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과 여유가 있는 문화를 위하여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1.08.10 08:00수정 2001.08.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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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시장이 위축되었다는 말이 나돈 지 오래이다. IMF라 해서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책 안 읽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더 안 읽는다고 한다.


문학출판사에 가보면 사람들이 소설을 안 읽는다고 고민이 크다. 그러면 나는 문학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었다. 출판사나 비평가가 "바로 이 작품이다"라고 호들갑을 떨어 혹시나 하고 사보면 대부분 속된 말로 꽝!인 경우가 많으니 복권 살 돈 아껴 문학의 참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줄어들게 되어 있다.

요즘 한 가지 이유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시간과 여유가 없다. 예전에 사람들이 지금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면 그것은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시간과 돈이 지금보다 많아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는 내일이 없는 듯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이제는 저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내일보다 오늘 살아남는 일을 화급한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사람들은 책을 읽을 수가 없고 소설이나 시를 찾을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남으면 경쟁에서 이길 궁리를 하고 그럴 능력을 길러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은 민주화되었다지만 군사독재 기간에 형성된 동물적 경제주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어남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아시아에 6일 근무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 두어 나라밖에 없음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제인단체에서는 주5일제를 10년을 두고 시행하자고 하지만 정작은 실시하지 말자는 소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독일에서는 주4일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시대이니 '동시성 속의 비동시성'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이 아닌가 한다.

또 주5일제를 두고 사회주의적 발상 운운한다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유신시대에 형성되어 5공화국 시대에 고조된 현대판 '노예노동제'의 사고방식을 어디까지 끌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나는 지금 10년 전에 조선소가 있는 섬에서 만났던 노동자들을 생각하고 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이 되었다고 좋아하면서 낯선 도시를 찾아간 그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실상 감옥이나 군대를 방불케 하는 공장이었다고 했다. 잔업·야근·특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시간외 근무는 안 하겠다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그런 사람은 회사 분위기 망친다며 해고되기 일쑤였다고 했다. 사장과 반장이 정강이를 차고 안전시설이 없어 배에서 떨어지는 사람, 철판에 깔리는 사람, 배 아랫쪽 빈 방에 갇혀 죽는 사람… 같은 산업재해가 줄을 잇고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나보다 서너 살씩 아래였던 그들의 몸에는 노동의 나날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용접 일 1,2년에 흰자위며 눈동자가 동태눈처럼 떠버린 친구들. 이 말은 그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의 자조섞인 말이었다. 소매를 걷으면 용접불꽃에 덴 흉터가 점점이 흩어져 있고 피부는 40대가 된 것처럼 낡아 있던 친구들. 그런 시대가 바로 엊그제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런 강제노동을 버젓이 강요하는 곳이 많다. 사무실이라고, 화이트칼라라고 '강제노동'이 없겠는가.

북한에서는 자동차 10부제 하듯이 열흘에 한 번 쉬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새벽 별 보기 운동'에 시달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옛날부터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는 족속의 오늘을 지배하는 논리라는 것이 허리가 부러질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세계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제동물'의 논리에 주체경제 운운하면서 인민을 굶기며 사육하는 야만의 논리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참된 문화인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 사회의 문화는 종종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장식용이 되어 버리거나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격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인스턴트 여흥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사람들이 사색을 필요로 하는 책을 점점 덜 찾게 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다.

사람의 하루는 자고 일하고 쉬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다 아는 일이다. 그 삼박자에 인간의 생명체 된 숙명이 깃들여 있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러나 충분히 자고 쉴 수 있어야 한다. 저마다 원한다면 그런 삶이 가능해야 한다. 자기가 미친 듯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타인에게까지 그런 고역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무도 선사하지 않은 그런 권리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그것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분들과 그네들의 마름 같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돈을 주면 일을 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참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쉴 수 있고 자기를 진정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오로지 자기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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