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 기둥, 미국산 소나무로 바뀐다

남한 땅에는 규격에 맞는 큰 소나무가 없어

등록 2001.10.16 17:46수정 2001.10.1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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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3년(1394)에 지었으며, 정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었는데, 처음 있던 건물에 비해 많이 변형하였다."

위 내용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옮긴 근정전의 설명이다.


경복궁 근정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궁궐건물이며, 대한제국 말기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지켜보았던 곳이다. 이 근정전의 '뿌리기둥(귀고주)'이 미국산으로 바뀐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진다.

문화재청은 지난해부터 경복궁 보수복원공사를 벌여왔는데 이 과정에서 2층짜리 근정전 네 귀퉁이의 뿌리기둥 4개 중 3개가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부서졌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따라서 1~2층을 연결하는 중심기둥인 '뿌리기둥'을 올 연말까지 미국산 홍송나무(더글러스 퍼)로 바꾸기로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우리나라 중부와 북부에 자생하는 나무로 만들어진 기존 뿌리기둥 대부분이 부재의 무게로 으스러져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뿌리기둥은 큰 전각의 안기둥과 바깥기둥 사이 네 귀퉁이쪽에 놓여진 4개의 중심기둥을 말한다. 근정전 1, 2층 사이를 유일하게 관통하며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뿌리와도 같은 구실을 한다. 이 기둥은 좌우로 창방이 끼워지며, 대각선으론 엄청난 무게의 적심재를 실은 추녀가 끼워져 있어 큰 하중을 받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나무 집에서 태어나서 소나무관에 들어가 죽을 만큼 소나무와 함께 살아온 민족이다. 모든 궁궐은 소나무로 건축했고, 조선시대 조정에선 소나무를 특별히 관리하는 사람도 두었다.

따라서 소나무는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경복궁의 보수 또는 복원에는 당연히 소나무만 써야 한다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 궁궐건물에 왜 미국산 나무를 쓰게 되었을까?


지난해부터 근정전 해체 복원공사를 벌여온 문화재청은 올초 보수작업 도중 일층과 이층 사이에 낀 뿌리기둥의 1층 지붕접합 부분이 부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으스러지거나 부러져 이탈 직전의 위기상황임을 발견했다. 그래서 지난 6월 자문회의를 열었는데 여기에서 남동·북서·북동 뿌리기둥을 바꾸기로 결정되었다.

문화재청은 7월 산림청에 이 규격에 맞는 육송을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산림청은 나라 안 국유림과 주요 삼림을 이 잡듯 뒤졌지만 규격에 맞는 나무를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길이 11.44m, 밑둥너비만 67cm에 달하는 크기도 크기려니와 근정전 부재 가운데 가장 많은 무게를 버텨낼 강도와 신축력을 지닌 나무를 찾지 못한 것이다.


결국 문화재청은 조건이 비슷한 미국산 홍송을 쓰기로 하고 지난 8월말 강릉의 ㅇ목재로부터 길이 12.6m, 밑둥둘레만 83cm~1m이나 되는 북미산 홍송 13본을 들여왔다. 이 가운데서 홍송 2본은 임업연구원의 강도시험을 거쳐 제재소에서 1차 가공까지 마쳤으며, 추가로 1본은 지난달 말 들여왔다. 또 나머지 1개의 뿌리기둥도 상태가 좋지 않아 미국산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현장 관계자들은 근정전의 상징성과 민족정서를 무시할 수 없어 바꿈작업을 앞두고 속을 태우고 있다. 어떤 시민은 하필이면 미국산이냐? 중국 또는 유럽산을 구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기도 한다. 한국의 마음이야기 <소나무>란 책을 썼던 시인 정동주 씨는 우리나라에 근정전을 보수할 나무는 당연히 우리 소나무여야 한다면서 우리 땅에 그런 소나무 하나 없냐며 개탄을 했다.

또 며칠 전 한겨레신문 독자여론난에는 "근정전 귀기둥을 미국산 말고 북한산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남북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이란 관점에서 근정전 보수에 북한산 소나무가 쓰여진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문화재청 윤한정 감독관은 "유물안전과 민족정서 사이에서 속을 끓였지만 우리 소나무를 구할 수 없는 걸 어쩌겠느냐며 근정전 전체의 보존을 위해서 국민들이 양해해줬으면 한다"며 "우리도 온갖 노력은 다 기울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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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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