자를 '귀'자로 만든 익명을 천연덕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들의 욕설과 비방은 조금도 두렵지 않으나, 내 사촌형님과 심지어는 선친의 함자까지 가져다가 멋대로 비틀어서 익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포악함과 야비함에는 혀를 찰 수밖에 없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속담의 뜻을 되새기며, 이것으로 태안군청 홈에서는 철수를 할까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좀더 적극적인 다른 방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2001년 7월 21일
충남 태안 반딧불이 작가 지요하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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